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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Dec 29. 2020

자랑 한 번 못하고 1년이 갔네

동대문 가서 민트색 가방을 샀는데...

내가 본과에 올라오면서 사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바로 가방. 기존에 쓰던 가방이 낡은 건 아니었다. 그냥 바꾸고 싶었다. 사실 바꾸고 싶다는 말을 하기까지 오랜 고민을 했다. 고장이 났으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러지 않으니 뭔가 내가 낭비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며칠만 지나면 가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지지 않을까? 등 여러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기존 가방은 고등학생 때부터 쓰던 것이며 상당히 오래 썼고, 뭔가 본과에 가면 두꺼운 전공서적과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핑계로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 하여간 지난 겨울방학에 새 가방을 사러 나섰다. 

동네에는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었다. 튼튼해 보이지 않는 지퍼, 과도하게 많은 주머니. 그러다가 그나마 괜찮은 걸 발견했는데 색깔이 검은색, 분홍색, 흰색밖에 없었다.

- 검은색은 사기 싫었다: 예전에는 검은색 옷을 선호했다. 무난하고, 때 잘 안 타고. 그러다 어느 날, 뭔가 기분이 좋은 날 옷장을 열었는데 다 검정, 남색, 파란색 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졌다. 좀 밝은 색도 입고 싶은데... 다 거무튀튀해... 그다음부터는 검은색을 좀 기피하고 있다.

- 분홍색은 별로였다: 연분홍이었는데 안 예쁜 연분홍이었다. 내 생각에 분홍색은 디자인이 좀 어려운 것 같다. 좀만 진하면 촌스럽다 그러고, 조금만 연하면 '이게 핑크냐' 그런 느낌이고... 그 분홍색은 너무 연해서 '이게 핑크냐'의 느낌이어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 흰색은 관리가 어려워 보였다: 때가 타는 것이 티가 많이 날 것 같아서 포기.


며칠 뒤, 다른 걸 사러 동대문에 갔었는데 내가 동네에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가방과 똑같은 구성인데 민트색인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동네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아싸, 그러고 구매하였다. '본과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아니 가방 자랑해야 하는데 학교를 못 가... 내가 무려 노트북 수납 공간도 있고 책도 많이 들어가는, 이전 가방에 비해서 몇 배 업그레이드된 민트색 가방을 샀는데 자랑을 못 해... 

1년이 끝나가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무엇이 가장 억울하냐 물으면 가방 자랑을 못 한 것이다. 사이버 강의는 만족하고 있고, 여행을 못 간 건 글쎄, 원래도 여행 욕심이 있지는 않았어서 별생각 없고. 어차피 본과 1학년이라 공부량도 많고 돌아다니지도 못하는데, 오히려 코로나가 나의 공부를 도와줬지 뭐...라는 생각에 나머지는 크게 억울하지 않다.

그냥 문득 내 옆에 있는 민트색 가방을 볼 때마다 저걸 자랑할 타이밍을 놓쳤네...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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