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결혼

지구를 반으로 접을 수 있다면 1

by 박다예


“너 정말 거기서 살 수 있겠어?”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내가 살게 될 브라질 미라솔의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시며 물으셨다.


축구선수인 남편과 결혼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게 된 나는,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도 앞으로 내게 닥칠 일들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도, 음식도,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든 것이 꿈처럼 몽롱하기만 했다.


“아빠,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때의 나는 정말 순진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 화면 속 미라솔은 붉은 지붕과 아이보리색 집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도시였다. 주변에는 무성한 풀, 그리고 그 풀을 뜯는 소와 말 같은 동물들이 보였다.


‘집 앞에 이런 동물들이 있다는 건가?’ 마치 그림책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평생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쉽게 상상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오히려 상상이 갔으면 아마 결혼이라는 결정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전혀 떠오르지 않는, 모험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왠지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친구들은 우선 브라질에 가서 6개월정도는 살아보고 결정하라고 나를 말렸다. 그러나 32살이라는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땐 여자 나이 타령하는 이야기는 고지식한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건만. 서른이 넘고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결혼하자 미혼인 내가 마치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모두 다 집에 돌아가고 혼자 숙제를 하고 있는 아이.


지구 반대편에서 향수병에 낑낑거리고 있을 나보다, 영영 남들보다 뒤쳐진 채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을 나를 상상 하는 게 더 아찔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 둘은 정말 둘도 없이 좋은 나이인데 말이다. 조급함은 늘 시야를 좁게 만든다.


DSC00032 2.jpg


미라솔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헉— 하는 심정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집 앞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차로 10분 이상 나가야 겨우 슈퍼가 있었다. 한국 음식을 파는 한인 마트는 차로 6 시간을 달려 상파울루에 가야만 있었고, 이 도시에 한국인은 나와 남편뿐이라 길을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나에게 꽂혔다.


그제서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낯선 땅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게다가 늘 바빠 집을 자주 비우는 남편이 없을 때면 이 모든 것을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분명 바깥은 뜨겁게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데, 내 마음속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바람의 이름은 아마도 공포였던 것 같다. 그것도 여태까지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모양의 낯선 공포.


그러나 그 공포 사이로 비치는 미라솔의 태양은 너무 밝고 아름다웠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야자수를 보고 있자니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내가 그 빛 속으로 스며드는 듯, 앞으로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오라는 듯 손 내미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막막한 가운데 손끝이 간지러웠다. 보고 느낀 것들을 표현하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자, 이제 시작이다!”


프리드리히의 안개위의 방랑자처럼, 태양을 정복할 듯 힘껏 어깨를 펴보았다. 한 손에는 연필을,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어디 한번 덤벼 보라는 듯이.


그러나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울려 펴지는 울적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첫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목_없는_아트워크-6.jpg


작가의 이전글그림자 그리는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