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사'의 관점으로 읽어본 책.
유튜브에 '세바시' 채널을 구독 설정하였는데, 업데이트된 영상에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썸네일이 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분이 강연을 해주셨는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잠시 들었지만 매우 인상 깊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 회사, '다음 소프트'의 부사장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임원직이지만 하는 일 중에 데이터 분석이라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데이터를 분석해야 기업을 어떻게 운영해나가야 할지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요즘같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는 더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직업이 사람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고 상담을 하는 일이다 보니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읽어도 나의 상항에 대입해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더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언어치료사 직업을 가지고 향후 30년까지도 고민 없이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분간은 아이 육아 때문에 프리랜서가 최선의 선택이지만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나면 다시 안정적인 직장 안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다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라도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직을 할 계획이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가끔 신랑이랑 주변을 분석하는 이야기를 할 때는 왠지 모를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이 지역의 상권은 왜 무너진 건지(무너진 상권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왜 저 카페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사람들은 왜 굳이 개당 2,000원이 훌쩍 넘는 마카롱을 배달까지 시켜 먹는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저자는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상상'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분석하며 책의 중간 부분까지의 내용을 채워 주었다. 신기한 점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나온 책임에도 요즘에 읽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역시 앞을 내다보는 눈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닌 것 같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앞으로 무언가가 우리의 뇌를
대신하는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2019년 하반기,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 책을 읽었을 때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 책 또한 초판은 2013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러한 문장이 나왔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력이라는 것은 조직과 시스템이 없이도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업입니다.
이제는 어떠한 안정적인 울타리가 나의 전문성과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나 또한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복지관 정규직으로 근무했을 때, 호봉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급여, 경제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급여를 받았고 때마다 명절 수당도 받았다. 퇴직금은 적립되고 있었고 어찌 되었든 오전 8시 반까지 출근해서 6시까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퇴근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수업을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고(물론, 실적의 압박감은 또 다른 주제지만 수업을 많이 해야 급여가 많아지는 체계는 아니었으니!), 야근을 한다면 그 또한 수당으로 지급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퇴사 이후였다. '한 직장에서 몇 년을 꼬박 채운 경력이 있으니, 나는 어느 기관에 가게 되더라도 환영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우선 임신을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가임기의 신혼을 보내고 있었고 사설 치료실에서는 자신들의 수익을 높여줄 치료사를 원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특히 경제적인 부분은 매우 무지했던 것 같다.
책에서 설명하기로는, 출근길의 커피 값과 점심 식사 직후의 커피값은 값어치가 매우 다르다. 오피스촌에만 가보아도 알겠지만 직장인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삼삼오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러 나온다. 따스한 봄날이나 화창한 가을날 손에 들고 있는 테이크 아웃 커피는 값이 아무리 나가더라도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 값일지라도 크게 아깝지 않다.
나만 해도 출근길에는 벤티 사이즈지만 값은 2,000원이 넘지 않는 커피를 들고 가더라도 점심 식사 시간엔 왠지 테이크아웃을 하더라도 분위기가 좋거나 혹은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가 먹고 싶어 지는 것 같다.
언어치료에 있어서의 상담 또한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아이를 양육해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모님들은 사실 아이에게 매번 새로운 언어 자극을 제시할 에너지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에너지, 차라리 아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치우는 데 사용하거나 한 끼 식사라도 제대로 차리는데 소모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뒤집고 걷고 뛰어다니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고 감사한 선물이다. 그런데 선물도 익숙해지기 마련!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집안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매번 일어난다. 치워도 어딘가에서 장난감이 또 나오고 아이는 지칠 줄 모르고 좁은 집안을 뛰어다닌다. 블록을 쏟아내는 그 소리에 희열을 느끼는 것인지 엄마가 청소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인지 분석해보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런 와중에 "놀아줘~엄마가 놀아줘~" 말을 하면 머리로는 아이와 놀아주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몸이 그 생각을 방해할 때도 있다. "응, 잠시만~엄마 이것 좀 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집안일에 몰두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고 결국 말이 아직 서툰 아이는 심술을 부리게 된다. 그럼 집안은 또다시 데자뷔를 불러일으킬 만큼 지저분한 상태로 돌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님!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세요. 엄마의 자극은 매우 중요하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 들 얼마나 와 닿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와 닿을 수 있겠지만 결국엔 죄책감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나이가 어린 치료사 시절에 내가 받았던 눈빛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선생님은 아직 미혼이시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라는 눈빛.
우리 비즈니스의 목적은 판매가 아니라
배려에 있기 때문입니다(257p).
단순히 언어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이의 언어 수준이 이러하니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고 상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나는 부모님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퇴근하고 아이를 하원 하러 헐레벌떡 뛰어왔을 때의 그 마음,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 일은 해야 하는데 아이에게 언어 자극을 주어야 하는 압박감, 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의 언어발달과 자극에 대해 갖는 부담감을 상담을 할 때에 충분히 읽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마무리를 이렇게 짓고 있다.
마찬가지로 물건을 팔고 싶으면
그것을 살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애정이 없다면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상품을 만들어내거나 마케팅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마치, 육아에 지친 엄마의 마음은 전혀 읽어내지 못한 채로, 가정에서 주어야 하는 언어 자극에 대한 설명만 열심히 하는 것처럼.
2020년 한 해는 그 누구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반기를 지나왔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어떻게 흘러갈지 또 알 수 없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면서 나의 일을 하는 것은 어떠한 세상이 오더라도 참 진리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