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아이 8년차 엄마의 기록.
"아이는 혼자 크면 안 돼. 적어도 형제 한명은 있어야지."
"아이가 동생 낳아달라고 안해요? 이제 할 법 한데..."
"나중에 나이 들면, 서로 의지하고 좋은데. 하나 더 생각해봐!"
외동 아이를 키우면서 들었던 말들을 적어보자면, A4 용지 한 쪽은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아이가 3~4살 무렵엔 속으로 반박의 말을 혼자 외치곤 했다.
- 형제 한 명은 더 있어야... : 요즘은 서로 남남처럼 사는 형제도 많습니다. 남보다 못한 관계도 있을걸요?
- 심심하잖아... : 아이가 3학년만 되도 바쁠 건데요.
- 그래도 하나는 더.. : 대체 누가 만든 법이랍니까? 키워주실건가요?
우리 부부는 아이가 7살 상반기 무렵까지는 둘째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편의 몸이 결혼 이후 급속도로 나빠져서 아이가 6살 되던 해에 수술을 받았고, 이전에 뇌파 검사 기간을 건뎌야했다. 대학원 휴학이 길어지는 상황도, 남편의 수술도, 모든 일상이 버겁게만 느껴지던 시기였기에 둘째는 당연히 사치였다. 당시로서는 감사하게도 아이도 동생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굳혀가고 있던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기 시작했다. 부족함 없이 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아이는 왜 그런걸까?
외동 엄마는 모든 걱정의 끝이 '하나여서 그런걸까?'로 귀결된다더니, 나도 생각의 흐름이 '외동'으로 다다르고 있었다. 아무리 아이가 하나여도 이기적으로 크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 많아졌다고 한들, 눈에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보였다.
감사하게도 신랑은 건강을 회복했고, 아이가 7살이 되면서 나도 대학원에 무사히 복학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대뜸 "엄마, 나 혼자 놀기 심심해." 라고 말했다. 처음 꺼낸 말이었다.
외동에 특화된 줄 알았던 아이의 입 밖으로 나온 말. 순간적인 생각이겠거니 지나갔는데 아이는 7살 하반기 내내 일기장 끝에 '동생 낳아주세요'를 쓰곤 했다. "엄마는 지금 공부하고 있고, 우리 집은 내년에 이사도 가야 해. 엄마가 더 많이 놀아 줄게."
이렇게 말했지만 아이에게 와닿을 리가 없었다. 실망한 모습이 보였고, 내가 아이의 입장이 되었더라도 동생을 원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
이제는 둘째에 대한 날이 이전만큼 서있지 않지만, 아이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남아있다. 이 미안함은 평생 갈 것 같다. 부모교육에서도 형제 간의 그림책 읽기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나 스스로 생각이 잠시 멈추었다는 사인을 뇌로부터 받는 듯했는데. 경험이 없기에, 마치 미혼 치료사 시절에 양육 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머리가 얼어버린 것과 같이 느꼈듯, 형제 양육에 대한 질문도 나에겐 유사하게 느껴진다.
외동 아이이기에 사회성이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얘는 동생이 없기 때문에 이렇다'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회성은 가정 안에서 부모의 모습을 통해, 원에서 또래 관계를 통해, 주변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자라난다. 내 아이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동생이 없어서 이기적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렵다, 수줍음이 많다' 그리고 '양보를 어려워한다'는 옷을 입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가정의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서, 아주 가끔은 둘째가 있는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생명은 신이 주시는 선물이기에, 사람이 함부로 방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만, 임신, 출산, 육아는 어떠한 재정적인 지원으로 마음먹어지지는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일터에서 적어도 5시에는 퇴근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어린이를 존중해주는,
양육자도 사회 안에서 배려를 받기만 바라기보다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