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직업과 엄마의 경계에서.
번아웃(burn-out)이 찾아오다.
지난 6월부터 일의 과부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출근 일수를 줄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시간표도 조금 널널해졌다. 그런데 마음속에 여유는 여전히 생겨나지 않는다. 육아 때문일까? 그냥 단순히 내 일에 있어서 권태기가 온 걸까? 몸이 쉬고 있을 때에도 머릿속 생각들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것 같다.
<감*커피>라는 카페에서 본 글귀.언젠가 예능인 남편들은 집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회 초년생 때까지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심정이 깊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열정이 넘치던 시기가 분명 있었는데.
싸이월드에 아이들의 사진으로 가득했던 시절(물론 대부분 '비공개'로 올렸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남자 친구 선물보다 아이들에게 줄 초콜릿과 사탕, 빼빼로를 포장하며 손편지를 쓰던 시절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그 에너지가 점점 구 남친이자 현 남편에게 분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육아는 그러한 여유를 아이가 자기 전까지는 허락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에게 사랑이 쏠리기를 원한다.
코로나로 인해 일정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도 번 아웃의 이유 중 하나였다. 일정한 틀에 맞추어서 차라리 일주일에 정해진 요일만 쭉 바쁘게 돌아가면 좋으련만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학교 일정에 따라 시간표를 조정하는 것도 점점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이 또한 아이 탓을 돌리려니 미안하지만, 육아를 하는 이상 시간표 조정은 오후 5시 30분 안에 모든 수업이 마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20대의 나는 워킹맘을 바라볼 때 참 냉정하고 정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아파서 장기적으로 휴가를 쓴 담당자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저 일처리가 지연되는 것에 있어서 답답함을 느낄 뿐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오전 반차를 내거나 오후 반차를 내고 급하게 출퇴근을 하는 선배 엄마들을 보면서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된 이상 정규직이든 프리랜서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혼 시절만큼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없다. 아이가 자랄수록 책임져야 할 영역들이 늘어난다. 아내로서의 역할, 엄마로서의 역할,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한꺼번에 해내기에는 분기마다 이렇게 번아웃이 찾아온다. 결국 그중 어느 하나에 소홀하게 되고, 또 이로 인한 자책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더 깊이 깨닫게 된 바지만, 상담사 직업을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마음의 더러운 것들을 배설해낼 수 있는 자신만의 대나무 숲 혹은 해우소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나의 감정은 가장 약자에게 쏟아내게 되어있다. 그 약자는 남자 친구, 남편, 그리고 결국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내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들을 주로 만나다 보니 늘 느끼는 딜레마는 상담을 제공해드리는 대상은 나와 같은 '엄마'라는 것이다. 미혼 시절엔 일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나에게 온 아이, 부모님께 온전히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에너지가 있었고, 방전되더라도 충전할 수 있었지만, 세 살 아이의 엄마에게는 충전의 시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더 바빠진다고들 하던데.)
마음속에서 '나도 어린이집에 내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울림을 꺼두어야 하는데, 아직 초보 워킹맘인지라 그 소리를 완전히 차단시키기가 쉽지 않다. 진짜 프로페셔널한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런 걸까? 일이 싫어져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일과 육아를 하는 데 있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언젠가는 그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데, 해소되지 않은 스트레스는 엉뚱한 곳에서 시한폭탄이 터지듯 피해를 줄 것이다.
코로나는 스트레스 분출의 기회를 가지고 갔다. 어쩌면 한동안은 머릿속 한 곳에 묵직한 혹을 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홈카페, 커피, 예쁜 그릇, 소박한 인테리어를 활용하여 집안 환경만 조금만 바꾸어주어도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좋은 것은 내 마음을 터놓을 누군가와의 대화인 것 같다. 아주 잠시라도 아이가 잠든 후 신랑과 일상을 나누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
오늘따라 임신했을 때 너무 심심해서 혼자서 꽤 자주 했던, 지하철 3호선 투어 시간이 그립다. 신혼 시절, 호수공원에서 신랑과 커플 자전거를 탔던 시간은 더더욱 그립다. 그 때 그 시간을 갖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