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인의 정원이야기 Oct 22. 2018

14. 소소정 타운 일기, 가을꽃 쑥부쟁이와 구절초!

나미래 시인 詩詩한 정원, 타운하우스 골목에 가을향이 짙어간다



작년 이맘때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만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울타리를 넘을 만큼 키가 자라려나 하며 대추나무 밑동 주변에 심었던 녀석들이 골목의 햇볕 바람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올봄 가지를 한 번도 잘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햇빛을 따라 자꾸만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고 있네요. 지나가는 이웃들이 '아이 예쁘다.'라는 말을 제법 귀담아듣고 있는 모양입니다. 더 예뻐지려고 하니깐요.





9월 말부터 하나둘씩 피기 시작했어요. 먼저 꽃잎을 내밀었던 것은 쑥부쟁이(아래 짙은 보라)였네요. 그렇지만, 찬바람이 일면서부터는 구절초(위의 옅은 분홍색)가 제법 많은 꽃잎을 활짝 피우더군요.


아홉 번의 마디가 생길 무렵에 꽃이 핀다 하여 불리는 구절초에 요즘 제가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렇게도 소박하고 예쁜 꽃이 저의 정원에서 피고 있다는 사실! 3년 전까지는 상상도 못 하였던 일이었죠.  





제가 구절초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이

쑥부쟁이가 이렇게 자리다툼을 하며 가을을

함께 빚고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구절초에 내어주고

홀연히 자리를 지켜줌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 녀석에게.

쑥부쟁이 사진을 아래로

내려보시면 쑥처럼 자라는

톱니 모양의 잎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색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겠죠!





9월 초부터 더디게 피는 쑥부쟁이를

기다리다 목이 빠질 뻔했지만,

가을을 물들이고 가는 여정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 위에 지나온 쑥부쟁이에겐 미안하지만,

이 녀석 구절초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살짝 고백합니다!





얼마 전 아들의 체험학습 도시락에 구절초를 올렸다고 하니 아들이 그러더군요.

"먹을 때 얼른 꺼내야지!"라고요.

친구들이 많은데 창피했을까요?

그래도 넣지 말라는 소리보단 좋았답니다.



<꽃도시락, 나미래>


가을 향기 외로웠나

축구공 돌려차기로

꽃가지 날던 변명

아들 도시락이 받았네 





보세요! 보세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래도록 제 가까운 곳에서 꽃잎을 올리고

짙었던 분홍이 바래지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그 변화의 과정이 참 즐거웠습니다.

엷은 분홍은 또 봄을 생각나게도 하지만

가을꽃! 가을꽃이 분명합니다.  







<구절초, 나미래>


내 얼굴이

밖으로 향했던 건

발길에 가을향 올리고파


내 가지 부러짐도

다시 생의 힘으로

잠시 머문다며


거친 말 부딪치는

주인님의 얼굴 매듭에

내 향기 흘려주려


아홉 번째

마디에 걸치서

가을을 붙이고 오리고


(2018.10.5.)







살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또한 복잡함의 연속이기도 하고요.

가족이 여러 갈래에서 만들어지는 행위.

결혼이라는 관계가 그 진입문 중에 하나죠.

친정 쪽과 만들어진 가족에서
불화가 있기도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날.

입에서, 마음에서,

거친 말로 내뱉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녀석들 앞에서 반성하듯 시 한 편을 쓰고 나니

또 물길 흐르듯 풀려갔지요.





조금은 심하게 바깥으로

몸을 맡겨버린 구절초 줄기 녀석들입니다.

몇 가닥을 빼 가드닝을 해왔던 터라

그가 그렇게 크지 않을 때는

나름의 멋이라며 뿌듯했었는데

키가 너무 자랐어요.

단지 분들이 예쁘게 봐주시고

민폐로 여기시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요.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제 몸을 넣어보네요.

가을은 겨울을 준비하라 하고

자연을 아들을 성장하게 합니다.





뒤뜰에도 쑥부쟁이(아래의 짙은 보라)와

구절초가 앞마당 풍경에 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느 쪽이든 사랑스러운 녀석들입니다. 제게는.

내년에는 얼마나 더 풍성해져 있을까요.

기대가 되는 가을꽃의 향연이었습니다.







<보라 구절초, 나미래>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비를 타고

내일의 가을 매듭에




매거진의 이전글 13. 소소정 타운 일기, 쉬는 날, 눈이 온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