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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06. 2017

십만 원의 행복

2017경기도환경교육한마당, 골든벨을 울릴까? 말까?


  지금의 나. 자주 혼자의 시간을 쓰며 즐기는 사십 대가 되었다. 삼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아이가 자라면서 삶의 방식에 적당히 타협을 할 줄도 알게 되었다. 바로 그것은 조금은 외롭지 않게, 적당히 즐겁게,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사는 방식을 터득해 가는 것. 아들을 키우다 보면 학년마다 그 무게를 숨겨 둘 것이고, 그럴 때마다 해결을 위해,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도 밀고 나가고 싶은 나의 방향은, 몸의 활동량을 늘려 여행과 글쓰기, 강의하고, 듣고 싶은 강의를 따라 넘치지 않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마치 잔잔하게 윤슬을 이고 강물이 너그럽게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 번잡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지금의 생각과는 반대로 나의 학창 시절에는 혼자서 노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의 존재가 그런 단어 자체를 부정하게 했던 것일지도. 생각해 보면 나는 친구들을 끌고 다니는 만만치 않은 오지랖의 소녀였다. 그리고 조용한 침묵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들의 모습에서 아슴아슴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독립성에, 잘 뛰어다니고, 목소리가 크며, 친구들을 좋아하고, 정의에 불타는 문제 해결사의 모습을 말이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반대표로 골든벨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한다. 무슨 영문인가 했다.


  “엄마, 이번에 체험 간다고 했잖아요. 거기 경기도문화의전당이요. 환경 관련 문제 골든벨을 한대요. 여러 학교에서 6학년까지 한 30반 정도가 오나 봐요. 그래서 퀴즈를 풀 반대표 한 명씩 뽑았어요.”

  “그래서? 네가 나가게 된 거니?”

  “당연하죠. 제가 나가야죠.”

  “야 그건 좀 위험한 말인 것 같은데.”


하며 웃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반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엄마 제가요. 안 나가면 너무 실망이 될 것 같아서 꼭 나가고 싶더라고요. 결국 친구들이 뽑아준 거잖아요.”

  “그래? 나가고 싶은 친구들이 많았나 보구나.”

  “4명이 나왔는데요. 반 친구들이 저를 최종적으로 뽑아 줬어요. 그래서 14페이지나 된 환경 관련 내용 프린트받아왔어요. 아참 참고 도서도 있대요. 그거 좀 얼른 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모든 책들을 다 사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 어떠한 목적과 필요에 의해 책을 요구하면 많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책을 구매한다. 많은 부모들도 같은 마음이겠지만. 아들의 두 손에 쥐어지지 않을 만큼의 두꺼운 [환경 개념 사전]이라는 책이 도착했다. 나는 그 책의 두께에 기가 눌린 게 틀림없었다.


  “지산아, 책에서 나온다는 30%의 문제는 그냥 포기하는 것도 나을 것 같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일주일 만에 이해하고 가는 것 자체가 조금 불가능하지 않냐. 그냥 마음 편하게 프린트만 읽고 가면 될 것 같은데.”


  라고 속삭였다. 사실 이왕 나가는 것 욕심은 있었지만, 이것은 해도 해도 너무나 두꺼운 책이 아니었나 싶었다. 정보, 환경, 과학, 수학 쪽의 다양한 독서 덕분에 별거 아닌 양 책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가 신기했다.


  “엄마 안돼요. 친구들이 난리 났어요. 몇 문제 이상 못 맞추면 안 된다고 벌써 약속을 했고요. 학교 가서는 잘 읽고 있냐고 친구들 응원이 대단해요. 그리고 10만 원이 상품으로 온대요. 반 친구들이 그거 받아야 한다고 해요.”

  “그래도 큰 형들도 나오는데, 벌써 기대 안 했으면 좋겠다. 응?”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체험하는 당일 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면 중간에라도 전화해서 승전보를 알렸을 일이지만 조용했다. 픽업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내게 전화를 건 그때서야 아들의 목소리가 흥분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엄마! 골든벨 일등! 일등!”


2017년 경기도환경교육한마당 골든벨의 주인공, 반송초등학교 3학년 최지산. 오른손에 든 10만 원의 상금을 들고.


반 친구들이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무대 앞에서 많은 응원을 해 주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에 나도 놀라 아들에게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체험 중간에는 친구들이 만 원을 받았다는 것에 흥분을 했고, 반 친구들의 계속된 관심으로 전화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엄마! 패자부활전도 한 번 했어요. 처음에 적은 번호가 맞았는데 바꿨다가 틀렸어요. 근데 다시 문제 맞혀서 살아났어요. 6학년 형도 제 옆에 앉았거든요. 그 형도 떨어지고요. 그런데 한 번도 안 틀리고 끝까지 올라온 형들이 두 명 있었는데 결국 제가 이겼어요. 저 때문에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형들의 마음도 읽어주었던 것일까. 집에 와서 위로의 말도 건넬 줄 아는 녀석이다.


  “엄마, 근데요. 저는 기뻐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옆 자리에서 문제를 풀었던 옆 반 친구가 골든벨이 끝났는데 울더라고요. 그래서 “왜 울어?”라고 위로를 해줬는데, 그 옆에 있던 친구가 “네가 커닝해서 울잖아.” 이러잖아요. “난 커닝 안 했어!”라고 말은 했는데요. 기쁨의 온도가 더 높아서 기분 나쁘다 뭐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이웃에 사는 그 반 친구가 다시 아들에게 그 ‘커닝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들었다. 그 반 문제를 푼 대표 친구가 지산이가 자신의 답을 커닝했다는 것이다. 위험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친구들이기에 시기와 질투가 따르는 과정을 겪을 때 그럴 수도 있다지만 엄마로서 듣고 있자니 불편함이 묻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들은 별 크게 의식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엄마 생각해 보세요. 제가 걔 것을 봤으면 제가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아남았겠어요. 중간에 8명인가 남았을 때 자리를 옮겼거든요. 자리에 옮기고 나서부터는 그 친구는 답을 틀렸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떨어졌고요. 그렇게 보면 걔가 내 걸 본 것은 아닐까요?(이런 말도 위험하다고 주의를 줬다.) 마지막 문제는 그 현장에 있는 체험 부스 대가 몇 대냐고 물어봤는데 순발력이 있었던 제가 혼자 38개라고 써서 맞췄잖아요. 다 떨어졌어요!”   


  아들의 말이 그렇다곤 하나, 엄마 입장에서는 언짢지 않았다고 말은 못 하겠다. 10만 원을 상금으로 받고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돈을 쓸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을 만들어 온 아이였다. 친구들 사이에선 뜨거운 감자가 되어 버린, 엄청나게 크나큰 사건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10만 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거쳤다고도 했다. 라면 파티, 보드 게임 사기, 과자 파티는 이 어린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즐거움으로 겨울을 맞이할 즐거움을 선사했다. 친구들과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고, 강렬한 추억 하나로 다시 담아질 10만 원의 행복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아들의 이름과 함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십만 원 때문에 정신을 더 붙들고 십중했다고!


  골든벨을 위해 주문했던 [환경 개념 사전]을 대회가 끝났는데도 팔에 끼고 다닌다. 이런 책 너무 좋다며! 감동을 하며 누워서도 필사를 하고 있다.  “엄마 2년 만에 이런 멋진 책을 만난 것 같아요. 역시 저는 ‘~은 ~이다’라는 식의 정보가 담기고 정의가 내려진 책들의 문장이 좋아요. 읽을거리가 많아서 좋네요. 정말.”  환경 골든 벨이 끝나고도 두꺼운 책을 필사하며 보고 있는 아들 자체의 많은 능력과 지성이 부정되는 것만은 싫다.   


상금이 십만 원이 아니라 이십만 원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도 십만 원으로 알고 즐거워했던 아들의 초심을 담아 제목은 그대로 둬야겠다.


[2017년 경기도환경교육한마당, 반 친구들과 함께 쓸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었던 20만 원의 상금을 전해주신 관계자 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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