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의 말이 필요합니다.
지난 주말은 정말 오래간만에 아이 앞에서 신랑과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계획하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일요일 오전에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신랑이 아이를 봐주었다. 그리고 신랑은 볼 일을 보러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이가 평소에도 노트북에 관심을 많이 보였던 터라 카페에서 수업을 들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카페 bgm이 더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주만 시험 삼아 집에서 들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는 노트북 근처로 오지 않았다.
2시간 강의 중 한 시간은 신랑이 아이를 따라다니며 아이를 보다가 점점 동요 소리가 커지면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온이 데리고 한 30분만 나갔다 오면 안돼요? 미안해요. 이따가 예배도 드리고 머리도 자르고 와요.' 신랑은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40분 만에 돌아왔다. 문제는 나의 마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짜증도 함께 올라왔다. 급한 마음에 '30분만'이라고 적은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시간은 1시간이었는데. 나는 아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1시간 정도 시간을 잡기 때문에 신랑도 그럴 줄 알았다.
강의가 끝나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온아, 고생 많았어. 엄마 옆에 와서 방해도 안 하고. 정말 대단한걸!" 신랑이 아이와 함께 도장 찍기를 하며 놀았던 흔적, 어지럽혀져 있는 그림책들이 보였다. 신랑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쳇, 누가 이렇게 얌전하게 있을 수 있게 봐줘었는데!".
"당연히 오빠가 봐줬지. 그럼 쉬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랑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이제 내가 놀아줄 차례인데. 마음이 답답했다. 짜증이 더 커지고 있었다. 자는 신랑을 깨워서 유치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오빠, 나 강의 2시간 듣는 동안 오빠가 봐줬는데. 오빠 볼일 보는 시간이 2시부터 5시까지잖아. 그런 한 시간 내가 더 많이 보는 건데. 지금 자지 말고 어지럽힌 것들 같이 치워."
들리지 않는 서로의 마음속에 있던 화산이 폭발했다.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격해졌다. 아이는 불안한 눈빛을 보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아이만 생각하자, 아이만.'
"오빠, 내가 미안해, 됐지?" 그래서 신랑의 말이 끊기지 않았다. 빈정거리는 듯하게 들리는 말투가 기분이 너무 불쾌했다. 어찌 되었든 목소리는 중지되었지만 마음속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외출하는 신랑을 기쁘고 마음 편하게 보내주지 못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인데. 매일 보고 싶고 매일 밤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한 부부인데. 아이로 인해 전우애가 싹텄다가 세상 둘도 없는 적이 되기도 한다. 연애할 때 헤어지기 싫어서 집 앞에서 서성이고 차에서 늦게 내리기 위해 애를 쓴 기억이 희미해진다. 불과 5년 전인데. 이제는 싸울 에너지 조차 없이 모든 에너지가 아이에게 몰입되어 있다 보니 부부 사이에 좋지 않은 이야기가 오갈 때 그 이야기를 견디는 마음의 역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마음이 옹졸해졌을까? 네가 2시간 보았으니 나도 2시간만 보겠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정말 유치함의 끝일 수도 있는데. 한창 바쁠 때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기엔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출산 이후에 내가 일을 쉬고 있을 때는 내가 복직을 하면 싸움이 아예 없어질 줄 알았다. 남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 이전에 나도 조직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신랑이 밖에서 얼마나 시달리는지 대충 느낌은 알겠다만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더 힘드냐. 이게 제일 부부싸움을 키우는 화젯거리인 것 같았다. 신랑은 자신의 육아를 굉장히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잘 알지만 겉으로 표현이 인색한 사람이다. 아이는 한창 호기심이 많아질 때라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서로 아이를 돌보느라 서로를 돌볼 겨를이 없다.
"오빠, 나 힘들어. 나 퇴근하고 30분이 뭐야, 10분도 못 앉아있고 집안일하고 온이 먹이고 치웠는데. 집이 또 이렇잖아."
"그래, 수고했어."
"오빠, 앉아만 있을 거야? 이제 또 청소해야지. 그래야 9시에 씻기고 나도 내 할 일을 또 하지."
"잠시만 좀 쉬자. 나도 놀다 온 거 아니잖아."
"그럼 난 집에서 놀았다는 거야?"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면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모두 나오게 되는 것이다. 누가 더 힘드냐, 나도 힘들다, 요리는 누가 하냐, 아이 대변은 누가 처리하냐, 서로가 자신에게 잘 맞는 역할이라 생각해서 결정된 역할을 이야기하며 '그동안 나의 노고를 좀 인정해달라고!' 이 말을 아주 나쁜 말로 포장해서 서로에게 화살을 쏘아 댄다. 물론, 가장 피해자는 아이다.
"그래, 수고했어.
오빠 덕분에 나 강의 두 시간 잘 들었어.
진짜 힘들었지.
나 같았음 못했을 거야!."
시간이 지나서 마음에 안정이 온 뒤에 느낀 건 신랑이 원한 건 인정의 말이었다. 결혼 예비학교에서 남자는 인정을 원한 다는걸 그렇게 많이 듣고서도 정작 내 남편에게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이를 핑계로.
이 또한 결혼 예비학교 때 들은 말이지만 결혼 5년 차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한다. 이혼율도 높고, 별거를 시작하는 부부도 많아진다고 한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테이블 밑으로 몰래 손을 잡고 있지만, 나중에 5년 뒤에도 지금의 풋풋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5년 차가 되어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고 아이가 어지른 것들을 치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 옆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또 없는데.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도 못 가고 주어진 일만 하고 살아가는데 어쩌면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신랑에게 인정을 많이 해주어야겠다. 여자는 사랑을 원하고 남자는 인정을 원하고, 또 서로가 그 표현을 듣기 원한다는 말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