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래지기 Apr 27. 2017

에디톨로지/김정운

편집도 창조다

|


  예능 프로그램은 자막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재미와 창조는 편집에 달렸다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맥락을 아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같은 이야기라도 맥락이 바뀌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크로스 텍스트가 아닌 하이퍼 텍스트를 예찬하고, 모든 창조적인 활동은 편집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의 역작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김정운은 <에디톨로지> 전과 후로 나뉜다고. 그렇다면 그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자신도 편집된 것이 분명하다.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 (스티븐 킹)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1人출판’이 뜨고 있다. 누구나 쉽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책을 갖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떤 이는 내용의 함량 미달을 걱정한다. 이미지의 시대가 온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지금처럼 글쓰기가 대중화된 적은 없었다. 그 극치가 ‘자가출판’이다. 전문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가 같은 링에서 결전을 벌이는 레드오션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나만의 관점, 나만의 해석이다. 그런 차별화는 편집 능력이 결정한다. 텍스트 편집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지금, <에디톨로지>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정리는 그저 알파벳 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카드를 편집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식을 엮어내는 편집자들에게 권력이 이동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지식이란 ‘편집 가능한’ 지식을 말한다. 그러려면 지식을 데이터베이스로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치 유전자 정보를 분류해서 지도를 만들어 놓듯이, 편집하여 얻은 지식이 새로운 관점이 되나아가 새로운 문화가 된다. 편집이 권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넘칠수록 필요해지는게 바로 관리 능력 아닌가? 관리란 다른 말로 정리 정돈이며 곧 편집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태어나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필요가 형성돼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관점이 존재할 뿐.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이 미디어를 통해 들은 거고 그 미디어는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래밍한 거잖아요 (진중권)”. 그렇다면, “설교도 목사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라는 어느 목사님의 한 마디는 신의 말씀에 대한 에디톨로지的 고백이란 말인가?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의미 있다. 남이 만들어 주는 의미는 전혀 의미 없다.


 이 책의 제목 ‘Editology’는 지은이 김정운 박사가 만든 용어다. 우리말로 하면 ‘편집학’인데 굳이 영어로 쓴 이유는 훗날 세계로 알려질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고 섞는 ‘편집’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전도서 1 : 9)”


 모든 텍스트는 반드시 그 텍스트가 쓰인 문화적, 역사적 콘텍스트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조승연 작가는 <어쩌다 어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해석을 방해하는 요인은 완벽한 정보입니다. 대강 알고 나머지를 내 머리로 채워 넣으면 내 것이 됩니다. 그런데 다 배워버리면 짝퉁이 됩니다.” 좋은 지식이란 재해석이 가능한 지식, 편집 가능한 지식을 말한다. 완벽할수록 불완전하다는 역설. 얄궂다. 인간은 역설을 쉽게 감당하지 못한다. 하긴, 킹의 말처럼 편집은 신의 영역이라니까. 


새로운 텍스트가 가능하려면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이 글을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었는가?

<에디톨로지>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곤도 마리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