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래의 여행이야기_오대산 선재길에서의 하루
아들과 나는 강원도 오대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아이에게 화부터 내는 나를 바꿔보자 다짐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다짐을 한다. 차분하게 아이 이야기를 먼저 듣고 부드럽게 다가갈 수 없을까? 이렇게 자주 나를 다그친다. 짜증 나는 주기마다 아이를 잡고 흔드는 내가 점점 싫어지기도 한다. 출장으로 자리를 자주 비우는 남편에게 기대고 싶은 일을 아이에게 어른의 감성으로 내게 다가오라 한 것은 아니었는지.
아침 대부분의 시간을 식탁에 앉아 입 속에서 오물거리며 밥을 넘기지 않는 아이를 본다. 나는 아이가 보도록 나의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나무란다. 밥그릇을 뺏고 싶지만, 일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밥 먹는 아이의 곤욕을 알아주고 싶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에게 ‘입 짧은 게 문제’라며 있는 성질 다 다시 그 아이 밥그릇에 담아 넣는다. 아이가 맞는 말을 해도 내게 늘어지게 대꾸하는 것도 싫다. 답을 안 하고 있는 것도 싫다 한다. 그래 나의 이기적인 발상 이리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 받아쓰기가 있는 날은 등교 준비를 끝내고 전날 연습했던 받아쓰기를 한 번 더 써보고 가는 것이 우리의 묵계적인 일상이다. 띄어쓰기 틀렸다고 다 지우고 다시 쓰자는 아이. 예상보다 많이 틀린 것에 인정을 못한다. 다시 쓰고 간다는 점입가경이 된 상황은 아이에게 엄마의 잔소리가 뿌려진 다그침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아이는 기신기신 정리를 하는 모양새다. 시간도 없는데 더 쓰자는 말이 나오느냐? 그럴 거면 더 일찍 일어나지! 밥이 입속에서 시간을 다 잡아먹었다. 라며 나는 정이 없는 소리를 해댄다. 다른 엄마들 같으면 이와 같은 아이의 행동에 과제집착력이 뛰어나다며 토닥토닥 어르고 달래 학교에 보냈을까? 아이는 억울했는지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 말과 생각보다 늦게 따라오는 20분여의 걸음을 걸으며 아이와 함께 하는 등굣길의 일상을 만든다.
찬바람이 일렁일 때는 나도 모르게 일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억지로 데려오려 하는 것 같다. 차분히 앉아 글이 써지지 않는 것도 아이를 탓했고, 마음을 바꿔 새벽에 일어나 자리에 앉아보자 하던 계획은 첫날부터 물거품으로 날아간 것도 내 의지가 문제인 나를 탓하지 않았다.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아이를 향해 칭찬 한마디 날려줄 줄 모르는 사악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경계가 없는 일상 과제에 묻히고 있었다. 설핏 괴물이 된 나의 얼굴이 아이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 가을여행 삼아 집을 비워보는 것을 아이에게 제안했다. 두세 번 아이와 함께 했었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것은 의미가 크다. 어린아이의 새초롬한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겠지만 몸은 자연을 기억하겠다 싶었다. 아빠와의 단풍맞이 가족여행을. 우리 둘의 전나무숲길의 방황을. 또한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는 장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에. 서로서로 잊고 지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말이다.
오대산 선재길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와 대화 길로 간택된 최상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집에서 200㎞가 채 되지 않는 곳은 숙박하지 않아도 되는 드라이브를 가장한 하루 여행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걷고 자연색을 감상하고 아이와 손을 잡는 시간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 선재길은 오대산의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이어진 곳에 약 8㎞가 되는 산속 오솔길이다. 야트막한 산새에 길이 험간하지 않아 편하게 걷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오대산은 신라시대에 중국 오대산을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 스님에 의해 개창된 문수보살의 성지이다. 이 문수보살은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이라 하는데, 이러한 문수의 지혜를 시작으로 깨달음을 목적으로 향해하는 가는 것이 화엄경의 동자. 즉 선재인 것이라 한다. 이렇게 ‘선재’의 이름을 따 있는 길은 ‘이 길에서 참된 나를 발견하라.’는 간결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새벽의 어스름 속에 일어나 보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기상미션마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계획이 계획답지 않을 때 또 나름 여행의 묘미가 있는 것이려니 했다. 여행 계획 며칠 전,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가는 것이 짐짓 힘에 부칠 것 같아 집에서 쉬자고 했더니 아들의 면박을 받아야 했다. ‘가자고 약속을 하지 않았냐고.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는 말을 듣고 아이가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강원도 권으로 진입했음에도 잡음이 심하지 않은 ‘책 읽어주는 라디오 EBS’를 세 시간 정도 듣고 월정사 경내로 들어섰다. 아이는 집에서 출발하며 듣기 시작했던 라디오 방송을 주파수를 건드리지 않고도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리는 방송에 신기해했다(수도권 지역에서 벗어나면 같은 방송이지만 주파수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오래전에 나눴다).
월정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상원사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달빛이 아름다운 월정사에서는 10월의 문화축전이 거대하게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하는 널찍한 버스에 앉아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가을 햇살에 몸을 맡겼다. 불그스레한 계곡선을 따라, 시원스레 이어진 길 위에서, 거친 행진을 하는 차에 의지를 한 나는 아들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우리는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상원사에 내려 산속 오솔길을 향해 조심히 발을 내디뎠다. 아이는 그저 자연이 그림이 되는 공간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고 날며 엄마 앞에서 날렵한 몸을 또한 자랑하고 있었다.
선재길은 낙엽이 겹겹이 쌓인 나뭇잎 길이었다. 오롯이 차가 다니기 편한 큰 도로에서 벗어나 계곡을 따라 나 있는 참선의 길다웠다. 만나는 계곡은 끊어짐이 없이 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의 소리도 묻히고, 간혹 도로의 돌멩이를 박차고 올라오는 기계의 바퀴 소음도 우리 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아이와 내가 손을 잡고 걷기에 약간 비좁은 공간이기도 했다. 월정사 방향에서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과 만날 때면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아이를 앞으로 보냈다. 몇 개의 다리를 건넜을까. 몇 키로나 우리가 걷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이 궁금해질 때쯤이면 아이는 이내 이정표를 발견해 내고 킬로미터를 계산하기에 바쁘다.
“엄마! 저기 저 나무는 몇 년이 되었을까요?”
앞서 길을 걸어가던 아이가 우리의 앞길을 막고 쓰러진 고목(枯木)에 눈길을 주시하고 있다.
“나이테를 세면 알잖아요. 음, 꽤 된 것 같네요.”
나이테를 세다 말고 같이 앉아주지 않고 앞으로 걷는 엄마를 향해 대충 얼버무리며 일어서는 아이가 귀여웠다. 이럴 땐, 나도 함께 앉아 자연을 탐색해 주고 더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그 순간에 왜 나는 앞서며 걷기만 했지? ‘좀 늦게 가면 어때.’, ‘끝까지 다 걸을 필요 있나. 버스가 오면 올라타도 되잖아.’ 여기까지 와서 너무나도 많이 남은 거리를 머릿속에서 재고 있었다니. 나의 고정관념은 자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엄마 다람쥐를 보세요. 도망가지 않는데요.”
다람쥐가 인간 세계에 익숙했는지 우리가 근처를 지나가도 도통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깊은 산속이라, 이제 겨울이 오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 것을 염려해 더 많은 눈빛을 보내고 있음이렷다. 다람쥐는 건망증이 아주 심하다던데. 쌓아둔 도토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 다시 묻고, 다시 파고, 다시 묻고를 반복하고 있나 보다. 깊어가는 가을 녘에 다시 도토리를 주우러 나온 게 분명할 거야. 아이가 자연 생태계에 조금 무지한 엄마에게 책에서 읽은 도토리의 정보를 한 보따리 꺼내 놓는다. 글을 쓸 때 이 아이가 옆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과사전을 급하게 들추지 않아도 물어보면, 인터넷 사전에 손가락을 다다닥 거리지 않아도 지식정보가 술술 나오는 아들 사전이 되어주면 좋겠다.
두 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아이의 성장을 발견한 것은 아이가 내뿜는 에너지 잔량의 %에 대한 이야기에서다. 한 시간 이상을 걸었는데도, 에너지가 98%가 남았다는 말을 건넨다. ‘오! 이젠 에너지가 바로 바닥이 나지 않는구나. 하며 아이의 끈기에 칭찬을 보냈다. 초등학교 전만 해도 에너지가 바닥이 나고 있을 땐, 50% 이하라며 무언가 보상을 요구했던 그 시절의 아이에서 이제 분명히 성장을 했다. 에너지의 잔량이 없어져 가면서도 아이는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반 친구들과의 몸 씨름 이야기, 짝꿍에 대한 이야기, 무언가 잘하는 어떤 친구에 대한 이야기, 아이가 많은 시간 생활하고 있는 학교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을 수 있는 것은 함께 걷는 길 위에서라는 것을 몸으로 더욱 느낀 걸음 산책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를 데리고 많은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2학년 가을에 맞이한 선재길에서의 대화는 이 가을이 주는 선물을 오롯이 몸으로 느끼고 엄마를 향해 마음을 더욱 열었던 가을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단풍시기를 정확히 맞출 수 없었던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는 아이가 숨통이 트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가을 공기와 함께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학경시대회에 원서를 넣고 시간을 재고 문제를 푸는 숨 가쁜 연습도 내려놓게 하고 싶었다. 무리해서 학원을 많이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는 나의 능력의 한계를 여행이라는 좋은 친구로 매개해 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네 단지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을 최고로 아는 아이가 ‘여행 가자’하는 엄마 말에 두 말없이 따라나서는 것이 신기할 때가 많다. 오가는 차 안에서 큰소리로 노래도 따라 부르고, 네비의 한계를 넘는 아이의 도로 위치 도우미를 나는 귀를 열고 계속 듣고 싶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내가 조금 더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마다 여행과 함께 하겠지! 일상에 지쳐 의미 없이, 때로는 의미 있는 말을 알아주고, 가끔 뱉어내는 짜증스러움도 이해하며 우리가 성장하길 기대한다.
선재길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얼마 전에 아이의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이야기가 문뜩 떠오른다. 똑똑한 것도 좋고, 공부도 좋지만, 인성이 된 아이들은 교육 현장에서도 돋보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선생님만이 느꼈던 것이 아니다. ‘공부 잘한다고, 똑똑한 것이 다가 아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설파했던 아이 아빠의 일화를 전하면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던 것. 상담 중에 언젠가 아이 아빠를 통해 깨달은 일화를 나는 담임선생님께 술술 편안하게 전하고 있었다. 자칫 아이의 단점을 나열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지만 고집이 센 아이의 기를 잡는데 아빠의 역할이 일조했음을 알리고 싶었던 감성이 일었다. 출장이 많아 아이의 소소한 면을 자주 흘리는 남편. 아이의 잘못된 기가 꺾이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도 차근차근 설명하며, 참다 참다 참아보다 결국 매까지 들면서도, 병원에 실려 갈 듯이 아프다고 꾀병이 들어가 일관하는 아이에게 굴하지 않고 아이를 굴복시키던 모습을 보았다. 욱하고 화내기가 먼저였던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챙겨주는 아이 아빠였다. 자리를 많이 비우는 남편이지만, 기를 꺾어준 것은 아이에게 부드러운 아빠였다. 그들의 여행 자리도 마련해 줘야겠다.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