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아이와 함께하는 장마철.
아이들 수업 준비를 하다가 신문기사를 보았다. 올해 장마는 20년 만에 기록적으로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라는 기사였다. 더위를 식혀주는 것으로 여겨졌던 비는 이제 그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육아를 하는 엄마의 일상도 자연스럽게 멈추어가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함께 걷던 탄천길은 통제되었다. 주말을 책임져주던 산책도 고스란히 비에게 양보해야 했다.
어쩌면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아이와의 '집콕'을 견뎌낼 수 있는 내성이 생긴 것 같다. 올 초, 3월의 집콕은 주변의 엄마들과 동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SNS 안에서 '아무 놀이 챌린지'를 진행하는 회사도 있었고, 그림책 출판사들도 가정에서 아이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무료로 배포했다. 꽃샘추위와 함께 날씨가 여전히 추웠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더 쉽게 전염될 것 같은 불안감도 집콕을 하는 데 있어서 한몫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그렇게 집콕 육아에 익숙해져 가며, 간간히 뉴스 속보를 보면서 3월이 지나가고, 직장과 어린이집은 조금씩 재개를 시작했다.
정말 견딜 수 없었던 집콕 육아는 5월 중순이었다. 이태원 발 코로나가 터졌는데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 나의 직장에서 휴관을 보름 남짓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몰려왔다. 다시 3월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 함께 반짝이는 집콕 아이디어를 내던 육아 동지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휴관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보름 동안 주어진 이 시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나는 누구의 눈을 의식하며 그토록 출근을 원했던 것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의 출근 일정에는 관심이 없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틀 안에 내가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이었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다시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멈추어있는 것 같았다.
온이를 출산하고 그 해 여름 온이를 디럭스 유모차에 눕히고 산책을 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신랑이 출근하고 난 후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외출시간이었다. 날이 많이 덥지 않은 시간이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였는데 그때 나와야 돌이 되지 않은 아이와 산책을 적당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집안일을 하고 이른 점심을 먹고 간단히 아이 짐을 챙겨서 나오면 신기하게도 거의 오전 11시 반이었다. 천천히 산책을 하다 보면 근처 회사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기 시작한다. 유모차를 혼자 끌고 가는 나의 모습이 나 스스로 느꼈을 때 처량해 보였다. 나도 한 때는 저렇게 사원증을 목에 걸고 직장 밥은 맛이 없다고 투덜대며 근처 분식집을 갔었는데. 나는 언제쯤 다시 사원증을 목에 걸어볼 수 있을까. 신랑에게 자유시간을 얻어서 걸었던 탄천길도 나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탄천보다도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가 두 돌만 지나면 무조건 아이를 종일반에 맡기고 정규직 자리에 가고 말겠노라 다짐했다.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도 나의 낮은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는 것만 같았다.
그 감정이 어쩌면 아이가 24개월을 지나가던 그 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해 정규직 면접 자리를 포기했다고 하지만 코로나 19가 터져버린 이상 그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시간을 몇 달 전으로 되돌린다면 나는 무조건 면접 자리에 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생각과 감정소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8월의 나는 아이와의 가정 보육을 함에 있어서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위축되지 않는다. 불과 3개월 만에 나의 일상, 나의 자존감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의 가장자리에는 '글쓰기'가 있다. 비록 5번이나 낙방한 기억이 있지만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올 6월부터 나의 삶에는 하나둘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TMI : 브런치에 낙방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브런치 글을 블로그 글 쓰듯이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는 블로그와는 다르다는 것을 세 번의 낙방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니.)
글을 쓰기 시작하고 한 달 동안은 두 공간에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 관리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글쓰기가 익숙해질수록 나의 육아 일상 하나하나가 나의 글의 재료가 된다. 아이가 예상했던 시간에 육퇴를 허락해주지 않았을 때에는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육아에 있어서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 때는 집에만 있는 엄마로 비추어질까 봐 아이와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엄마 회사 갔을 때 잘 놀았어?"라고 아이에게 했던 질문을 또 하거나 "내일 엄마 회사 가면 할머니랑 잘 놀고 있어."라고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정말 '안물 안궁'이었을 텐데. 낮은 자존감은 겉으로 보았을 때 이렇게 어색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육아만 하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을 텐데. 나는 왜 그런 90년대 시트콤에서나 보았을 법한 어색한 말투로 워킹맘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주변엔 유독 워킹맘들이 많았다. 직업 특성상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만 잘해준다면 프리랜서로 얼마든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직종이기도 하다. 출산 이후 일을 당분간 쉬고 있었을 때 SNS 속 워킹맘들의 사진 속 모습에서는 아이의 침이 묻지 않은 깨끗한 옷과 출근 전 잠시 들렀다는 카페 사진들만 보였다. 나도 저 속에 빨리 들어가지 않는다면 왠지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았다. 석사 공부까지 마친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 사진을 올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 과정이 있었을지. 퇴근 이후에도 얼마나 고된 육아를 견뎌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으로 출근을 하지 않고 육아에 올인한다고 해서 나의 전문성이나 그동안의 노력이 흩어지는 먼지같이 헛되이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