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1박 2일, 장마였지만.
'여행'은 늘 설렘을 가져다준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렘은 아무래도 여행을 떠나는 그 주간이 가장 정점을 찍는 것 같다. 올여름 휴가는 출산 이후 처음으로 떠나는 휴가였다. 신랑과 함께 비행기를 탄 것은 2017년 10월, 괌 태교여행이 마지막이었고, 어딘가로 여행을 간 기억은 그 이후엔 거의 없다. 온이 또한 첫 외박인 셈이다. 30개월이면 그래도 이곳저곳 다녀보았을 법 한데 돌이켜보면 아이와 함께 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라는 표현보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적는 게 더 맞겠다.
첫 휴가지는 경기도 양평으로 결정했다. 강원도 쪽을 가자니 아직 장마 기간이어서 불안정한 감이 있었고(예약은 훨씬 이전에 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역시 적중했다), 이번엔 친정 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했다. 왠지 첫 휴가는 아이와 함께 떠나는 만큼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지만 올여름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결정이 되었다.
온이에게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미리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떠날 곳은 '양평'이고,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떠날 거라고. 아이는 떠나기 전날 11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들뜬 기분을 우리 부부보다 더 느끼고 있는 듯했다. 케리어 주면을 계속 맴돌고 가방 문을 열고 닫고 옷을 넣었다고 뺐다가를 반복했다. 덕분에 새벽 2시에 잠든 우리 부부는 아침에 동시에 이 말이 나왔다. '아, 벌써 여행 다녀온 것 같아!'
아이와의 여행은 예상했던 대로 시작부터가 전쟁이었다. 챙겨야 할 것도 한 짐 가득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여름이라 옷의 부피가 적었지만 장난감, 신발, 애착 인형, 목욕용품 등등. 아이와 함께 매 해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겨우 1박으로 1시간 반 남짓한 곳으로 떠나면서.
양평은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고등학교 3년을 보낸 곳이고, 작년 이맘때 즈음 하늘나라로 가신 할아버지께서 큰 아버지 댁으로 오시기 전까지 꽤 오랜 기간 노후를 보내셨던 곳이다. 양평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꽤 많이 변해있었다. 신랑이 아끼는 제자 군부대가 양평이어서 5년 전에 함께 피자를 사들고 왔던 게 마지막이었나. 너무나 익숙한 곳이어서 그런지 친정 같은 동네 양평에 발을 끊은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선, 양근리에 있는 스타벅스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양평과 스타벅스를 생각하자면 뭔가 어색한 조합이라 느껴졌었는데. 스타벅스가 들어선 그곳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음에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주차요원들이 차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신랑과 내가 커피를 주문하고 친정 부모님은 온이와 차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평소에 갖고 있었던 양평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어딘가 화려함이 들어온 듯한 양평이었다. 어렴풋이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 유명했던 '대문 집' 떡볶이 집도 생각났고, 주말이면 기숙사에서 잠시 양평 시장을 돌아다니는 재미 또한 머리를 식혀주었다. 나와 친구들은 양평이 가장 번화가였던 양평 시장부터 터미널 정도의 거리를 '읍내'라고 하지 않고 '시내'라고 불렀다. 아무도 '시내가 아니라 읍내'라고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무렵 양평을 찾아갔을 때는 지하철역이 개통되어서 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신랑과 연애기간이 더 길었더라면 2016년도에도 갈산공원 데이트 정도는 했을 텐데. 비 내리는 스타벅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줄을 서면서 여러 가지 추억들도 아쉬움도 짧은 시간 안에 스쳐 지나갔다.
친정 부모님은 우리가 선택한 리조트를 대만족 해주셨다. 비가 오락가락한 날씨였지만 공기도 물도 깨끗했다. 이전부터 왜 양평을 소개할 때, '물 맑은'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리조트에 머무른 이상 저녁식사 이후에 차를 타고 어딘가로 나가는 것보다 그냥 그 공간을 즐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초등학생 때는 신식 시설로 느껴졌던 리조트였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9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온 것 같았다.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가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 달라진 부분은 역시 '아이'였다. 놀러 온 사람들도 90% 정도는 온이 연령대부터 초등학생 연령대의 아이들과 함께 삼삼오오 휴가를 온 것 같았다. 아직 30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쩔쩔매는 우리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생인 부모님들이 지나가기만 해도 존경스럽다. 그리고 초등학생 자녀가 둘 이상이라면 그 존경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문득, 괌으로 태교여행을 갔을 때 온이 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왔던 부부가 생각났다. 돌고래쇼를 보기 위해 함께 배를 탔었는데, 그 부부를 우연히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만나게 되었다. 아이 짐이 한가득인 부부를 보면서 '우리는 아이가 기억할 수 있을 때 여행 다니자.'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 얼마나 남의 속 모르는 예비 엄마, 아빠의 생각이었는지.
부모가 되어 여행지에서 얻는 것은 이러한 추억 회상, 그리고 주변 부모님들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하게 되는 다짐들인 것 같다. 그리고 온이가 자연을 좋아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이었는데도 온이는 집에서 보다도 잠을 더 일찍 잤다.
중간중간 친정 부모님과의 육아 방식이 달라서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부모님께도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부모님 단 둘이 휴가를 보내셨어도 되었을 텐데, 딸, 사위, 손녀딸까지 모시고(?) 양평까지 오셔서 손수 고기를 구워주시고 우리 부부에게 짧은 데이트 시간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육아 방식은 친정 부모님이 나를 육아하실 때와는 다른 게 정상적인 거라고 생각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고 하는데 무려 30년이 지나갔다. 육아에 있어서 친정 부모님과의 갈등은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있다. 키워질 뻔한 적이 있었는데 서로에게 좋을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던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날씨와 여건으로 인해 양평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그림책방을 가보지 못한 것이다. 장마가 지나가고, 완연한 가을이 오면, 그때는 하루 당일치기로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지 않을까. 익숙한 듯 낯설어진 양평에서의 첫 휴가. 엄마가 된 이후로 찾은 학창 시절의 추억도, 곁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도. 짧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학창 시절엔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여서, 이 곳으로 오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고, 나도 이 곳이 우리 동네가 아니라 잠시 놀러온 곳이 되기를, 우리 집은 서울이기를 바란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바람을 이루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