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민주적인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의 수첩에 쓰여있었던 것처럼 유명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반대하거나 그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끌려가고 무참하게 죽는 '한국판 홀로코스트'를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배에 끌려가 어느 외딴섬에서 폭사를 당하고, 낯선 시설에 끌려와 잠들다 폭탄이 터지며 확인 사살을 당하고 심지어 어느 낯선 곳에 수감되어 독극물이 든 물을 마시고 죽어가는 일이 2025년도 한국에서 일어날 일이었다. 설령 소설로 쓰여진다 해도 쉽지 않은 상상력이다.
믿기 힘든 일.
이런 일들이 계엄해제가 단 5분만 늦게 지연되었다고 해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로 그들의 계획은 치밀하고 꼼꼼했다.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다듬어온 흔적들이 역력했고 이에 더해 북한이 예전 수준으로 한국의 도발에 응대했었다면 단순한 내란을 넘어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소련, 일본이 참전하는 제3차 대전의 불씨가 될 수도 있었던 정말 위험천만한 일들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자는 일상의 시간 저편에서 계획되고 심지어 일부는 실행되었다는 것에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이즈음에 나는 유독 아들러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폐망하고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 대중의 절망감을 이용해 유태인을 적대시하고 박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왔던 전국적인 아동센터를 강제폐쇄 당한다. 그리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도 아동의 민주적인 양육과 남녀평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관심만이 사회를 성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심리학자였다.
말로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계엄을 겪으면서 수많은 가짜뉴스들과 서부지법의 폭동과 살벌한 그들의 차별과 폭력의 언행과 마주쳐 이겨내야 하는 현실에서 아들러의 선택과 주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2025년 오늘. 아들러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쌓아왔던 눈물 나게 치열했던 민주주의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허약한 민낯을 드러내는가.
아들러는 모든 문제의 해결을 열등감을 직면하면서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가진 열등감, 우리가 알고 있으나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우리의 열등감으로부터.
우린 오만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노라고.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우린 몇 번이나 계엄을 건너왔으며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구속시킬 수 있을 만큼 시민의 힘이 성장한 나라라고 자만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우린 겁을 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처음부터 정권의 무능은 넘치고 흘렀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치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수몰된 지하방을 여유롭게 구경하듯,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느냐는 식으로 지나가는 대통령을 보았을 때, 우리는 힐난하고 조롱했으나 저항하지 못했다. 왜? 왜였을까?
나는 솔직히 무서웠다. 검찰. 검찰 대통령은 이전의 부패한 정치인 대통령보다 더 무서웠다.
그들은 일제시대부터 우리의 애국지사들을 잡아갔고 유신정권에서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조작해서 간첩을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상이 무엇이었건, 설령 글자를 모르는 해안가의 어부들조차도 그들 앞에 끌려가면 노련한 북한 간첩이 되어 수많은 간첩조작에 이용되고 그와 그의 가족의 삶이 다 무너지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무죄.라는 두음절의 허망한 위로를 받곤 하지 않았던가.
조국에 대한 미친 칼날. 대통령이 되기 전, 2019년 친인척을 포함해 하루아침에 70여 건의 압수수색이 들어가던 그날부터 그들의 무능함보다 더 무서운 잔인함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지 않았던가. 어린 여학생의 일기를, 집에 들어가는 배달기사를 부여잡고 먹잇감을 찾은 듯 벌레가 꼬이듯 방금 짜장면이 들어갔냐며 신이 나서 질문하는 기자들 무리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등이 서늘해지곤 했다.
이제 솔작해져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허울 좋은 포장지였는지도 모른다.
아들러는 건강함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사회적 관심을 꼽았다. 이 개념은 아들러가 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군의관으로 참전하면서부터 그의 삶의 중심과제에 놓이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제도와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상대를 평등하게 대하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으로 길러져야 한다는 이상적인 그의 생각은 결코 이상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그는 미래세대에 희망을 걸고 학교와 가정의 민주적 협력과 남녀평등을 위해 헌신하며 죽는 순간까지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했다.
가정과 학교, 직장과 사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으로서의 민주주의,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는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나와 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무늬만 민주주의일 뿐, 이 세상은 돈과 권력을 지닌 이들의 갑질을 바라보면서 욕하되 부러워했고,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외국 이민자든 간에 우리와 다른 처지에 놓인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이해하는 것에 미숙했다.
계엄 해제는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한강작가의 과거가 우리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마치 기다렸다는듯 대답이라도 한 것처럼, 시민들은 용감했고 국회의원들은 목숨을 걸고 담을 넘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계엄군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해 당황했고, 때마침 눈이 내렸으며 헬리콥터는 42분이나 지연되었다. 다행히 국회는 단전되지 않았고, 불과 5분 차이로 전 국민들이 숨을 죽이고 동동거리는 찰나에 해제되었다. 기적이다.
모두가 목숨을 걸어 누구도 다치지 않는 기적.
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젊은 이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겠다고 어른들이 그저 철없는 짓이라 불렀던 그 소중한 응원봉을 가지고 추위에 나와 떨며 자신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주류가 아니어서 범죄의 타겟이되거나 인터넷에서 조롱거리로 놀림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이들. 그들이 서로 연대하고 붙잡고 서로의 목숨을 살리기 시작했다.
유사 이래 한 번도 넘지 못했던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남태령에서 48시간이 넘는 시간을 저체온증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깨워가며 사방에서 돌보는 손길이 그들의 지켜내어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를 도와달라 부르고 우리가 가겠다고 응답했고 한강진. 그 무서운 눈발 속에서도 키세스군단이 되어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으로 쌓여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그들은 모두가 달랐다.
누군가는 올빼미를 지키자하고, 누군가는 내향인이라 했으며, 누군가는 만화책의 주인공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이, 성별, 종교의 차별 없이 각자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기에 더 다양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래서 더 위대해진 깃발들을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들이었다. 세월호의 아픔과 코로나의 불안을 살았던. 기성세대가 지켜내지 못해 미안했던 그들이 자신의 빛을 들고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비극은 기적을 부르는 순간이다.
아들러는 그의 저서 [삶의 의미]의 마지막 장에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2차 대전과 인종차별과 홀로코스트의 참극이 일어나는 일상을 살면서도 인류에게 시간이 주어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회적 관심이 일상이 되어 성장하는 그런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고야 말 꺼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평생 아이들이 민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정과 학교를 위해 도움이 되고자 헌신하고 있다고.
그가 우리의 빛과 깃발의 혁명을 보았다면 얼마나 감격해했을까.
우리는 지금 계엄 덕분에 우리의 화장끼 없는 민낯을 본다.
폭력과 차별이 만연하고 대립과 거짓이 돈과 어울려 춤추는 세상을 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모르는 누군가의 불안에 응답해 그가 다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달려가 서로를 살리는 세상을 보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제대로 민주주의를 살아갈, 그 열등감의 시작점에 다시 설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아들러가 가장 강조했던 우리의 생각
우리의 생각과 선택이 다시 우리의 세상을 창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