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기원이 된 사랑 이야기
로마의 학자였던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는 그 광대함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지식이 담겨있기로 유명하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인류학부터 조각, 회화 등 예술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지식이 37권의 책 안에 담겨있는데, 그중엔 ‘그림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된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의 도공이었던 부타데스에게는 딸 디부타데스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곧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었다. 연인을 떠나보내기 하루 전날 밤, 디부타데스는 전등불을 들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따라 선을 긋는다. 사랑하는 이의 흔적을 붙잡으려는 그녀의 사랑의 몸짓은 그림을 남겼고, 이 그림은 '그림의 기원’이 되었다. 그림을 본 아버지 부타데스는 연인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녀의 마음을 흙에 새겨 기와로 만들었고, 이는 사람이 도자기에 담긴 부조의 첫 사례가 되었다.
조제프 브누아쉬베, <부타데스 또는 그림의 기원>부분, 1791년, 캔버스에 유화, 267*131.5cm, 그로에닝 미술관소장
조베프부누아 쉬베가 그린 <부타데스 또는 그림의 기원>은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연인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상기된 표정은 다가올 이별과 전쟁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앳돼 보인다. 차마 그녀를 떠날 수 없다는 듯 애절하게 연인의 허리를 잡고 있는 손에선 잔인한 운명 앞에 서있는 청년의 안타까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에 비해 디부타데스는 담담한 듯 넋이 나간 표정이다. 남자의 시선은 여자의 눈을 향해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멍하니 그의 그림자만을 향해있다. 그녀의 눈과 손은 그의 그림자를 따라 선을 긋는 것에만 온 마음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일이면 헤어질 연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기에 아까운 시간에 그녀는 멍하니 그의 그림자만을 바라본다. 왜 그녀는 그림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이를 그림으로 남기어 그가 떠난 후에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허상인 그림자보다 실제 그를 그려 넣는 편이 훨씬 효력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한번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사랑에 빠진 이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조각뿐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그 사람의 그늘까지 알아차리고 싶어 한다. 반짝이는 이마나 섬세한 콧날이 아닌 빛을 받지 못하는 그의 그늘, 그림자까지 말이다. 빛의 따스함이 닿지 않는 곳에 피어나 다른 이에게는 말 못 할 상대의 어두움까지 끌어안고 싶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사랑의 욕심이다.
또 그림자는 빛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도 한다. 디부타데스가 들고 있는 전등불이 그와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 그녀가 어떤 각도로 들고 있는지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은 각양각색으로 바뀔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이의 눈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마음속 연인의 모습은 기분과 생각에 따라, 혹은 바램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간다.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실제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끌어안는 것은 사랑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그림자와 사랑뿐 아니라 예술도 못지않다.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은 자신이 느낀 풍경의 아름다움에 대해, 초상을 그리는 화가들은 자신이 이해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그림을 그린다. 풍경과 초상 대신 무엇을 넣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가들이 궁극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바라보고 이해한 세상이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사랑이 벽에 비친 자신의 환상을 끌어안는 것이라면 그것에 붓을 대고 기어코 흔적을 남기고 마는 것이 그림이다. 헤어지기 전날 밤, 연인을 앞에 두고 벽에 비친 허깨비를 그리는 디부타데스를 보라.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끓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아도, 헤어지기 싫다며 고통스러운 사랑의 말을 속삭여도 그녀는 그의 그림자를 옮겨내는 것에만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