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부부가 함께, 휴가는 나누어 써야 한다.
휴가 이후, 한동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노라 생각했지만 육아의 전선에서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이들의 휴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출근하는 직장은 바빠질 예정이고, 토요일도 출근을 해야만 한다. 신랑은 방학도 없이 방과 후 수업으로 열흘 정도를 보냈고 어느덧 다음 주면 개학을 맞이한다. 그럼 아이는 어느 정도 내가 재택근무 틀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종일반에 있어야 한다.
친정 엄마는 내가 출산 이후 6개월 뒤에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아이를 봐주셨다. 프리랜서 일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주 1회 시작이 주 2회가 되고, 1년이 되었을 무렵엔 주 3회가 되었다.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일을 할 누군가가 자리에 있으면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작년 12월까지도, 출근하는 데 있어서 친정 엄마와 수차례 많은 갈등이 있었다. 작년 연말 가족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도 이만큼 컸으니 종일반에 보내는 것.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고 여러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다행히 올해 상반기까지는 친정 엄마가 하원 이후에 아이를 맡아주실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두 돌을 지나면서 점점 에너지가 커지고 있었고, 갱년기를 지나가고 있는 50대 중반의 친정 엄마가 그 에너지를 감당하기엔 일주일에 두 번의 하원도 힘에 부치는 순간이 많아졌다. 엄마가 출근하는 날은 아이는 종일반에서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때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온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 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럼 또 작년처럼 내가 뒤에 수업들 취소하고 와야 하지?" 약간(많이) 감정이 들어간 채 신랑에게 물어보았더니 신랑의 대답은 나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흘러나왔다. "음, 내가 직장이 가까웠다면 내가 왔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비상사태에 엄마가 달려오기에 편한 거리의 직장이어서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한 것도 지금의 직장을 선택한 하나의 이유였는데. 여러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럼 프리랜서 엄마는 일을 언제든 포기하고 와야 한다는 전제를 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엄마가 되면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전문성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집과의 거리가 1순위 고려요소가 되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수차례 오가던 어느 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 내 일은 소중하지 않아? 내 일은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일이야? 엄마는 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야?" "내가 프리랜서였다면 내가 오지 않았을까?" 신랑의 대답이 또다시 똑같이 날아왔다.
"그건 가정법이잖아. 지금은 현재고. '~라면'은 가정법이잖아. 그 가정법이 끝나기 전까지는 내가 계속 내 일을 포기해야 하는 거네?" 신랑이 말이 없어졌다.
우리 부부는 여러 차례 감정 섞인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암묵적인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는 번갈아 가면서 휴가를 낼 것.' 사실, 아이가 아픈데 일을 한다고 한 들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의 일은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아프지 않아도 아이들과 마주할 때면 늘 생각나는 우리 아이의 얼굴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면 머릿속은 온통 아이 생각으로 가득 찰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몰아붙일 계획은 아니었다. 나의 일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신랑에게도 친정 엄마에게도. 나의 일이 프리랜서가 가능하고 현재 프리랜서로 근무한다고 해서 함부로 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나의 고집이었다.
아픈 아이가 당연히 더 우선이지만, 같은 부모이고 같이 일을 하면서 엄마의 일이 먼저 조정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해서 외치고 싶었다. 엄마의 일도 소중하다고.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일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함부로 대할 만큼 유동적이지는 않다고. 나의 일 또한 엄연한 직장생활이라고.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쥐락펴락하고 있고 우리는 어떠한 하반기를 맞이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일 또한 그러할 것이다. 더 바빠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출근 일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더 많다. 하반기는 공기가 차가워지는 만큼 또 다른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연구 보고 또한 종종 들려온다. 지난 3월처럼, 뜻하지 않은 가정보육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엄마'라면 아픈 아이를 두고 일터에 나가는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혹여나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을까 봐 스마트폰에 어린이집 이름이 뜨지 않기를 바라며 일을 한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예측하지 못한 어떠한 상황이 생긴다면 내가 먼저 달려가겠노라고.
사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엄마의 일에 대해 존중하는 메시지를 들려준다면 엄마가 일을 하는 공간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픈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 두고 일을 나오면 독한 엄마, 아이에게 비상 상황이 생기면 먼저 일을 조정해야 하는 것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틀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올 하반기는, 오프라인 출퇴근보다는 온라인 출퇴근 일정을 늘려가기 위한 틀을 조금씩 다지려고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전문성과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재택근무 중에 아이를 하원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왜, 또 내가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이 주제의 글을 쓰고 싶었지만 타이핑으로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아픈 아이를 두고 일을 먼저 생각하는 '모진 엄마'라는 질타를 받을까 봐 내심 두려웠나 보다.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친정 엄마, 신랑, 나의 삼각 구조 갈등관계. 그리고 일에 대한 마음을 솔직히 용기 내어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