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육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을 읽는 중입니다만.

by 말선생님

아이의 사진을 오래간만에 인화했다. 18개월 무렵에 인화한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다. 인화 사이트의 비밀번호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매번 인화를 한다고 했지만, 바쁜 일을 핑계로 미루기도 했고, 굳이 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


코로나가 세상을 뒤흔들면서 나 또한 온라인의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종이 사진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드라이브 공간만 넓혀놓는다면 사진은 더욱더 편하고 깔끔하게 저장해둘 수 있고 필요할 때에 다시 인화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아이의 사진 인화를 행동으로 옮긴 데에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지만, 1세대 sns인 싸*월드 사이트가 열리지 않는 것이 한몫했다. 2006년 11월, 수능이 끝나자마자 졸업여행부터 모든 추억을 담아두었던 나의 미니홈피는 이제 정말 추억 속으로 사라진 듯하다. 사묻히게 그리운 대학교 시절의 사진들도 없고, 연락은 끊겼지만 가끔 안부가 궁금해지는 누군가의 얼굴조차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사진을 인화해두고 싶었다. 사진 또한 분실할 수도 있고 물에 젖을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스마트폰 속 사진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종이 사진을 벽에 붙여두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지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진은 주문하면 하루 지나 바로 받아볼 수 있었다. 아이의 24개월 이전 사진들 옆에 그 이후의 사진들을 하나둘씩 붙였다. 그 옛날 우리 엄마는 디지털카메라도 없던 시절에 필름 카메라를 무겁게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필름이 다 되면 동네 사진관에 맡기러 갔다가 며칠이 지나 찾아오던 기억이 난다. 모든 엄마들이 다 그러했을까? 시어머님 또한 신랑의 어린 시절 모습을 앨범에 때 하나 묻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해두셨다. 요즘은 그때보다 모든 것이 더 편리해졌는데도 사진을 인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진을 인화하기로 결심한 두 번째 큰 계기는 또 엉뚱하게도 태풍이었다. 태풍으로 인한 정전에 대한 뉴스 기사를 보고 나서였는데, 온라인 세상 속에서 전기가 없어진다면, 인터넷 수신이 안정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정전이 오래 지속된다면? 와이파이가 안 된다면? 핸드폰 배터리가 다 나간다면? 온라인 세상이 과연 나의 사진들을 저장해 줄 수 있을까? 요즘은 그래도 모든 프로그램들이 서로 연동이 되어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는 자신의 사진을 벽에 붙여주니 한참을 사진 앞에서 머물렀다. 친구의 이름을 이야기해주고, 어린이집 벽에 붙여있는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가끔 어린이집 친구 이야기나 식사 이야기, 어린이집에서 배운 손유희를 집에서도 그대로 하긴 했지만.

"여기 토마토 그림 있어!" 어린이집 교실 사진은 아이에게도 꽤나 신기했던 것 같다. 지난 상반기 아이의 추억들을 아이 스스로 이야기해준다. 수업 시간에 가끔 아이들에게 경험 말하기를 유도하기 위해 사진을 이용하곤 하는데 왜 나의 아이에게는 기껏해야 스마트폰 속 사진을 가끔 보여주는 게 전부였을까? 너무나 게을렀던 나날들이 반성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pdf 파일로 저장해두었던 그림책 만들기 자료에 부모교육용 멘트를 더 추가하고, 추가로 몇 부 더 인쇄 주문을 하였다. 아직 완벽하게 나온 나만의 책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책자가 되리라. 왠지 종이로 간직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필요한 누군가에게, 아이의 언어발달이 느려서 고민을 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때에 선물로 주고 싶었다. (혹시 브런치 독자님 중에 계실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KakaoTalk_20200908_234600691.jpg 지붕 위에 보이는 닭 벼슬 같은 것은 온이의 손이다!

가정보육을 하는 시간이 길어짐에도 결코 TV는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 온라인 영아부 예배를 드릴 때는 어쩔 수 없이 TV를 틀지만 아이가 있을 때는 리모컨은 책꽂이의 맨 위 칸으로 올려둔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 그림책 읽기, 블록 쌓기 등. 내가 어렸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놀이를 해준다. 감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전혀 지루함을 보이지 않는다.

조리원 동기들 사이에서 나름 뜨거운 주제였던 키즈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영상을 보여주기엔 아이가 아직 자제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른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신나게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집안일을 시킨다면. 아가씨 시절의 나는 버럭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아날로그 육아 방식이 다소 투박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2020년 9월에 시행하기에 다소 나쁘지 않은, 오히려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언젠가는 온라인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세 살 아이가 바라보는 미디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미디어 세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아날로그 세상 속에 머무르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일까?


우리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다. 엄마 놀이, 소꿉놀이, 선생님 놀이 등 우리가 머무르는 그 공간이 집이 되었다가 마트가 되었다가 학교로 갑자기 변하기도 했다.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가 친구가 선생님이 되었다가 서로의 대사를 정해주었다가 하면서 역할놀이를 아무리 반복해도 크게 질리지 않았다.





조리원을 퇴소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수유 텀을 기록하기 위해 어플을 받는 것이었다. 어플 하나만 있으면 육아가 쉬워진다는 것을 체감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조차도 번거롭고 귀찮다는 생각에 하지 않게 되었고 어플은 가끔 아이가 태어난 날이 며칠 되었는지를 찾아볼 때 사용하는 용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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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에게 수족구가 찾아왔다. 신랑에게 역을 체크하는 어플이 있다고 알려주었더니 신랑은 냉장고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이렇게 기록하는 게 훨씬 더 잘 맞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 방법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아빠의 손 때 붙은 기록들이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찍어두었다.


현장에서 또한 아이가 말이 느리다고 생각될 경우에 아이의 말을 가정에서 꾸준히 기록해 보는 것을 추천하는 편이다. 어플이나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어두는 것도 좋지만 엄마의 손으로 기록해보았을 때에 느껴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손으로 기록하면서 느껴지는 아이의 변화가 있기에 웬만하면 표 안에 수기로 작성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요즘은 온라인이 대세'.


코로나가 터진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 대세 속에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옛 감성을 살린 식당, 카페, 독립서점, 레코드 가게가 여전히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무리 전자책이 나와도 종이책 판매부수를 따라잡을 수 없고, 아무리 핸드폰 속 다이어리 기능이 편하더라도 연말이면 다이어리 판매 코너에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이유 또한 존재할 것이다.


온라인 세상 속에 조금 늦게 들어가면 어떤가! 아날로그 세상 속에서 우선, 부족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나누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배워 두는 것이 더 우선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타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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