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가 아닌 존재의 가치가 주는 진정한 기쁨
젠가를 쌓아가는 아이.
처음엔 무너지면 어쩌나 불안해하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던 녀석이
눈가가 반짝이더니 당해보라는 듯이 과감하게 젠가를 뱅글 돌려놓고
막대기를 뽑아 아슬하게 세워놓고 좋아라 한다.
이대로 질 수는 없지. 우리는 과감하게 서로를 당황시키고자 서로 용을 쓰다
드디어. 젠가가 무너진다.
우린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깔깔 대고 한참을 웃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면서.
우리에게 무너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기다리며 고대하며 바랐던 순간이고
우리가 함께 즐기는 재미있는 순간일 뿐이다.
언제부터 무너지는 것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되었을까.
아들러는 인간의 고통 대부분이 미래에 무너질 것을 걱정하고
과거에 무너졌던 일을 반추하느라 지금 여기를 용기 있게 책임지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때 더 잘해줬으면 좋았을걸...
앞으로 도대체 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부모님들도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불안이 겹쳐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와 진솔하게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분명 식탁 앞에 앉아 아이가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음에도
부모의 마음 안에선 아이가 친구 핑계를 대며 학원을 빠졌던 과거의 기억으로 가득하고
아이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대인관계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의 이야기에서 웃고 울고 즐기기보다
내가 걱정하는 과거와 미래에 마음을 뺏겨버리는 일
이것이 우리가 함께 있음에도 함께 있지 못하는 이유일테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개념 중 하나가 '용기'이다.
대부분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들러의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발을 내딛는 것.
불완전한 지금을 괜찮다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아이도 불완전한 자신을 사랑하는 용기를 시작할 수 있다.
전 정말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아이한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나면 하루 종일 미안하더라고요.
다음엔 더 잘해보자 잘 해내야 해. 다짐하고 반성하고 그랬죠.
근데 어느 날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늘 밝고 좋은데 어쩔 땐 그래서 좀 슬퍼.
아이는 내 겉모습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고 있었구나.
내가 억지로 웃고 괜찮은 척하는 내 마음을 보는구나.
그때부터 '척'하는 나를 내려놓고 좀 더 솔직한 모습을 표현할 용기가 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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