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만난 한국 드라마를 사랑한 할머니

지구를 반으로 접을 수 있다면 7

by 박다예



해외에 살다보면 낯선 환경, 낯선 언어 속에서 외로울 때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평범한 한국 사람이었던 내가, 외국에선 유일한 한국인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브라질처럼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나라에선, 가끔 ‘내가 이런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국인인 나에게 애정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브라질에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같이 사진 찍어 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나 내가 하는 한국말을 듣고 BTS 팬이라며 말을 걸어온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또 남편 동료 축구선수 아내들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타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가끔 나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자리에 있어도, 그들의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는 유령의 시간. 그러나 당신이 한국 사람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보며 한국인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보낸 남편의 말에 의하면 코로나 이후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브라질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종차별이 심하지 않은 나라다. 하지만 동양인인 그는 가끔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특히 축구하면서 눈을 뜨라고 소리치거나 야유하는 관중들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난 넷플릭스 브라질 이 주의 영화, 시리즈 순위에 한국 드라마가 없는 날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일상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인상깊게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를 만난건 히우 쁘레또의 유일한 한국식당에서 였다. 남편과 들린 그 곳에서 남편 구단 피지컬 코치의 딸을 만났다. 그녀는 평소에도 한국 드라마 팬이라며 나에게 살갑게 다가오곤 했던, 경쾌하고 활발한 전형적인 브라질 여자였다.


남편과 함께 온 그녀의 옆에는 처음 보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나를 보자마자 눈이 반짝 거렸다. 그 눈빛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 너와 이야기 하고 싶어 ! ’


전에도 몇 번 브라질 사람들의 이런 눈빛을 받은 적 있었지만 수줍게 웃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할머니와 함께 보낸 나는 인자한 할머니의 웃음을 보자 저절로 마음이 스르륵 열렸다.


손녀는 우리에게 할머니를 소개하며, 한국 드라마 왕 팬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을 잃은 빈자리를 한국, 중국, 일본 드라마로 채우곤 했는데 최근에 한국 드라마를 브라질에서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긴 설명은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몇 마디 말에서 외로움의 냄새가 훅 퍼져 나왔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있던 것은 쉽게 감춰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녀의 웃음 속에 있던 외로움의 그림자가 보였다.


일찍 미망인이 된 그녀의 삶을 달래준 드라마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드라마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듬어 주는 일을 하다니. 하긴, 삶의 구렁텅이에서 우리에게 동앗줄을 내려주는 것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위로 아니겠는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포우산두 누 아몰 (pousando no amor), 한국 제목 사랑의 불시착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도 이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고, 사랑 이야기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공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로맨틱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할머니를 보니, 거짓말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받은 위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느낀 것은,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따뜻하고 달콤한 이야기들이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마음까지 안아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의 상처를 위로해주며, 이런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는 한 살아볼만 하다는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게 예술의 힘 아닐까. 상처와 시련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손을 꼬옥 잡아주고 위로해주는 드라마라니. 진심을 담은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나라가 다른 나라가 아니라, 나의 조국 대한민국 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지구 반대편에서 외로울 때마다,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 덕에 힘을 얻는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감사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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