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팠죠.

저도 이런데 신부님, 스님은 오죽하실까.. 편히 집에 있지 못하겠더라구요

by 마음자리


너무 오래됐어요. 생각해보니까. 2년 됐네요.

3월 29일이었으니까 딱 낼모레면

3월 28일 날 2차 오체투지가 시작되고 29일 날 주일날. 처음 했던 것 같은데요.


평상시에 이런 사회적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제가 약대를 85년에 들어가서 87년대 6월 항쟁이 있었잖아요.

그때 3학년이었는데요. 약대는 4학년 때는 약사고시 공부를 해야 해서 학생회를 3학년이 맡아요.

제가 학생회 총무직을 맡았었죠. 시절이 그래서일까 친구들이 사회적 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 만났던 3명 친구들과 공단에 있던 '늘 푸른 야학'을 했어요.

1년이 지나서는 한 친구가 아빠에게 머리 잘리고 끌려갔구요. (웃음)

한 사람도 그만두고 아무튼 그때 처음엔 10명이서 시작했는데 나중엔 혼자 남았어요.

그래도 선배들이 야학 선생님을 모집해주셔서 한 1년을 하고, 그때 남편도 만났죠.

다시 친구들이 다시 와서 또 7~8개월을 했죠. 그렇게 한 3년 정도를 하고는

그다음부터는 공단에서 노총을 만들고 나름의 노동운동이 진행되니까.

야학의 필요성이 좀 적어져서 해체했죠.

그리고는 약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죠.

그때 진료봉사단체들이 많이 생겼어요. 저도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 가입했죠.

1991년 때부터 활동했는데 2000년쯤 되니까, 대전역을 중심으로 노숙자들이 많잖아요.

그분들 처음에는 식사 대접하는 목사님이 게셨는데

그분들이 의료에 소외되어 있으니까.

진료소를 만드셨어요.

의사는 '인도주의 실천 의사 협의회'에서 오시고 약사는 저희 단체에 협조 요청이 와서

아마 2002년부터 그곳에 나갔을 거예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원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나가죠. 지금도


오체투지는 아시는 분이 있으셨던 건가요?


없죠. 모 꼭 아는 사람을 대라고 하면 문 신부님?
2차 오체투지 하기 서너 달 전에 딱 한번 뵌 적이 있어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문 신부님의 강연이 있었어요.

그때 한번 가서 뵈었죠.
사실 그 모임에는 신자가 별로 없는데 제가 신자라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셨거든요.

이후로 문 신부님의 소식을 인터넷으로 자주 접하긴 했어요. 그 정도예요.

1차 오체투지 때에도 신부님이 쓰신 글들을 읽고 있었죠.

다리 저는 중과 늙은 신부가 길을 떠난다...

이렇게 쓰신 글을 보고 참 마음이 참 아펐는데

한 번도 그 쪽으로는 갈 형편이 안돼서 못 갔고.

2차로 여기서 시작한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더라구요.

2차가 시작되는 신원사는 저희 집에서 30~40분이면 가죠. 여기서. 그래서 가보자 용기를 냈죠.



육교 위에서 순례단을 보시고 목례로 기원해주셨던 할머님



1차 오체투지 때에도 신부님이 쓰신 글들을 읽고 있었죠.
다리 저는 중과 늙은 신부가 길을 떠난다...
쓰신 글을 보고 참 마음이 참 아펐는데
한 번도 그 쪽으로는 갈 형편이 안돼서 못 가고.
2차로 여기서 시작한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더라구요.
2차가 시작되는 신원사는 저희 집에서 30~40분이면 가죠.
여기서. 그래서 가보자 용기를 냈죠.



온 가족을 다 데리고 갔어요. 우리 친정이 6남맨 데요.

다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오체투지 할 사람은 하고 동생들은 점심 먹고 가고
저하고 남편은 그날 하루 종일 했어요.

솔직히 하루만 가려고 했어요. 정말요. 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겁이 났어요. 막 쓰러지고 힘들까 봐. (웃음)

하루를 하고 와서 정말 3~4일은 엄청 아파서 죽겠더라구요. 일도 못하고.

근데 주일이 다가오니까 또 가야겠더라구요.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집에 한가로이 있는다는 게 영 마음이 그래서요.

남편 마음도 그렇고,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갔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약국을 하다 보면 경질환이 많잖아요. 병원에선 경질환은 좀 가볍게 다루죠.

진단을 해서 별 이상이 없으면 병원에선 그냥 보내는데 정작 본인은 아프니까 그런 분들이 약국에 오시죠.
뭐라도 도움을 드리려면 양약도 공부하고 한약도 공부하고 건강식품도 공부하고 다양하게 배우게 되거든요.

근데 한방에서는 땀이 피의 여분이라고 해요. 머리카락도 피의 여분이라고 보거든요.
근데 그렇게 땀을 쏟는 것은 사실 피를 쏟는 것과 다르지 않거든요.
그렇게 매일매일 거의 진을 다 빼는...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약사라서 더 그분들의 건강이 염려되고 걱정되는 것도 있었을 거예요.

문 신부님이 재작년에 쓰러지신 것도 너무 많이 소진하신 거죠.

가진 에너지를 다 쏟으셨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신가도 생각을 해요.

그런 어려움을 신부님 한테만 넘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우리가 직장을 안 나가면서 까지 갈 수는 없잖아요.

시간 되는 때는 가자 해서 주일마다 갔죠.



온 가족을 다 데리고 갔어요. 우리 친정이 6남맨 데요.
다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오체투지 할 사람은 하고
동생들은 점심 먹고 가고
저하고 남편은 그날 하루 종일 했어요.
솔직히 하루만 가려고 했어요. 정말요.
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겁이 났어요. 막 쓰러지고 힘들까 봐. (웃음)
하루를 하고 와서 정말 3~4일은
엄청 아파서 죽겠더라구요. 일도 못하고.
근데 주일이 다가오니까 또 가야겠더라구요.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집에 한가로이 있는다는 게 영 마음이 그래서요.



제가 좀 약체예요. 약국에서 일하니까 햇볕을 잘 못 쬐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있으니까요.

가끔 약국에 사람을 두고 밖에 나가면 햇빛이 좀 낯설죠. 한 10시간 정도 약국 좁은 공간에 있으니까요.

오체투지 첫날은 하루 종일 땡볕에 있는데 일사병이 오는 것 같았어요.

오전엔 좀 괜찮다가 오후에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그랬어요.

1차 활동 DVD를 보여줬던 어떤 날엔가는 저는 화장실에서 어지러워서 토하고 있었어요.

몸이 못 이기는 거죠. 체하고 기혈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저도 이런데 신부님이나 스님은 오죽하실까 싶고 주말이 되면 편히 집에 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주말에, 쉬는 날에 갔어요. 마지막 임진각까지.

마지막 날에는 노란 티도 맞춰서 갔어요. 우리 가족이 다 모이면 한 20~30명 되거든요. (웃음)

그때 그게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법륜스님이 하시는 정토회 청년들이 파란색 티를 입고서 단체로 한 50명 왔나 100명 왔나

와서 하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우리도 나중에 티를 노랗게 맞춰 입고 가자. (웃음)

우리 식구들이 거의 비슷비슷한 성향이어서 마음들이 함께 있었어요.


어느 점심때는 최종수신부님께서 직접 냉면을 말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늘 빵을 사 가지고 오셨죠.


네. 갈 때마다 빵을 사 가지고 갔죠.

스텝들이 고생하시는데 뭐가 필요할지 모르겟더라구요.

약사니까 피로회복제도 가져가고 그랬는데
거기 계시는 분들이 별로 그런 약에 의존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젊은 분들이 많으신데 뭘 갖다 드리면 좋을까 싶어서요. 빵을 사 갔어요. 좀 유명한 빵이거든요.

의외로 반응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빵을 늘 사가지고 갔어요. 그것도 기쁨이었죠.



기도-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 오체투지 순례단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Daum 카페

늘 감사합니다.
순례단을 찾아 먼길을 오셔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염려해주시는 분들을 뵈면 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수시로 교차합니다.

지나다가 저희 순례를 보시고
지갑을 털어 찐빵을 사 가지고 와주시기도 하시고
갓길에 황급히 세워 지갑을 열며
모라도 해 드리라며 마음을 보태주시는 분들

지나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시라며
당신들 가계 한편을 내어주시고자 마음을 열어주시는 분들
행여 스님 신부님 무릎에 돌 하나 잘못 걸릴세라
가실 길에 잔돌을 치워내며 기도해주시는 분들
하나하나 스님과 신부님의 고행만큼이나
눈물겹고 감사드립니다.

마음속 많은 따뜻한 온정과
정성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쉬는 시간 가쁜 숨을 몰아쉬시는
스님과 신부님을 바라보시는 눈길에서
저희의 수발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늘 반성하고 성찰하게 합니다.
무어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더 잘 모시고
그만큼 더 잘 순례하라는 마음이심을 알기에
좀 더 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지만
차는 싱싱 달려도
사람은 기어가기 힘든
무서운 길과 상황들이
저희를 수시로 긴장시키고
마음같이 여유롭지 못할 때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보내주시는 마음
천금처럼 받습니다.
잘 모실 수 있도록
무사히 올해 계룡산까지
처음 마음을 가지고 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순례단을 위해 마음을 열어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시는 인터넷의 많은 벗들과
길에서 뵙은 모든 분들께
그리고 하늘과 땅에 길가의 풀들과 바람에
다시 한번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새로운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새로운 희망을 우리가 함께
창조해 내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게속 이어집니다)

_______________


대전의 이 시희, 이 경민 부부는 2차 오체투지때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지막 임진각까지 매 주일마다

오체투지 수행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따뜻한 사랑과 정성 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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