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도 나쁘지 않았다 닭장같이 좁아도 사람들은 익숙하게 적응해 간다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는 자주 잠에 취하게 된다 열차에서 만난 사람들의 문화를 엿보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대기실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 4시간 여를 기다렸다. 우려했던 공항 도착과 시내까지의 진입 시간이 넉넉해진 것도 여행 실전에 강한 긍정의 힘이 미리 도착한 모양이다. 일요일로 넘어가버린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간, 열차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플랫홈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열차표로 바꾸지 않고 온라인 e티켓을 그대로 소지했지만 탑승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열차는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늦은 저녁에도 이른 아침에도 서서히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것이다. ‘느리게 가는 시간의 여행을 즐기는 거야!’라고 지루함을 다른 말로 다 표현하리라 마음먹었다. 정신없었던 일상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게 아닌가 라고(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좋게 생각해야 한다고.
그러나 닭장같이 좁은 열차 안의 사각형의 침대를 직접 보니 불편함이 직감적으로 짐작되고도 남았다. 여섯 공간의 사람들 자리가 뚫려 있는 3등석이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곤 하지만, 남자들이 옆 침대에 있을 때의 불편함은 전혀 상상을 하지 않았으니. 그런데 이 불편함은 사람들을 보는 재미로 시선이 익숙해지며 바꿔지고 있었다.
아들과 내가 묵었던 1층과 2층 침대, 복잡하고 좁아보이지만, 나름의 룰을 따라 생활하다보면 어느새 익숙해진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3등석을 예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라는 거다. 099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기 전부터 2등석으로 자리 변경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음을 어느 글에도 밝힌 적이 있다. 우선 3등석인데도 의외로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둘째,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이렇게도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오픈되어 있는 곳에서 제대로 느끼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내게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아른거려도 상관없었다. 풍경을 벗 삼아 내 할 일을 하면 됐으니까.
열차 객실의 차이도 확연했다. 많게는 3등석과 2등석이 10만 원 정도의 가격 차이가 있는 만큼 2등석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3등석이 신형이었고 2등석이 구형이었던 것은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2등석엔 전기 콘센트도 하나밖에 없어(3등석엔 각 침대마다 콘서트와 2층엔 케이블 코드까지) 복도에 멀티선을 올리고 전기 충전을 하고 있었다. 즉, 이번 099호 횡단열차는 기존의 낡은 2등석 열차와 신형 3등석 열차를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 운이 참 좋았다.
(좌) 우리 자리 건너편의 깨끗한 1층 테이블(낮엔 테이블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과 각 침대마다 220볼트 사용이 가능한 콘서트 노트북과 핸드폰 사용이 자유로워서 좋았다.
아들과 스푼과 포크를 사기 위해(아니 빌리기 위해?) 열차 매점과 식당을 찾으며 돌아다니다 마주친 2등석. 두꺼운 갈색 나무 자동문이있었고 4인실 침대가 놓인 형태였다. 복도식 아파트처럼 그 문을 열어놓기도. 문이 없었다면 오히려 좁고 답답한 면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2등석은 복도를 활용하는 공간으로 3등석은 그 복도 자리에 침대가 2인실 더 올라갔다는 것과 전체 오픈형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3등석 오픈형 열차의 탑승에 대한 일련의 행동 지침이 아주 익숙해 보였다. 하얀 시트가 제공되자(얇은 일인용 침대 시트 2장, 베개 커버 1장, 수건 1장, 우리는 따로 주문에 포함시키지 않아 1인당 144 루블(한화 6천 원)을 지불하고 현장에서 받을 수 있었다.) 2층 침대에 놓여 있는 매트리스를 내려 능숙하게 의자 위에 깔고 신속하게 시트를 까는 것이다. 잠을 청하는 것까지도.
(좌)열차 안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이렇게 수기로 영수증을 써서 건네준다. 시트를 대여했을 때의 영수증, (우)아들은 2층을, 나는 1층을 이용하니 침대 사용법이 아주 편리해졌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에세이를 지금부터 조금씩 펼쳐 놓겠습니다. 지루했다면 지루했을 열차에서 창문이 훑고 지나간 풍경과 사람들을 감상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 시간이무엇보다 행복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