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게 아니라 '천천히' 살아가기.

그렇다면 아이와 천천히 대화하는 꿀팁이 있나요?

by 말선생님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아침부터 '빨리빨리'를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다. 등원 준비를 할 때 아이는 왜 유독 평소에 입지 않던 옷을 전부 꺼내서 혼자만의 패션쇼를 즐기는 것인지, 어제저녁에 가지고 놀았으면 하는 장난감을 왜 바쁜 아침에 굳이 꺼내려고 하는 것인지, 그 놀잇감은 왜 하필 정리하기 어려운 블록놀이인지. 주변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참 신기하다. 아이들끼리도 아이들만의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하원을 한 이후에도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간식을 먹을 때도, 산책을 나갈 준비를 할 때도, 저녁을 먹고 씻고 잘 준비를 할 때에도, 언젠가부터 아이에게 '빨리빨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재촉할 일은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생활적인 면 이외에 '대화' 상황에서도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이의 어린이집 혹은 학교 경험을 물어보았을 때에도, 친구 사이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학습적인 질문을 하였을 때에도 아이에게 즉각적인 답이 나오지 않으면 마음 한편이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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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주제가 바뀐 듯 하지만, '말 더듬'은 누구나 한번 즈음 겪어보았을 법한 친숙한 이름이다. 요즘은 이름을 '유창성장애'로 바꾸어 말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나 말을 더듬는 것 같아', '나 발표할 때 말 더듬으면 어떻게 하지?' 이러한 표현을 할 때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학교 때 넓은 강의실에서 발표를 할 때(전공과목이면 차라리 덜 하지. 교양 과목은 훨씬 더 떨렸던 것 같다.), 그리고 직장 내에서 회의를 할 때, 팀장님과 이야기를 할 때, 처음 소개팅을 나갔을 때(이 때는 나의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 게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 더듬을 경험 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학교 안에서 <유창성장애>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신기했던 사실은 '말의 빠르기'가 말더듬이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치료실에 왔을 때에는 부모교육이 관건이고 부모의 말 속도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


요즘은 워낙 맘카페나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블로그 안에서 말더듬 증상이나 치료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고 있어서 그런지 치료실에 오시는 부모님들께서도 "제가 워낙 말이 빠르기는 하거든요."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시기도 한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 데에는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성인들 또한 긴박한 상황이나 긴장감이 높을 때에는 평소의 말 흐름보다 속도가 빨라지게 되고 말이 유창하게 나오지 않는데 아이들에게는 말의 흐름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두고 "네. 어머님, 아버님께서 말을 빠르게 하셔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속도를 천천히 가셔야지요."라고 함부로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부모가 갖는 죄책감은 감정 기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러한 부분이 아이에게는 더 불안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더듬는 데에 꼭 부모의 말 속도나 가정환경이 100%의 원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한번쯤은 '우리 집 말 상황'을 분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Q1. 내가 아이에게 가장 '빨리빨리'를 이야기할 는 언제인가요? 아이는 그때 반응이 어떠한가요?


Q2. 아이와 대화를 할 때, 아이의 말이 끝난 이후에 보통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말을 이어가나요?


언어치료실 안에서는 Q2. 에 대한 답은 보통 2-3초 정도를 추천한다. 아이의 말이 끝난 이후에 말을 이어서 하지 않고 한 2초 정도 쉼을 두고 엄마의 말을 이어가면 아이도 자신의 말을 이어가기 위해 다음 말을 생각할 여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평소에 말을 버벅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와의 대화에 있어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어느 정도의 '휴지(pause)'를 두는 것은 언어발달을 촉진해주는 방법을 다루는 책 안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추천해주는 방법이다. 아이를 양육하다 보니 그 2-3초의 시간이 때로는 20-30초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말이다.





언어치료 현장 안에서도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다음 말을 '기다렸다가'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오히려 대신 문장을 완성해서 이야기해주고 싶고 발음을 수정해서 다시 들려주고 싶다.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계속 /사과/를 /타과/라고 알고 있을 것만 같다. 오히려 상대방이 대신 문장을 다 채워서 다시 들려주면 아이 스스로도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부모와 아동의 상호작용>5대 원칙 안에는 말의 속도를 느리게 하기, 충분한 쉼 갖기, 긍정적인 말로 답하기, 가능한 쉬운 말로 질문하기, 아이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끼어들지 않기가 포함되어 있다(참고 : 말더듬 아동을 위한 유창성 증진 프로그램, 신명선 외, 학지사).




다소 전문가스러운 이야기가 과연 나의 문체에 어울릴까 고민해보았는데. 글이 술술 적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데리고 왔다!


<슈퍼 거북, 유설화 지음, 책 읽는 곰>


치료실 안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책 중에 올해 가장 반응이 좋았던 그림책 중 하나다.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긴 꾸물이는 슈퍼스타가 된다. 더 빨리 달려야 '1등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일매일 운동을 하고 자기 관리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의 꾸물이는 점점 지쳐간다. 이전처럼 꽃을 가꿀 여유는커녕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된다.(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에게도 '느린 말'을 가르칠 때 거북이 그림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언제부터인가 거북이 그림을 보여주면서 말을 '느리게' 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천천히'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느린 말 분위기' 보다는 '천천히 가는 말 분위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유독 빠른 것을 좋아하는 나라인 것 같기도 하다. 제 때에 걷지 않으면, 배변 훈련이 되지 않으면 그 '제 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간다. 댓글 하나하나에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의 아이에게 어느 순간 그 불안한 마음이 전가된다.


말을 재촉하게 되는 것 또한 가정을 넘어서서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발표든 회의든 빨리 마쳐야 이후 강의 준비나 점심식사 일정이 이어지고 아이의 대답을 빨리 들어야 그다음에 계획하였던 대화 주제로 넘어가거나 집안일을 조금 안심하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아이의 발달이 '느리다'는 판단을 받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Q3. 아이가 나에게 내가 서두르지 않기를 바라는 때는 언제인가요?


Q4. 밤에 잠들기 전에 생각해보았을 때 '이 때는 아이에게 재촉하지 않았어도 되었는데.'라고 후회했던 경험이 았나요? 보통 어떤 상황이었나요?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천천히 걸어가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빠르게 달려가기 위해 열심히 애를 썼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 잠이 들어버린 꾸물이처럼(앗, 결말이...) 빠르게 달려오고 난 이후에 우리는 얼마나 결승점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늘 글의 주제는 언젠가 꼭 서평을 쓰고 싶었던 <슈퍼 거북> 그림책을 다루고 싶었는데, 최근 말더듬 상담이 많아지면서 연결고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다소 흐름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면(많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초보 작가여서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게 능숙하지 않지만 천천히 갈고닦고 있는 중이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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