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아트의 세계에서 물감과 빛은 픽셀로 재탄생된다. 회화도 사진도 모두 비트로 녹아서 알고리즘이라는 용광로를 거친 뒤 스크린을 구성하는 RGB로 구현된다.
이제,
계산된 결과를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물감과 붓으로 다시 그린다. 사람이 그려도 좋다. 캔버스 위에 구현되는 이미지에는 복사본이라는 오명이 남지 않도록 무작위적 변수가 첨가된다. 이렇게 하여 디지털 아트는 복제 불가능한 작품으로 육화(encarnation)된다. 더 이상 발광하는 빛이 아닌 자연광의 반사로만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회화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자가 기계화되고 알고리즘화(化)가 된 후로, 우리는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더 이상 '필사'라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책의 가치는 무한히 복제되는 물질 속에 있지 않다. 책의 고유한 가치는 책을 읽을 때 바뀌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뇌가 만든다. 독자의 경험과 지식, 세계관, 물질적 조건 같은 수많은 변수와 조합되어 책의 내용은 각 사람의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 되는 것이다.
예술이란, 고유성(Originality)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갈망이 아닐까?
결국 흙이라는 공통된 입자로 분해되고 마는 신체를 가진 인간의, 비트(BIT)라는 계산 가능한 픽셀의 무한 복제에 대한 반발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