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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pr 06. 2017

#41환타의 수난

교토여행 이야기_아들과 여행은 종종 인내라는 도를 닦게 된다

둘째 날, 환타 때문에 목도 마음도 지쳐 잠깐 삐쳐 있는 시간은 지도로 달랜다. <교토 여행, 2017.4.1>


  영락없이 그날 너는 지쳐 있었다.

  전날 늦은 오후, 우리들 일행은 칸사이 공항(関西空港)을 통해 오사카에 도착했다. 첫날 여행지에서는 소슬하게도 차가운 봄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볍게 차려입은 겉옷에 얇은 옷들을 포개 입고 숙소를 다시 빠져나와 다운타운을 헤집고 다녔다. 많이 걷는 것에 대한 주의를 받아온 터라 너는 첫날은 아무렇지 않게 어른들 3명을 잘 따라다녔다. 그렇게 첫날부터 걸었던 것이 5킬로 이상은 됨직해 보였다.

  함께 한 일행 중엔 30대를 제외한 10대에서 50대까지 4명이 고루 섞였다. 어느 누구 한 명에게 딱 맞는 최상의 구상은 어려울 것이 불 보듯 눈에 선했다. 문제는 ‘여행을 즐기고, 언제 이곳에 발을 다시 붙일지 모른다.’며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찾아가는 것이 남는 것이라 믿는 20대 초반의 청춘인 너의 사촌 누나와 많이 걸으면 피곤해서 일찍 지치기 일쑤고, 평소 움직임이 많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른들 여행에 걷기가 익숙하지 않은 초등생 10살 남자아이인 네가 친척간이 아니었으면 진행이 어려웠을 여행이었다. 두 자녀들의 자매인 두 엄마들은 물과 기름 같은 형상을 이미 애견했을 터다. 물론 네가 아직 어린 이유 때문도 있지만, 네가 엄마와 여행을 할 때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저녁 시간은 호텔 밖을 잘 나가지 않았던 엄마의 여행 스타일에서도 그 차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 다음날부터 한층 업그레이드된 걷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있는 너의 엄마 차가 그리웠을 것이다. 어른들은 교토(京都) 지역의 많은 언덕을 걷기 시작했다. 기요미즈 자카(清水坂),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는 이름에서도 유래하듯이 언덕에 걸맞게 높은 곳을 올라야만 했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로 향하는 길에서 음료수 하나를 발견했던 너. 그것은 포도맛 환타였다. 언덕길을 내려가며 엄마에게 사 달라 부탁할까를 계획하고 있었던 너는 100미터 앞에서 다른 언덕의 내리막길로 노선을 바꿔버린 엄마를 따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자판기 천국의 나라 일본. 그 많은 자판기에서 네가 오전에 봐 둔 환타가 보이질 않았다. 네 엄마를 바투 따라가며 ‘그 환타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했던 것이 줄곧 후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환타를 대신해 비슷한 음료수라도 마실게요.’라는 말이 목 앞에서 간질거렸다. 그래도 끝까지 찾아보고 싶었다. 너의 고집으로 함께 한 일행들도 지쳐갔다는 것을 너 자신도 인정해야만 했다. 3대씩, 4대씩 나란히 친구가 되어 서 있는 자판기에서도, 나 홀로 외로이 낮은 지붕 아래 서 있었던 허술한 자판기에서도 환타는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찾아보자 사색이 된 너를 앞세우고 편의점엔 몇 번을 들어갔을까. 달라붙은 너의 뱃가죽에 점심이라는 곡물을 넣어주니 잠시 환타의 존재를 잊는가도 싶었다.


환타를 먹지 못해 속상한 몸은 뱃속을 채우는 든든한 점심 세트 메뉴가 아이를 행복하게 한다.<교토 여행, 2017.4.1>


  너의 뒤를 따라 도시 구경에 나선 어른들도 환타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은각사(銀閣寺)를 들어가기 전까지 너의 고집을 듣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세상이었다. 곡물을 채우고 나니 은각사(銀閣寺)를 오르는 길도 즐거워 보였다. 목욕탕 안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콧노래가 들리는 가도 싶었다. 그곳엔 강가를 끼고 겨울의 생채기를 아직 벗어던지지 못한 분홍빛 벚꽃이 이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더디게 피어내는 꽃봉오리 앞에서 웃음 끼가 발동하여 너는 여유로운 문장을 뱉기도 했다.

  “엄마, 꽃이 아직 덜 피었잖아요. 우리가 찍은 사진, 집에 가서 물에 담가 두는 건 어때요?”

  너의 시향 가득한 문장에 엄마는 활짝 웃어주며 너의 문장을 받았다. 

  “그렇구나! 집에 꽂아두면 곧 만개하겠는 걸.”

  집에 빨리 돌아가 컬러 인쇄를 하여 정말 화병에 꽂아두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비단 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너를 부르는 누나의 소리가 들렸다.

  “지산아, 환타야. 환타 이거 맞지!”

  “어, 그거 맞아. 이거야. 아 마시고 싶었어. 내 사랑 환타.”

  은각사(銀閣寺) 주변을 둘러보고 내려오며 너는 그 자판기를 기억해 내고 엄마를 졸라 환타 3개를 구입했다. 오롯이 너만을 위해서. 여러 곳을 돌아 이곳에서 겨우 찾게 된 환타의 맛을 내일도 조금 더 누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도 보이지 않았던, 아침에도 보이지 않았던, 편의점 5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너의 사랑 그 환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숙소 주변의 여러 자판기에 환한 불빛 자리를 깔고 네게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환타, 나미래>


목을 채울 수 있다면 하고 기요미즈데라(清水寺)로 올랐어 그곳엔 여러 언덕이 있어 기요미즈 자카(清水坂)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 언덕 이름도 어려워 머릿속에서도 오르락내리락 단어가 날아다녔어 기요미즈 자카(清水坂)에서부터 목이 말랐어 그래도 참았어 내려갈 때 부탁하려 했으니까 물을 마시고, 소원을 빌었어 돈을 넣고, 소원 손뼉 두들겼어 향초를 태워, 건강을 빌었어 다 빌었어 달달한 음료를 목에 적시길 빌었어 그만 돌고 내려가길 빌었어 언덕 중간엔 환타 자판기가 있었으니까 누나는 사진 찍기 바빴어 엄마는 물건 사기 바빴어 내려가는 길은 환타 자판기의 기요미즈 자카(清水坂)가 아니었어 삼거리에서 고개를 꺾어 산넨자카(三年坂)로 들어선 어른들이여 나의 환타는 달아났어 나의 달달한 음료는 저 멀리 갔어 누나는 곧 밥을 먹는다는 위로를 했어 내속은, 얼굴 표정은, 관리가 되지 않는 미궁 속으로 빠졌어 편의점 4곳을 돌아도 환타를 올려두지 않았어 자판기의 나라에서도 환타를 내어주지 않는 그 길 어른들의 눈총을 받는 어린이로 등극했어 그래도 굽히지 않았던 고집 포기할 수 없었던 유혹이었어 포기할 수 없는 그 환타 그림 어른들의 눈총은 더욱 짙어졌어 은각사(銀閣寺) 길에서 만난 자판기에선 포도맛 환타가 줄을 서 나를 기다렸어 자판기의 눈총에도 나는 기쁨을 쏟아내고 세상을 얻었어 3개나 쏟아낸 자판기의 기쁨도 잠시 그 이후부터 계속 보게 된 환타의 이름 환타의 그림 환타의 환영 줄이 정해진 환타의 자리 이젠 환타가 나타나지 않아도 자판기에 그려지는 환영의 그림자.  


돈을 맡겨놓은 듯, 자판기 환타를 사기 위해 손을 벌리는 모습을 조카가 순간 촬칵했다. <교토 여행, 2017.4.1>
스스로 돈을 넣으며, 음료수를 꺼내려 하는 녀석. <일본 교토여행, 2017.4.1>
환타 세 캔을 획득한 아들의 미소.<교토 여행, 2017.4.1>
환타를 사고 난 이후부터 아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2017.4.1>


교토 가하라마치( 河原町)에서 오사카 우메다(梅田)까지 열차 안에서의 모습. 3개나 산 환타를 넣은 봉지를 붙든 피곤한 아이의 모습이 애잔하다.<교토 여행, 20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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