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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n 24. 2019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4, #친구의 부고

#열차 안에서, 잊혀져 가는 것들, 잊지 않을 것들



  여행 중, 고향 옆 동네 동창 친구 아버님의 부고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그 친구의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로 알려지는 단체 문자였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이렇게나마 소식을 연결해주는 기계가 황망한 당사자들을 대신해 제 할 일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 안에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들과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 이틀을 꼬박 달렸던 때였고 러시아 남동부 지역인 ‘치타 역’을 막 지나고 있을 때였다. 깨어 있는 시간은 짧고 무언가에 홀린 듯 잠을 청하고 있는 몸은 앞으로 점점 늦춰질 시차에 적응을 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신과 영혼과 육체는 완벽하게 경계를 긋지 못하고 있었다. 미지근하게 혼미한 상태, 침대칸 공간밖엔 여유가 없었던 좁은 곳에서 적응해 가기 위한 열차 탑승 사흘째 이른 아침이었다.   



  러시아의 봄 햇살은 투명한 창문 곁으로 서둘러 날아왔다. 눈부신 봄빛의 유혹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이젠 많은 친구들의 부모님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현실감 있게 느끼면서 말이다. 여행을 와서도 기계로 연결된 반복된 일상의 소식들이 꽤 끈끈하게 이어져 있음을 부정할 순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서둘렀던 시간이었다. 그 생각도 했다. 만약 이 여행 중에 친정 부모님이나 시댁 시어머니, 가까운 형제들 중 황망한 소식을 듣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상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찌 되었건 연락받은 장례식에 참석을 한다는 옛 동창 다른 친구에게 편부를 부탁했다. 적어도 지금은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자로의 인사는 한국에 돌아가서 넣어도 충분히 이해할 거라 믿었다. 또한 앞으로 만날 기회가 없더라도, 내 부모에게 빚을 갚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친구의 올곧고 선한 기운을 간직하면 되는 거니까.



  생각해보면 이 친구에겐 고마운 점이 참 많다. 옆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본 적도 없다. 남자와 여자 사이여서 그랬을까. 10대에 그 흔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말싸움도 없었다. 성장하면서도 깊은 대화 없이 흐뭇하게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친구였다. 태어나서 자란 거금도 섬 안의 종합고(상업과)를 졸업한 나는 대학이라는 지성인 창구에 진입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랬기에 더욱 국립대학에 입학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참 잘했던 그 친구를 부러워했던 나다.


  그렇지만 나도 그 친구를 통해 얻게 된 부러움을 막연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이후 내게 맞는 도전 목표를 세워가며 그 방법을 찾아갔으니. 그것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고마웠던 친구. 일본 유학시절, 그 친구의 아낌없는 격려가 나의 자존감을 올리는데 큰 역할이 되기도 했다는 것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던 날은 친구 아버님의 부고 문자를 받은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내가 문자를 넣기도 전에 그 친구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문자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내 눈이 커지고 있었다. 분명히 오타일 것이라 확신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핸드폰 속으로 눈이 빠질 듯이 들어갔다.


  친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그 친구 아버님이라 읽었 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 열차 안에서의 몽롱한 정신 상태가 텍스트의 읽기 오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장례식의 주인공은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그 전화기의 주인인 젊은 내 친구였던 것. 내가 알고 있었던 오래전 옛 친구. '그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는 고인이 된 친구 아내의 대필 문자였다.


  오래전 그 친구의 대학 입학식에 꽃다발을 들고 갔다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던 일이 있었다. 취업 준비로 힘들었던 내게 며칠간 위로를 도맡아 해 주었던 그 꽃향이 아직도 기억나는 것 같다. 이젠 위로의 한마디를 그때 전하지 못한 꽃과 함께 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故 최효중 님,

그곳에서 아프지 말고 영면하시게.

잘 가시게 친구.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중

창문 너머에서,

푸른 늪에서,

철길을 지킨 곳에서

만난

흰색 샤프란 꽃을 올리며.


<안개로 태어나라!>

철길 아래 빛나던 들꽃
하얀 별을 굽고 있더라
불꽃을 피워 안개가
샤프란 꽃술 올린 그길


나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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