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미투, 개헌, 적폐청산, 재벌개혁. 현실에사 피어나는 촛불
급발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남북정상회담, 개헌, 미투, 전직 대통령의 수감, 재벌 개혁.
수많은 과제들이 속도감 있게 달리고 있다.
하루 뉴스를 보면 지구 상의 모든 이슈들이
한반도에서 폭발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상상 그 이상의 봄.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여지없이 봄이 아프다.
수많은 이슈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늘 4월은 그저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는 달이다.
이 많은 변화들의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른다.
2014년 4월 16일.
모두가 사람을 잃어버린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 해 4월부터 우린 수많은 고민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가.
그리고 촛불을 들었다.
추운 겨울 누가 시킨 사람도 같이 가잔 사람도 없었으나,
그저 아이들 손을 잡고 옷깃을 여미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양초 하나 들고 길을 나서며 겨울을 버텼다.
그렇게 다시 온 봄.
수많은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듯,
사방에서 중요한 화두들이 삶에서 피어나고 있다.
꿈엔들 상상이나 했을까.
북이 이웃집인 양 수시로 회담을 하고
함께 노래를 하고 춤추는 모습.
분단 70년 만에 정말 가능성 있는 평화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또 짐작은 했을까. 오래된 침묵 속에 깊은 상처를 지닌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의 온몸을 던져 아픔을 호소하여
그 결과 가해자들의 거대한 세상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피해자가 당당할 권리. 사람으로서 살아갈 권리.
역사 이래로 제대로 한 번도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인권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수없이 많아 일상이 되었던 비리.
10년 동안에 쌓여왔던 부정과 부패들.
결국 거짓은 드러나고 전직 대통령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가진 자들의 과도한 특권이 심판대에 오르는
정의의 꽃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급한 일자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권리
일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함께 가꾸어야 한다는 ‘워라벨(work life balance)’,
근로 시간의 단축, 육아휴직의 확대 등
질 높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권의 꽃도 피어나고 있다.
또한 이 변화하는 세상의 틀에 맞추어
우리나라 헌법을 고쳐가려는 개헌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평화, 인권, 정의, 그리고 생존권...
촛불 혁명은 우리 삶의 곳곳에서 아주 구체화된 이슈와 행동으로
사방 천지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가 겨울에는 결코 상상하기 어려웠던 봄.
환한 새봄처럼 다시 피어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새로 밭을 갈고 농작물을 준비해야 하는 이봄
무엇을 갈아엎고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변화에는 우선순위가 없다.
꽃들이 번호표를 뽑아가며 피어나지 않는 것처럼
각자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지 다시 겨울로 회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어갈 때를 기약하며
지금은 우리 안에 피어나고 있는 이 소중한 꽃이
모두 아름답게 자라 우리가 사는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도록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
또한 이 다가올 세상의 주역이 될 자녀들에게도
새로운 안목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우린 자녀의 성공만을 바라 왔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억울함을 덜 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억울함을 좀 못 본 척 지나갈 수밖에 없다고도
가만히 있으라 나서지 말라고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말려왔던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모든 것을 가진 한 사람을 빛나게 하기 위해
다수가 희생을 감수하는 세상은 변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세상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한반도의 봄이 피어나고 있다.
우리가 함께 기다리고 함께 성장하며
평화와 인권, 정의와 사람됨의 중요성을 지켜나가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한 단계 성숙한 사회적 성장을 이룰 수 있으리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친구들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듣는 것,
나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여유 있게 기다리며
좀 힘들어도 함께 가는 일.
나와 타인의 존재를 귀하게 볼 줄 아는 시선,
첨애한 대립에서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타협안을 찾아내는 일.
우리가 함께 협의한 규칙을 존중하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한계를 수용하는 일.
우리가 지금부터 일상에서 실천하고
자녀에게 경험할 수 있게 기회를 허락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의 미래세대의 실력이란
개인이 얼마나 잘하는가 특별한가에 있기보다
나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는가,
즉, 공동체적 관심을 기본 소양으로 갖추고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친구들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듣는 것,
나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여유 있게 기다리며
좀 힘들어도 함께 가는 일.
나와 타인의 존재를 귀하게 볼 줄 아는 시선,
첨애한 대립에서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타협안을 찾아내는 일.
우리가 함께 협의한 규칙을 존중하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한계를 수용하는 일.
우리가 지금부터 일상에서 실천하고
자녀에게 경험할 수 있게 기회를 허락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나 부러워할 권력을 지니고 명망을 지닌 이들이
과거에 힘이 없어 순종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이유로
하대하고 성폭력을 저지름으로 생의 영광이 빛나는 순간에
그의 세상이 무너지는 파괴력을 목도하고 있다.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이제 교양 있는 누군가의 덕목이기보다
나의 삶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주인이 되는 봄.
이제 막 피어나는 봄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우린 여러 번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변화로 놀라게 될 것이다.
혼란스러워하지 말자.
그저 이 변화하는 세상의 단 하나의 이정표는
4년 전 4월 16일,
그날이 우리에게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던 가르침.
나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것.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 오직 그 하나일 뿐이다.
+ 지역 칼럼에 기고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