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열 때마다, 엄마가 있다

지구를 반으로 접을 수 있다면 8

by 박다예



결혼을 하고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 오고 나선,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 중 가장 낯설었던 것이 있으니 바로 ‘요리’였다. 결혼하기 전 나에게 음식이란 ‘엄마와 할머니가 맛있게 해주시던 것’, ‘여의치 않으면 밖에서 사 먹으면 되는 것’, ‘챙겨먹기 귀찮은 것’ 이었다.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먹는게 귀찮아지기도 했고, 불규칙적인 식사 탓에 늘 삐쩍마르고 어딘가 살짝 피곤한 평범한 30대 여자였다.


그런 내가 프로 운동선수랑 결혼했으니 주변에선 걱정이 많았다. 우리 부모님이 보시기엔 ‘남이 해주던 음식만 먹던 철부지’. 시댁에선 누가봐도 살림과는 담 쌓고 자란 ‘곱게 자란 그림 그리는 여자애’ 였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시어머니가 ‘국 끓이게 마늘 두 개만 가져와라.’ 하면 마늘 두 알이 아니라 아기 주먹만한 마늘 두 덩이를 가지고 오던 나였으니까.


거기다 내가 사는 곳은 브라질 시골이지 않는가. 한국음식도 없고, 한국 마트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는 이 곳 미라솔. 만약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거나 하다못해 밀키트, 반찬가게라도 이용할 수 있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라솔에선 나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프로 축구선수인 남편을 말이다.


걱정과는 다르게 나의 요리 생활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 다 유튜브 선생님 덕이다. 유튜브는 정확한 계량과 함께 해외 거주자를 위한 재료 준비 팁까지, 세밀하게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날의 요리 제목은 전복 삼계탕. 축구선수 보양식으로 딱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닭 포장을 벗긴 나는 그만 기겁 하고 말았다. 세상에. 당연히 없어야 할 것이 떡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를 브라질 햇살마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닭 머리였다.


참고로 나는 겁 많기론 소문나고 징그러운 것은 쳐다도 못 보는 여자. 그런데 별 수 있는가, 남편은 먹여야 하고. 날 도와줄 사람은 없고. 문 밖에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라질의 따스한 햇살과 흩날리는 야자수 잎만이 나를 반겨줄 뿐이다.


어떻게 머리는 치웠으나...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너무 커서 냄비에도 안 담기는 대왕 닭이었다. 이런 문제 해결 방법은 유튜브에도 없는게 어떡하지? 5분정도 고민하다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스마트폰 조그만 화면 안에 엄마 얼굴이 가득 찼고, 엄마는 그 때부터 나에게 닭을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설명만 해주시는게 아니라, 엄청난 응원과 격려와 함께.


“ 넌 용사다!!!! 넌 할 수 있어!!!! 넌 이길 수 있어!!!!!! ”

누가 보면 비장한 결투에 나가는 소년만화 주인공을 향해 여주인공이 하는 말 같지만, 처음으로 대왕 닭과 씨름하고 있는, 지구 반대편으로 시집간 외동딸을 둔 엄마의 목소리다.


손에 근력도 없어서 닭다리 하나를 자르는 것도 오래 걸렸지만, 여차여차 닭 손질을 끝내고 나니, 땀에 흠뻑 젖었다. 그리고 뿌듯했다. 닭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도 그렇고, 먼 곳에 있는 엄마와 마음으로 연결된 느낌이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종종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곤 한다. 이제 실력이 조금 늘었는지 물어볼 것은 많지 않은데 엄마는 꼭 몇 마디씩 던진다. 이건 이렇게 해라, 소금은 이따가 넣어라, 조미료가 꼭 나쁜 건 아니니 이런 음식할 땐 이만큼 넣어라... 사랑이 느껴진다.


엄마가 브라질에 올 때마다, 한국에 가기 전 꼭 하는 루틴이 있는데 바로 ‘김장’ 이다. 이제 갈비찜 ,누룽지 삼계탕, 제육볶음부터 밑반찬까지 웬만한 요리는 다 하는데도 혼자서 김치를 담그는 일은 여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꼭 도움을 받는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냉장고를 열면, 엄마가 두고 간 반찬들이 가득하다. 나에겐 그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사랑처럼 느껴져서 자꾸 울컥한다.


결혼하기 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사노동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사실, 누군가 나 대신 해주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브라질에 와서 요리 맹훈련을 하다 보니 ... 이제는 요리가 단순한 요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요리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정성을 담을 수 없고, 정성이 없는 요리는.. 음, 여기까지 하겠다.


나도 이젠 어엿한 한 가정의 주부로서, 엄마의 역할을 이어받아 우리 가족의 밥을 만든다. 밥을 짓고, 밑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인다. 조금씩 노하우도 생기고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랑’ 이다. 요리를 해보니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 얼마나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는지도 알게되고, 집 밥 만큼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도 생겼다.


마침 이 글을 쓴 오늘 전복 삼계탕을 먹었다. 뜨듯한 국물 안에는 몇 대를 걸치고 우리에게 건너온, 가족의 사랑이 담겨있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냄비 너머로, 지구 반대편 엄마의 부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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