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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Sep 03. 2018

교회와 학교에서의 합창과 중창

같이 노래부르기가 어찌 그리도

같이 노래부르기가 어찌 그리도 기쁠 수 있고, 어찌 그리 슬플 수 있는 걸까요.


지금은 교회에 안 다니지만, 어릴 때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열심히가 최고조가 되었을 떄는, 감리교 합창대회인가? 성가대에서 대회를 위해 합창 연습을 했을 때이다. (합창 여러번 해서 그 합창 중에 어떤 합창을 제일 열심히 나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ㅋㅋ) 그 때는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았다. 노래 가사의 의미는 상관 없이 그 음이 좋았고 같이 연습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연습 중에 간식타임도 좋았고 ㅋㅋㅋ) 그래서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는 초등학교에서도 중창을 했었다. 밝고 맑은 노래부르기 대회인가? 그때 정말 방과후에 남아 연습하고 아침에 등교 일찍 해서 연습하고 그랬었다. 2번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듬해에 하는 중창은 정말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때 연습을 하려고 미술 시간을 빼서 모였어야 했는데 내가 울면서 달 그리고 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달 그림은 몇 년 후에 보니까 진짜 유난히도 못 그려서 충격받았었다. 하여간, 그 때부터는 같이 노래부르는 것을 많이 싫어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가끔 생각해보면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느낌이 달라서 그런 거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다녔던 곳의 교회 선생님들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뭔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미안하지만) 부처다. 부처와 같이 넓은 마음씨를 가지고 아이들이 어중이떠중이 같고 소란스러워도 어떻게 잘 타이르고 했던 것 같다. 조금만 잘 해도 칭찬을 잘 해줬던 것 같고. 

그런데 학교에서는 연습이 너무 빡세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빡세게 굴었던 것 같다. 아침부터 방과후까지... 왜 들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렇게 하려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2년 동안 같은 선생님이었는데, 첫 해에는 별 문제 없었지만 두 번째 해에는 내가 그렇게 중창이 싫어지도록 짜증이 났었다. 많이 울었고, 연습을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을 주의해야 한다. 내가 선생님을 다르게 기억하는 것이 그 경험에 비추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 경험이 좋았기 때문에 그 선생님이 좋게, 그 경험이 나빴기 때문에 그 선생님은 나쁘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나는 나의 나이를 주의해야 한다. 어릴 땐 막내였고,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꼬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엔 선배였고, 꼬맹이도 아니고 고학년이었지 않는가. 그러면 당연히 기대하는 바가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합창과 중창의 차이를 주의해야 한다. 합창은 인원이 워낙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내가 말 잘 듣는 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창에서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난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건 확실하다. 중창 경험 이후로 난 혼자 부르는 것이 참 좋았다. 같이 부르더라도, 혼자 불렀다. 떼창이라고 해야 하나. 성부를 나눠서 연습하는 그런 거... 싫었다.


같이 노래부르기의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 그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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