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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ug 18. 2017

불화살 바람, 섬 속의 섬 여행을 멈추게 했다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신전리 연홍도, 연홍은 마을 전체가 미술관이다




인원이 많으면
배편 시간 몰라도 된다고?


불화살의 열기는 섬을 둘러싼 바다 곁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양 마을 부두에 도착하자 마을에 대부분 하나씩 있는 버스 정류장이 눈에 띈다. 누구도 서 있지 않지만 태양의 외줄기 시선을 또렷이 받는 바닷가 옆 정류장이다. 연홍을 가기 위해서는 바로 옆 부두에서 배를 타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 지도와 그림 하나로 유추해야 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정표다. 이곳은 나름 어려운 숙제를 풀라 하듯 연홍도를 들어가기 위한 부두의 시작임을 알리는 셈이었다.  화살표 하고 '연홍도 행 선착장'이라 해줘야 맞지 않겠는가! 이정표대로 가면 바다에 빠진다!


연홍은 아름다운 섬이다.
 


아직 건너지 못했지만, 금산면 거금도 주변에 아름답지 않은 섬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연홍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따라 더욱 아름다워진 것 같다. 연홍도는 금산면에 속해 있는 말을 닮은 섬이다. 연홍도라는 지명이 생기기 이전에 말을 닮은 섬이라 하여 마도(馬島)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직도 많은 어르신들은 '맏또'라는 이름을 더 익숙하게 부리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불렸던 지명이었으니 일본어의 발음 '바토우' 나 '마토우'에서 유래가 유추되기도 한다.


1950년 후반에 큰어머니가 이곳 마도에서 거금도 신금인 나의 친정 동네로 시집을 왔다. 큰아버지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맏또에서 시집와서는 어디서 큰소리'냐며 작은 섬 지명을 들먹거렸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로부터 자주 듣곤 했다. 그만큼 작은 섬이라는 뜻을 우회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섬인데도 섬에서 왔다는 말로 기를 죽인 큰아버지 연배인 우리네 아버지들의 언어폭력은 과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내 기억에는 연홍이라는 동네는 작은 섬이지만, 제법 머리가 좋았던 동창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기억한다. 때문에 음울하고 소외된 불쌍한 섬이라는 인식이 없었지 싶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학교를 결석해도 인정받았던 섬, 그곳에서 다녔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가고 싶은 섬 연홍도', '섬나라 미술여행'이라는 주제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연홍도 배가 정식 취항을 한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주민들과 홈페이지만 알고 있는 시간에, 주민들만 알고 있는 선장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인원수를 말하고 '이윤이 남을 선의 인원이 되면' 건너와주며 운영되었던 것 같다. 도 전화를 해 보았다. 먼저 인원수부터 묻는 선장님. 적은 수의 3명이라서였을까? 도항 시간 기다리셨다가 오라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연홍호가 취항이 되었지만 시간이 적혀 있지 않았다. 고깃배에서 조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연홍호의 시간을 물어보긴 했지만, '곧 올 겁니다.'라는 말이 전부였다. 다시 데이터를 켜고 검색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두번 주었다.


KBS공영방송 소속의 배도 보인다.


바다 건너 가까이에 파랗고, 빨간 집들의 형체의 연홍도가 보인다. 12시 30분 배를 타보기로 해본다. 많이 남은 시간이 무료했는지 남편은 처갓집으로 다시 차를 돌렸다. 시원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자는 생각이었지 싶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섬을 건너는 것을 이해 못하는 남편이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연홍도 지도를 보고 연홍도 다 봤다며 집에 가자고 초를 치는 남편이다. 내 남편이 아니라 분명 남의 남편이다 정의를 내렸다.


처갓집에서 배편 시간에 맞춰 나오면서도 남편은 계속 더운 날씨에 볼 것도 없는 섬을 간다는 우리 모자를 이해 못했다.(사실, 그날 11시에 폭염주의보로 낮 동안 야외활동 자제 문자가 왔었다.) 점점 나의 속은 바깥 기온보다 높게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때마침 택배기사의 문자가 도착한다. 경비실에 두고 가라 몇 번이고 부탁하고 포장지에도 써두었던 부탁을 무시하고 '집앞에 두고 갑니다.'라는 문자. 택배 기사님과 실랑이가 오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남편은 계속 이해를 못한다. '문밖에 두고 가면 누가 가져가냐. 그냥 문밖에 두고 가라면 끝날 일을 왜 거기서 말이 길어지느냐'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의 결과지다. 나는 남편을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통화에 끼어들며 혼선을 주듯 결론을 빨리 내지 않는다고 남편은 나를 다그친다. 나는 집앞에 두고 간 낙관이 들었던 택배 상자를 택배기사 손으로 다시 가져가도록 했다. 안전하게 스스로 보관하고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냥 두고 가는 것이 아닌 내 손이나 경비실에 다시 배달을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며칠 집에 없는 동안, 호가 새겨진 낙관 도장을 활짝 트인 문밖에 그냥 두라 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을 남편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이해 못하는 남편을 이해시키기 싫었다. 나의 사정도 있는 것이다. 이웃에게 연락하여 택배를 받아달라 부탁하기도 싫었다. 넉살 좋게 그런 것이 잘 안되는 나의 성격이기도 하다. 일부러 부탁하지 않아도 경비실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경비실 소장님이 문을 잠그고 식사를 하러 간 그 시간에 하필 왔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내게는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열을 내는 택배기사에 나도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매일 그 시간에 온다면서 경비 소장님 식사 시간대는 몰랐나보다. 그렇지만, 택배기사보다 남편이 더 미웠다.



남편에게 화는 계속 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선착장에 도착한 연홍호를 움직이는 선장님의 마음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삼삼오오 연홍호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태우지 않고 벌써 부두를 뜨는 배를 멀리서 보았다. 다시 되돌아오는 연홍호의 선장님은 터벅터벅 걸어오는 나를 향해 '빨리 뛰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직 출발 전 2-3분이 남은 시간이다. 남편과 아이도 나를 부른다. 남편 때문에 화가 난 다리는 뛰는 '척'이라도 해야 했었는데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시간이 아직 안됐잖아요. 선장님, 시간이 아직 안됐다고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의 속담처럼 남편에게 일차 화가 난 상황에서 선장님을 들먹였다. 그렇지만, 바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정식으로 취항을 했으면 운항 시간만큼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고백한다. 많이 죄송스러웠다고.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나의 시집이 정원을 넘어와 있었다.  도착 이틀 후에나 배달한다던 낙관 택배 상자는 택배기사님도 미안던지 하루 더 일찍 직접 배달을 해주었다. '마당과 정원 사이' 모든 게 갖추워졌다. 이제 사람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아름다운 섬,
마을 전체가 미술관,
지붕없는 미술관,
마도의 연홍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면서.


 




 <12시 27과 12시30분 사이>


배 시간이 없었다

인터넷 바다를 떠돌며

배 시간을 만났다

선장 번호도 적어졌다

개인 선박, 장사하나 봐

말처럼 생겼다 해서 연홍도는 마도(馬島)

비공식적 발음은 [맏또]였어

섬바람은 언어에도 강한 짠 내 안겼다

2017년 7월에 정식 취항 소식은

한 장 걸린 현수막이 전부

뛰면 닿을 것 같은 금산면 속 작은 섬

바람 뒤엉킨 푸른 물살 길을 막았네

금산면 신양 마을 버스정류장에

1번 둘레길의 안내판이 즐비하니

‘지도 봤으니 연홍도 다 돌았다’

집에 가자는 그 남자의 여행 스타일

기다림도 여행이라 모르는 남자다

이럴 땐 그녀의 남편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늘 다시 몸에 걸치고 마또로 향한다

‘문 앞에 택배 있습니다.’ 문자가

그 남자 옆 조수석으로 기어들어왔다

시 경비실로 맡겨달라는 커다란 메모

호기롭게 무시했던 택기사님

경비 소장님, 식사 시간이라 문 잠겼다 

오히려 그녀에게 황당하다 하시네

(그녀도 그럴 줄 몰랐지 그러면 기다렸다 주고 가던가)

전화도 안 받았다고 역정 내시네

(그러니까 부재중이라 메모 남겼지)

결론 없이 오가는 실랑이 속

남의 남자는 그녀의 편이 아니라

기사님 편이네

결론 없이 말과 말이 얽히는 사이

그 남자와 그녀의 입말은 공기와 섞였네

12시 30분, 신양 출발 연동도 배는

손님이 오르기도 전 달아나려 하네

싸움 바람 날아가지 못한 다리는

재촉하는 선장님 말에도 달리기 싫어졌지

12시 27분, 출발 3분 전

시간 맞춤형을 무시하는 선장님 말에

그녀의 다른 영혼이 타협하지 말라 한다

‘시간이 아직 안 됐잖아요!!!’

‘선장님, 시간이 아직 안됐다고요!!!’

고래도 도망갈 악 소리에

그 남자 배에서 내린다

아이도 따라 내린다

그 남자는 창피했겠지

그 남자의 아내였으니까

고백하자면 그녀가 나였으니까

그 남자는 끝까지 그녀의 편이 아니다

달리는 성의라도 보였어야 했다고

그래도 선장님 시간은 지켜주세요!!!


<12시 27분과 12시 30분 사이, 나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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