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기엔 아직 너무 부족하다.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는 MBTI 기질 중에서 나는 J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20살 때, 결혼 직전인 29살 때, 출산 이후에 재미 삼아 검사를 해보았을 때도 늘 결과는 비슷했다. 정확한 지식은 없지만 J는 무언가를 정리 정돈하고 틀을 갖추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의 목록들을 적어두고 일을 마쳤을 때 빨간 줄을 그을 때에 느껴지는 쾌감이 중요한 사람.
아이를 낳고, 적어도 온이가 24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그 틀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걷고 말을 시작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들이 그때그때 달라지면서 낮잠을 자지 않거나 아주 늦게 자는 날이 있기는 했지만 극히 드물었다. 온이는 나의 그러한 패턴을 잘 따라와 주는 아이였다. 그래서 온이의 패턴을 예상하고 그 패턴에 맞추어서 나의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온이가 주말에 낮잠을 자지 않았다. 내가 토요일 근무를 한지도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온이는 유독 올해부터 주말에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주 가끔 점심을 먹기 전에 잠이 든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나와 산책을 가거나 신랑과 다 같이 산책을 다녀온 후에 짧게 잠을 자거나 차에서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아이를 키운다면 그 패턴을 깨는 걸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건데. 그동안 온이가 나의 패턴에 너무나 잘 맞추어 주었기 때문인지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주말이면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순간이 많아졌다. 분명, 뒷정리도 다 하지 못한 채 퇴근을 하고 지하철 안에서 '오늘은 온이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지' 다짐을 열 번도 더 하면서 오는데 아이의 재촉에 점점 화를 삼키기가 힘에 부쳤다.
나는 왜 엄마가 되었는데도 나의 틀이 깨지는걸 힘들어하는 걸까? 30개월이 되어가는 온이는 겁이 많은 편이지만 자신이 익숙한 생활권 안에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이 시기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아직 상대방이 내가 어떤 행동을 해서 왜 화를 내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막 그러한 조각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하는 포인트는 대부분 이때인 것 같다.
나의 화장품(특히, 아이라이너, 아이쉐도우, 립스틱)에 온이가 손을 대서 없어졌을 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는데 온이가 같이 깰 때
주말에 온이가 낮잠을 자면 신랑에게 온이를 잠시 맡기고 카페에 다녀오려고 생각했으나 잠을 자지 않을 때
이러한 일상이 한 주, 한 달, 몇 개월이 반복이 되다 보면 마음속에 이글거리고 있던 화산이 요동을 치면서 폭발해낸다. 아이의 눈빛이 달라진다. 행동은 여전히 집안을 난리 법석으로 만들어 놓지만 갑자기 나를 안아준다. "엄마, 사랑해." 하면서.
온이가 낮잠을 자지 않는 이유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주말에 엄마, 아빠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집에서 여러 가지 놀이도 하고 어린이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답답함을 벗어나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서 하고 싶은 걸 엄마와 '같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른들도 그렇지 않을까. 흥분되고 기대되는 그 순간은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밤 잠을 설치거나 밤을 새우기도 한다. 온이에게 주말 낮잠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어느 날 거리는 멀지만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대학원 동생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언니, 가화만사성이잖아요. 집안이 평안해야 일이 잘 되죠." 온이를 잘 키워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인데,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오늘도 온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온이는 화가 나거나 답답하면 아직 타인의 얼굴을 때리는 버릇이 남아있다. 얼마 전까지는 살을 꼬집는 행동으로 표현이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얼굴을 때린다. 아이의 손으로 얼굴을 맞아본 경험이 있노라면 잘 알 것이다. 정말 아프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화가 난다. 참고 참았던 마음속의 '화'를 담은 상자가 열려버린다. 뚜껑도, 화도, 마치 화산재가 폭발하듯 함께 나간다. 뚜껑의 위치는 찾을 수 조차 없다.
"온이야, 화가 나면 엄마 화나요 말해줘." "온이야, 예쁘다 해주는 거지 얼굴 만지면 안 돼!" 이렇게 대체할 수 있는 말을 알려주면 잘 따라 하는 아이인데. 얼굴을 때리는 행동은 온이가 나에게 주는 사인이다. '엄마, 나 지금 불안해요. 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요. 엄마랑 거실로 나가서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언제쯤, 아이에게 반성문을 쓰지 않을 날이 올까. 이제 말과 행동이 조금 통하는 이 시기에도 매일이 반성문인데.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들어간다면. 내 마음 밭이 온전히 가꾸어지지 않는다면 온이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줄 것만 같았다.
내일은 등원 준비를 할 때 온이를 재촉하지 말아야겠다. 온이의 마음을 더 읽어주어야겠다. "엄마랑 더 있고 싶지만, 어린이집에 잘 다녀와서 엄마랑 같이 또 놀자. 엄마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