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가에 앉은 화가

지구를 반으로 접을 수 있다면 2

by 박다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며 살았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어버린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환경에 대한 감사보다는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을 자극했다.


내가 아주 젊었을 적(어리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난 그 단어를 부정하지도, 온전히 믿지도 못한 채 지구 어딘가에는 더 살기 좋은, 나를 기다리는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거기다 예술가적 낭만주의 기질까지 더해져, ‘난 낯선 나라에서 익숙한 사람과 살고 싶어...’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이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결혼관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결혼과 함께 브라질로 떠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아예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도둑을 만날 확률이 길에서 만 원짜리를 주울 확률보다도 훨씬 적은 나라니까 말이다. 서울이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도시에서 이 정도 치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브라질에 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이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알고, 부딪혀봐야 그제서야 어려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겐 맞닥뜨린 해외 생활이 그랬다.


브라질로 떠나기 위해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애써 눈물을 삼키며 창 밖을 바라보는데 익숙했던 풍경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애틋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이 곳에서만 30년 넘게 살았는데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 가야한다니...


이제라도 당장 버스 밖으로 뛰쳐나가 못 떠나겠다고 울고불고 떼쓰고 싶다는 충동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꾸욱 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울고 싶었지만, 내 마음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계속 웃었다.


특히 내가 괴로웠던 것은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외동딸로, 부모님을 떠나 산다는 것이 너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드리는 것 같아 결혼 준비 하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마음이 극에 달하자 새로운 시작의 설레임보다 착잡한 감정이 마음을 지배했다. 아마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경험한 가장 끔찍하고 괴로운 감정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타자에 눈물이 베어 나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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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브라질에 가는 비행기에 타자 감히 잠이 오지 않았다. 직항이 없어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경유지에 가는 길도 10시간이 넘었다. 그러나 그 긴 동안 한 번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쥐어짜는 듯 아파오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 밖 풍경은 아침에서 밤으로, 밤에서 다시 아침으로 바뀌어 갔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 창가에 앉아, 끝없이 변하는 하늘의 색을 바라보며 내가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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