워킹맘, 일의 과부하로 인해 알게된 것들.

엄마가 된 이상, 1순위가 된 것은 반드시 지킬 것.

by 말선생님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한창 휴가를 떠날 시기인데 장마라니. 게다가, 아이는 어린이집 방학을 맞이했다. 이후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맞이할 방학에 대한 예행연습일 수도 있겠지만, 맞벌이 부모에게 방학은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나는 프리랜서, 그리고 남편은 안정적으로 주 5일 출퇴근을 하고 있다. 출산 이후 6개월이 지나고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출근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입소하고 딱 1년이 지난 지금, 엄마인 나에게는 일이 많아지다 못해 과부하가 걸렸다. 결국, 주 2일만 나가는 직장에서도, 함께 교재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께도 '죄송합니다'를 버릇처럼 말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최대한 아이를 육아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었는데, 늘어난 일에 비하여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난 한 달 내내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벌린 일들로 인해 주변에 불편함 이상의 것들을 주고 있는 것은 맞는데 단순히 내가 엄마이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 되는 건데. 어쩌면 엄마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9 to 6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어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일들을 야근을 하지 않고서는 끝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자신의 발달 속도에 맞게 잘 자라주고 있는데 엄마의 과도한 욕심이 주변뿐 아니라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책상도 아닌 식탁 위에는 해결해야 할, 그리고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만 가고 있다. 도무지 읽을 시간이 없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교재 작업도 '시간이' 없다. 핸드폰 문자, 카톡창에는 '죄송합니다', '아이가 ~하면 보내드릴게요.'라는 문구가 한가득이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시간의 사용과 통제가 더 자유로운 것도 있지만 그만큼 나의 욕심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종일반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집에 와서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밀린 집안일들을 간신히 끝나고 나면 아이가 씻을 시간이다. 아이를 씻기고 재울 준비를 한들 아이는 내 맘처럼 잠에 빨리 들어주지 않는다.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방문을 닫고 나오면 문틈 사이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있었던 일, 그리고 이제 막 입에 척척 붙는 노래들을 부르지만 엄마는 답이 없다. 그저 노트북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온다. 24개월 전까지만 해도 일을 하는 게 더 신나고 즐거운 거라고 주변에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그건 단지 육아에 대한 도피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때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장학금에 눈이 멀어 공부했던 것처럼, 그리고 전문성과 대학병원 취업이라는 목표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버스 안에서 영어 논문을 들여다보았던 것처럼. 이미 나의 삶은 '엄마'인데 엄마로 사는 것이 세상이 보았을 때 처량해 보일까 봐, 기왕에 공부하고 싶어 진 '브랜딩,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이슈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욕심을 내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원한다. 현장에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의 육아관을 쌓아오고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을 나의 육아 안에서는 많이 놓치고 있었다. 일을 하는 엄마가 모두 '욕심이 많아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육아를 하는 동안은 어느 정도 나의 일과의 조율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일을 하루 빼기로 했다. 그 시간을 엄마와의 상호작용으로 온전히 채울 자신은 없지만 가정 어린이집 특성상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하원 시간 5시를 넘기지 않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는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아이가 100일도 전에 한창 울고 낮과 밤이 바뀌었을 때 주변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아이는 낮에 서운한걸 밤에 푼다고. 어느덧 온이가 곧 30개월이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는 크게 틀리지 않다고 느껴진다. 낮에 엄마와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스킨십이 있고, 마음속 확신이 들면, 아이는 잘 잔다. 그런데 낮에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은 날은 유독 잠을 늦게 자거나 힘들게 잠이 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3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온이는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반응해줄 엄마가 필요하다. 작은 몸짓에 물개 박수를 쳐주고 새로 이야기한 단어를 발견해주고 또 물개 박수를 쳐주고 살짝만 넘어져도 공감과 위로의 말을 오버해서 던지는 사람은 영상물도 어린이집 교사도 아닌 '엄마'다. 내 자식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해주는 엄마가 필요하다.




요즘 나는 아이가 등원했을 때에 할 수 있는 나만의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예 없애지는 않을 테지만, 오프라인 출근을 지금보다 더 줄이고 온라인 공간 안에서 글을 쓰고 언어발달 상담을 하고 나에게는 신 기술인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를 배우는 게 작은 목표다.


출산 후 6개월 만에 휴대용 유축기를 검색하며 주 1회부터 출근을 시작했던 내가 이렇게 생각이 변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온전히 아이 때문이라고만 하기에는 양심에 가책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의 온이는 산책하며, 혹은 그림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이야기에 마치 잘 훈련된 방청객처럼 엄마가 그 방청객이 되어주기를 원한다. 그 시기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글은 어떻게 생각하면 '저와 온이'의 이야기에 국한될 수도 있고 다른 분들께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워킹맘이라고 해서, 맞벌이라고 해서 아이의 언어발달이나 정서적인 부분이 늦춰지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 전제는 변치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의 유무를 떠나서 아이는 엄마를 원합니다. 하원 이후, 퇴근 이후, 또는 잠들 때까지. 나만의 방청객이 되어줄 수 있는 누군가를요. 그 사람이 엄마라면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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