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중 둘이 까먹은 회의
우리 연구실에는 연구원이 나 밖에 없다. (대신에 협업하는 연구실은 많다.) 오래된 연구실도 아니고, 체계가 딱딱 잡혀 있는 연구실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는 만큼 실적이 나오는 연구실이다. 그러니 사실 교수님이나 나나 서로 꼼꼼히 정리하고 공유하고 그러지 않는다. 인원이 둘 밖에 안 되는데 뭐, 대충 말해도 대충 서로 기억하니까 말이지! 심지어 교수님과 내가 같은 방을 써서 뭐 보고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말하면 된다.
나: 교수님, 이거 결과 나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교수님: (한 다섯 걸음 움직여서 내 컴퓨터 뒤로 옴)
교수님: OO아~ 뭐뭐좀 보내줄래~
나: (몇 초 후) 보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교수님, 나, 협업하는 다른 교수님 셋이서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매주 이뤄지는 정기회의였는데 그 전 주에 바빴어서 그날따라 모두가 저번 회의를 기억 못 하고 있었다.
저번주에 뭐 하자고 하지 않았나?
아냐, 난 기억이 없는데.
그 뭐뭐뭐 관련된 거였는데 OO아 너는 기억하니?
...이거요? 저거요? 아니면 이건가?
결국 내 악필로 적은 연구노트를 뒤져서 발견하였다.
언제는 안하자고 했던 걸 한 경우도 있다. 약간 기록을 제대로 안 하니까 하자고 그랬나? 안 하자고 그랬나? 회의 때 다 같이 고민했던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하자!라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사실 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역량 내에서 진행하는 것은 소소한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다만 역량이 되지 않는데 안 해도 되는 걸 해야 한다고 기억하면 아주아주 억울할 것 같긴 하다.
회의는 반드시 기록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이때, 업무 종류가 다양할 때 공통 암호문(?)을 활용하면 좋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장 평범하게 하는 연구 주제는 'A에 대한 B 건강영향'이다. 그러면 A-B가 암호문으로 쓰인다. 이메일 제목에 무조건 A-B 적고 '분석 결과입니다!', 회의할 때 '다음은 A-B입니다', 심지어 논문 파일 제목도 'manuscript_A_B_작성자1_작성자2'이런 식으로 붙인다. (내 이름이 작성자 3쯤 되면 눈치가 보이니 겁나 열심히 쓰게 되는...)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단 암호문 생성까지는 잘 되었지만 아직 각자도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오합지졸 같은 우리 연구실도 뭔가 체계가 갖춰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