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다고 거짓말하고 가서 죄송해요.
'대구'는 나에게 왠지 의미가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대구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아이를 임신하기 전에 KTX를 타고 부산을 가는 길에 잠시 경유한 기억만 있을 뿐 대구 땅을 직접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모가 사는 곳이 대구였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메일이 일반화되기 이전이었고, 방학 때만 되면 편지지를 한 가득 사서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상당히 오글거리는 일상이지만, 생각해보니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제 막 이메일이 일반화되려고 준비를 하던 때였고, 우편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아무튼, 고모네 집 주소는 '대구시'로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사촌 오빠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고모께도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고모의 호칭은 늘 '대구 고모'였다.
알고 보니, 고모는 고모부를 만나 대구로 시집을 가셔서 터를 잡으신 거였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서울, 경기권을 벗어나신 적이 없었는데.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당시부터 대구 고모는 원래 사투리를 사용하시는 분 같아 보였다. 그렇게 나는, 대구를 알게 되었다.
2003년 초, 대구가 뉴스에 크게 나온 적이 있었다. 대구 지하철 사건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는데도 계속 그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다시 생각났던 계기는 성인이 되어서 복지관에 입사했을 때 들었던 특강으로 인해서였다.
언어치료사들은 복지관에서 직원들을 위한 포럼이 있어도 늘 수업이 있기 때문에 포럼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수업이 전부 캔슬이 되었을 때였다. 사회복지 계열에서는 대구가 꽤 기반이 잘 잡힌 지역 중 하나인데, 그날은 대구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강의를 해주셨다. 당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또다시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접어두었다.
2020년 8월. 아이 엄마가 되고,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때에 처음으로 대구를 향해 SRT를 탔다. 근무가 없는 날이었는데, 아이 하원은 방학 중인 신랑이 맡아주기로 했다. 마침 시어머님께서도 아이를 봐주시러 오신다고 하셨다. 아. 대구에 간다고 말씀드리면 너무 죄송해지니까, 지난달 스케줄 그대로 병원에 출근한다고 말씀드렸다. (...)
가는 길은 내내 설렘이 가득했다. 평소에 너무나 좋아하는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고, 아이도, 수업도 없이 내 시간을 온전히 이 공간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이전에는 장시간 이동을 하게 되면 밀린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 앨범을 정리하곤 했었는데 2시간 10분 남짓한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패드로 작업도 하고 핫스팟을 연결해서 브런치 글도 쓸 수 있었다.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바깥 풍경을 보면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이렇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정말 행복하고 신났다.
대구로 갈수록 햇볕이 뜨거운 게 느껴졌다. 하지만 파란 하늘도 예뻤고, 서울 쪽에서 계속 흐린 하늘만 봐온지 어언 2주가 다 되어가다 보니 지친 마음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대구의 첫 이미지는 덥기도 했지만 깔끔한 느낌이 더 강했다. 음식점들도 정말 많고 겉으로만 보아도 왠지 맛집일 것 같았는데, 다행히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만난 분께서 안내해주신 식당 또한 정말 맛있었다. 이전에 <프릳츠에서 일합니다>라는 책에서 음식은 함께 먹는 사람이 좋아야 맛있다고 했던 문장이 생각났다. 아마 내가 그분을 정말 좋아하고 진심이 닿은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맛있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낡은 가옥일 수도 있었고, 꽤 오래된 주택에 불과했을 수도 있겠지만, 곳곳의 카페 또한 가정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치 서울의 연남동이 생각났었는데 연남동보다 붐비지 않아서 그런지 깔끔하기도 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더 나는 것 같았다. 하긴, 내가 연남동에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것은 한창 연남동이 핫플레이스였던 3년 전이었으니까. 지금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외출 시간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까, 줄을 서서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디저트를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는 것 같다. 남이 해준 밥이 좋고, 밖에서 먹는 것 자체로 좋으니까 웬만큼 맛없다고 소문나지 않은 이상은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밥을 먹는 게 익숙해졌다. 그런데 내가 아주 잠시 머물렀던 대구는 막 붐비지 않으면서, 사람 사는 냄새도 나면서, 곳곳이 '여기 정말 맛있어요. 오시면 진국이라고 생각되실 거예요.' 이렇게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거의 4시간 정도 머물렀던 곳. 곳곳에 '코로나 19'에 대한 응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셨을지, 특히, 이렇게 요식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을지.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 엄마가 된 이후의 여행은 매 순간이 특별함으로 남는다. 아이와 함께 나서면 놓치게 되는 것들을 혼자 여행하는 시간에 최대한 많이 담으려는 마음을 가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구로 초대해주셨던 분의 마음을 먼저 받고 첫 발걸음을 내디뎌서 그런 걸까. 한 순간, 한 장면을 모두 핸드폰뿐 아니라 나의 기억억장치 속에 최대한 많이 기억해두고 싶고 간직하고 싶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난 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확진자가 100명 가까이 나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미리 대구에 다녀와서 다행인 걸까. 빨리, 코로나 일상이 종료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