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들.

진짜 시작은 신혼여행, 그리고 임신 이후였다.

by 말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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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친하게 지냈던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아이 엄마가 된 이후로는 결혼식장에 가는데 얼마나 큰 에너지가 드는지 알기에 우선은 못 간다고 생각하는 게 익숙해졌다. 정말 친한 지인이라면,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가거나 토요일 출근 일정이 조정된 경우에는 예식장에 갈 수 있다.


유부녀라면 누구나 다 그러하듯, 타인의 결혼 소식을 듣거나 sns에서 웨딩촬영 사진을 보면 나의 웨딩 스토리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와, 벌써 시간이 1년이나 지났네.'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좋을 때다!'라는 생각이 들어오게 되었다. 누가 보면 결혼 10년 차 정도는 된 줄 알겠다.





결혼 준비 과정은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의 육아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차라리 결혼 준비가 더 나았던 것 같다. 예식장, 돈, 신혼집, 가구 모두 의사 결정권자는 나와 신랑 두 사람이었다. 가끔 양가 부모님들의 의견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이제 겨우 30개월이 되어가는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쩔쩔맬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으니까.



IMG_20160606_102651.jpg 2016년 신혼여행, 하와이, 스타벅스에서.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이제 신혼집에서 알콩달콩 우리의 일상을 펼쳐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직장 생활이 고되었지만 언제나 내 편인 신랑이 주는 안정감은 점점 더 내 삶에 깊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직장은 언제든 옮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의 마음만 잘 맞으면 아무리 친정과 거리가 멀어져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랑도 나도 스무 살 무렵부터 집에서 나와서 살았기 때문에, 결혼 이후에 눈 뜨면 부모님이 차려주신 따뜻한 아침밥의 그리움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각자 일어나서 식탁 위에 놓인 빵을 먹고 출근하면 되었고 신랑은 나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을 신혼 초부터 절대 하지 말라고 선을 그어주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고, 내 분을 이겨내지 못해서 큰 소리를 내고 케리어에 짐을 싸고 나온 적도 있었지만 그냥 쇼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렇게 신혼생활을 보냈고, 타지로 이사온지 5개월 만에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출산2.jpg 2018년 2월 9일의 온이:)

진짜 시작은 아이의 출산 이후라는 것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삭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아무도 우리에게 육아가 이렇게나 삶의 일부를 포기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요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언니들이 왜 답장이 늦는지, 그 좋다는 직장을 정리하고 왜 프리랜서로 전환했는지,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한 이후에도 결국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 엄마들이 왜 블로그에 육아 에세이를 남기는지, 어떻게든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일과 연관된 무언가 한 가닥을 잡고 있는지. 스타트업 기업의 창업자 중에 엄마의 비중이 왜 높아지고 있는지, 서점 매대에 육아와 고군분투한 전문직 엄마들의 호소문이 왜 점점 늘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 세계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아무도 이 길이 이렇게 고될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육아서 안에서 간접적으로 겪은 육아가 전부였고 나는 내 아이를 잘 키우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출산 이후, 신랑이 신발을 신고 나가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좌절감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IMG_20160608_232232.jpg 2016년 6월, 하와이 호텔의 야경.

누군가가 내 결혼식에 아이를 안고 와주었다면 그건 진심으로 나를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기띠를 하고, 짐을 한 가득 짊어지고 결혼식장에 가기까지는 아마 적어도 이틀 전부터 머릿속에 그 날의 큰 그림을 그려 놓아야 한다. 결혼식날 아침부터 아이와 전쟁을 치렀을 가능성은 더 크다.

임신을 한 몸을 이끌고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것 또한 쉬운 여정이 아니다. 특히 만삭이 되어갈수록 배는 불러오고 맞는 옷이 잘 없다. 격식에 맞는 임부복을 입고 가려면 따로 인터넷에서 임부복을 주문했을 것이다. 축의금 이외에 그 날 입을 의상을 준비하는데 돈이 추가적으로 더 드는 셈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결혼식장에 온 하객들의 발걸음 안에 각자의 사연이 가득 담겨있다는 사실을 신부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결혼식날 하루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도 부담이 될 정도로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나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삭의 몸으로 결혼식장을 가거나 몇 주 전부터 신랑과 딜을 해서 자유시간을 얻어서 결혼식장에 갔을 때, 신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상황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당시에 서운한 마음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나도 그랬으니까.'라고 생각하다 보면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된다.

결혼식에 와주어서 고맙다는 연락이 오고 한참 뒤에 연락이 온다. 임신 소식을 알릴 때, 막달이 되어가면서 출근하지 않을 때, 그리고 출산 이후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을 나눌 때 종종 후배 엄마들에게 연락이 온다.(이제 겨우 30개월 차인데도 내가 선배라니!)




한 가지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엄마가 되고자 하거나 엄마가 되었다면, 오프라인 직장에 출근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난 이후에도 환경의 제한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두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하고 싶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육아를 하는 중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임신 전의 삶만을 그리워하며 추억팔이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육아 동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사회 분위기가 더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육아만 하는 엄마도, 일을 하는 엄마도, 가임기의 기혼 여성들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괴리감을 느끼기 보다는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 그리고 지지를 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응원과 지지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왔으면 좋겠다고 적고 싶지만. 그렇게 적다보면 스크롤바가 더 짧아질 것 같기에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