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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Nov 21. 2017

20만 원 상당의 소문

아이들 세상! 어른들 세상! 다를 것이 없네, 같이 가치 있는 세상으로!



https://brunch.co.kr/@mire0916/196  <이 글은 얼마 전에 올린 '십만 원의 행복'의 후기 편 글입니다.>



  아들이 옆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아왔던 날은 내가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난 다음날이었다. 그 편지라는 것이 A4용지의 반 크기에 대여섯 명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굵직한 연필 글씨체 종이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었다. 엄마의 직감이 발동했다. ‘아하,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아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전화에서 “아이들이 편지도 썼더라고요.”의 그 편지의 주인공들이었다. 아이들의 글씨는 종이에 제대로 짙게 옮겨지지 않았거니와 모음과 자음이 자유롭게 영혼을 탈출해 있었던 터라 심각해졌던 나의 얼굴 근육을 웃음이 먼저 덮어버렸다.


  대여섯 장의 종이에는 편지라기보다 무언가 반성문에 가까운 문장들이 줄을 이었다. 


얼마 전, 아들이 체험학습에서 반대표로 나갔던 2017경기도환경한마당 골든벨. 그곳에서 커닝 사건 소문이 가져다준 파장이 컸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사과 편지였었다고는 하나 어른인 내 눈엔 반성문과 형식을 빌린 편지 아닌 쪽지처럼 보였다.


  나 또한 초등 3학년 아들이 경기도 환경 단체에서 실시하는 골든벨 퀴즈에 일등이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하였다. 아들이 원하고 원했던 두꺼운 <모두를 위한 환경 개념 사전, 한울림>을 사주고 ‘후회는 없어라.’라는 마음뿐이었다. 반송초는 3학년이 총 8반이다. 각 1명씩 반대표로 나간다면 그래도 뭐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학교 다른 학년과 30명 정도 섞어진다면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문제를 푸는 동안 답을 생각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했다. 예를 들면, ‘자동차나 공장 등에서 생겨 대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이며, 질소, 일산화탄소로 대표되는 대기오염물질은 무언인가?’라는 문제에 아들은 ‘초미세먼지’라고 썼다고 한다. 답은 ‘미세먼지’였는데, 틀렸다고 낙담을 하는 순간, ‘초미세먼지’도 답이라고 한 장면에서 극도의 흥분을 했다고 한다. '지구의 날이 언제인가?'라는 문제도 있었는데 만약' 4월 22일'이 객관식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면 자신은 답을 잘못 적었을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다. 체험학습을 떠나기 전날, 같은 행사 골든벨에 도전하는 다른 반 친구(아들의 반 회장의 쌍둥이 여동생)와 반 친구들 몇 명이 프린트를 들고 서로 문제 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서로 내준 문제가 많이 나왔다고도 했다. 그리고 패자부활전이 되었던 전설의 그 문제는 친구들이 흑역사로 남기면 안 된다고 해서 스케치북에서 답을 떼어버렸다고 했다. 웃기지만, 그래서 나도 이곳에 아들의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해 그 문제를 적지 않기로 해본다. 마지막 문제까지 6학년 형들과 섞어져 4명이 남았는데, 그곳 행사장의 부스가 몇 개인지를 물었다고 했다. 순발력 싸움이라 생각하고 미리 봐 두었던 부스와 더불어 눈을 돌려 얼른 다고. 자신만이 38개를 쓰고 나머지 다 다른 답이 되어 결국 일등을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회가 끝나고도 느낀 것을 잊지 않은 아들이었다. 미리 받았던 팸플릿을 자세히 봐 두었다면 장소와 부스 문제는 쉽게 풀 수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머리에 쥐가 나는 투쟁을 거쳐 대회를 끝냈던 아들. 아이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상금 10만 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그런데 행사가 끝난 후에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살펴보니 20만 원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에 이미 반 아이들도 ‘멘붕’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있었고 ‘대박’과 ‘실화냐’를 연발하며 흥분했다고 한다. 반 친구들과 아들의 기쁨은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겠지. 대표로 나간 옆 반 아이가 울고 있어 위로하자 ‘네가 커닝을 해서 울어.’라고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단다. 더 이상 꼬리를 묻지 않고 ‘나 아닌데. 나 커닝 안 했어!’에서 멈췄단다. 우승이라는 상황이 너무나도 기뻐서 그 기쁨이 속상함의 문장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밖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말과 말이 전달이 되고 친구들의 입으로 오갔던 소문이 결국 나의 귀에도 들어오고 말았다.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닌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으로 책을 읽으러 오는 아들과 동갑내기인 이웃 친구에게서였다.(이 부분은 앞선 글에 사연을 소개했다.)


  “○○아, 오늘 책 읽으면서 OO가 아무 말 안 하던. 골든벨 축하 인사라든가?”

  “축하는 했는데. 근데 자기 반 골든벨 나간 친구가 내가 커닝하였다고 말을 했대요. 너 커닝했니? 너 커닝했다더라. 하면서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안 했다고 했죠. 근데 그때 거기서도 내가 들었거든요. 골든벨 끝나고 그 친구가 울고 있어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옆에 친구가 네가 커닝해서 그렇잖아.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넘겼는데요. 오늘 OO가 책 읽으면서 또 그러네요. 자기 반에 소문 다 났다고요.”


  내가 알 수 있게 소문을 다시 데리고 직접 오다니. 이웃 친구의 말은 결국 문제를 풀어가는 데 다른 형태의 방법이 되어줄 것 같았다. 불콰해진 엄마의 자존심. 내가 받아들여야 했던 속상함의 저 편에 많은 말들을 잠깐 놓아두고 ‘직.접.들.었.음.’에 감사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웃 친구가 아들에게 전한 말을 듣고 달아오른 내 얼굴이 좀처럼 그 열기가 식지 않았다. 이웃인 그 아이 친구 엄마를 통해 이런 말들의 진원지를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런 말들이 오갈 수 없는 그렇게 어려운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들과의 선을 잠깐 그어보기로 결정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한 문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젠 진심은 안드로메다에, 위로하는 척 하는 엄마들을 믿으면 안 된다.’였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직접 말이 잘못 뻗혀나갔던 진원지를 잡아보고 싶었다. 이렇게 결정할 수 있도록 경험을 준 것은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엄마들의 힘이 컸다. 아들이 이곳으로 전학을 오기 직전, 1학년을 거의 마무리 하려던 11월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손찌검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머리를 쥐어박기로 유명한 선생님으로, 엄마들은 대놓고 말하기를 꺼려하며 '쉬'하고 있던 분위기였다.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억지로 덮으려 했던 그 담임 선생님의 사건을 회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을 들어 머리에 살짝 주의만 줬다는 선생님의 말과 말, 친구들과 머리를 이미 부딪친 후(아이는 그것은 꽤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었다고 말했다.)였기에 자신의 잘못이 아닌 아이들의 잘못으로 밀어버린 선생님, 그렇게 변명과 변명으로 일관하던 그 담임 선생님. 담임은 살짝 그냥 쥐어박기만 했는데 세게 맞아버린 아이 사이에서 자신만 슬금슬금 빠져나가기에 급급해 보였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전에, 반 엄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은 결국 해결 순서가 어긋나 담임 선생님이 변명으로 일관하게 자극시켜버린 사건 되어버렸다. 결국 더 크게 커지지 않았던 수순에서 말과 말의 어긋남을 끝냈다. 경험이라면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내가 선생님에게 직접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담임 선생님에게 먼저 사건의 일말을 알려야겠다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OO이 엄마예요. 문자가 길어질 듯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골든벨 1등을 하고 나서 기분 좋은 일만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3-O반 대표로 골든벨에 나간 ○○ 군이 반 친구들에게 '우리 집 아이가 자신의 답을 커닝했다고!' 말을 했다더군요. 이 말은 이웃에 사는 동네 친구로부터 직접 들었던 이야기이고요. 아들도 골든벨이 끝나고 울고 있는 그 친구에게 '왜 우냐고?' 위로하며 물어봤는데 그 반 친구가 '네가 커닝해서 울잖아!' 라고 했다더군요. 물론 우리 집 아이는 '난 커닝 안했어!'라고 반박의 말을 했고요. 3학년 아이들이니까 어려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이건 아주 위험적인 요소가 많은 말인 것 같아 선생님께 전달을 하는 바입니다. 제가 직접 3-O반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었으나 그건 또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요. 말들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 또한 조금은 언짢은 기분을 누르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아무쪼록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에 대한 주의가 없다면 환경 골든벨이 끝나고도 퀴즈를 준비하며 샀던 두꺼운 환경 개념 사전을 필타하며 보고 있는 OO이라는 우리 아이 자체의 모든 능력과 지성이 부정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월요일 아침부터 불편한 문자를 드리게 되어 송구하네요.”


  담임 선생님은 문자를 보낸 날 해넘이가 되어서야 답을 주었다. 미처 문자를 늦게 봤다고 했지만, 정신없는 업무 속에 계속된 고민이 따랐던 흔적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곧 출산을 앞둔 선생님으로 체험학습을 함께 따라가지 못했는데 다른 반 아이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오갔다는 사실에 속상함을 표현하는 문자를 엮어 마음을 써주었다. 문제의 말을 옮긴 아이들의 반 담임 선생님과 상의 후에 내일 다시 연락을 준다는 답변이었다.


  다음날 속상함과의 과제를 끝마친 선생님은 밝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넣어주었다. 그 반 선생님이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아 소문에 관련된 진원지를 물었고, 그 말을 했던 친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모양이다. 그 결과가 편지로 전해졌던 것이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으면 진심을 담은 미안함을 편지로 건네라.’라는 선생님의 꾸중을 받들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친구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증거가 없으니 네가 커닝을 안했는지 난 모르겠고,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이 미안해’라고 해석되기도 하는 문장도 있었다. 안쓰러움과 귀여움 사이에 공존하는 아이들의 행동이긴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라도 자신들이 뱉어놓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며칠 후, 2학년 때 아들과 같은 반을 했던 다른 반 여자 친구를 학교에서 만났는데 아들에게 그러더란다.

  “너 골든벨 거기서 커닝했다더라.”

  “나, 안했어. 그리고 그런 말한 친구들한테 미안해라고 편지도 받았어.”

  “거짓말하지 마.”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믿고 싶은 말만 먼저 듣겠지. ‘음. 너희들 세상, 어른들 세상도 마찬가지야.’ 라며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못된 것을 먼저 알아버린 아이들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아이에게도 달려가고 싶었다.

  이젠 나도 손을 놓아야 하는 시기겠지. 아들에게는 ‘그 편지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똑 같은 소리 하면 보여줘라.’라고만 했다.


제주도 세계자동차박물관, 2013년 6살과 2017년 10살 사이.


상금으로 20만 원을 그냥 받는 것이 아니었네. 조용히 퍼져나간 소문은 가볍지 않은 말이 되어 돌아왔다.  그 상금으로 반 아이들과 함께 즐긴 파티의 시간 뒤에 조용히 아들이 겪어야 했던 세상살이의 흔적이 애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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