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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레티아 Mar 15. 2021

#1. 라스트 킹(2006) - 의사와 정치적 중립

The last king of scotland

메디시네마 수업의 첫 영화는 'The last king of scotland'였다. 제목에 스코틀랜드가 들어가고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백인이시길래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웬걸,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에 대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있다는 느낌보다는 초조함이 느껴졌지만, 꽤 잘 만든 영화라고 느꼈다.

더 라스트 킹(2006) 포스터

※박스 안의 글은 줄거리를 요약한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개리건은 스코틀랜드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하지만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답답하게 살아왔는지, 지구본을 돌려서 제일 먼저 나오는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나온 나라는 캐나다. 글쎄, 별로였는지 다시 돌려서 나온 우간다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의료봉사에 큰 뜻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잘 어울려서 사는 와중, 독재자였던 오보테를 쿠데타로 끌어내고 새로 대통령이 된 이디 아민이 연설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간다. 연설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디 아민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사를 찾고, 니콜라스가 간단히 붕대를 감아주고 차에 받혀서 시끄러운 소를 총으로 쏴 죽인다. 이디 아민은 당황하다가 그가 스코틀랜드 사람임을 알고 자기도 잉글랜드를 싫어한다며, 굉장히 반가워한다. 이디 아민은 니콜라스를 대통령 주치의 자리에 앉히고(니콜라스는 사실 이디 아민의 셋째 부인에게 마음이 있어서 남게 된다) 굉장히 대우를 해준다. 하지만 이디 아민은 세상 어마어마한 사이코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측근이라 하더라도 죽여버린다. 니콜라스는 그 사실을 잘 못 느끼고 그에게 동조되어서 술집에서 페니실린 수입을 위해 백인과 대화하던 보건복지부 장관을 수상하다며 이디 아민에게 이야기하고, 장관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죽게 된다. 나중에 잉글랜드인에게 그 사실을 듣고, 우간다를 떠나기 위해 이디 아민을 암살하려고 하지만 경호원에 의해 들켜서 실패하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는 흑인 의사 선생님이 백인이기 때문에 당신 말은 믿을 거라며, 가서 실체를 알리라며 니콜라스를 몰래 에어프랑스 인질들과 함께 유럽으로 가도록 도와주고, 본인은 경호원에 의해 죽는다.

참고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니콜라스 개리건은 정말 다행하게도,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의사와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니콜라스 개리건의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물론 따지고 따지다 보면 우간다에 들어온 것 때문이겠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너무 처음부터 이디 아민 쪽에 붙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계속 의료봉사를 했다면, 주치의를 받아들였더라도 정말 치료만 하고 아무 조언도 안 했다면, 본인이 공포감을 느꼈을 때 충분히 출국할 수 있었을 텐데. 

예전에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팔레스타인으로 파견 나갔었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자연스럽게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의사가 해야 하는 진료의 본질은 치료의 제공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겪었던 안타까웠던 사건 중에 하나가, 치료를 해서 보냈는데 그분이 테러를 일으켜서 새로운 환자들이 들어왔댔다. 그렇지만 테러리스트를 치료를 안 할 순 없다. 테러리스트를 죽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간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간 것이고, 테러리스트도 역시 환자이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는 어렵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본인의 가치관이 있다는 것으로, 옳은 것을 취하고 싶으며 그른 것에 대해서 분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료진은, 특히 의사는 사회적 위치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굉장히 강하므로 정치적 중립이 굉장히 중요하다. 물론 개인이면 파급력이 적겠지만, 단체로 행동 시 사회의 흐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봐서, 만약 특정 그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치료 거부를 하게 되면, 그 그룹은 죽게 되고 그들의 사상 자체도 묻혀버리게 될 게 뻔하다. 그 그룹이 궁극적으로 맞는 주장을 했더라도, 굉장히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나는 완벽하게 옳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이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이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내가 어떤 사상을 가져도 치료받을 수 있는 '신뢰'가 있는 사회이다. 만약 내가 이 주장에 반대하여서 죽게 된다면, 아무리 틀린 것이라도 아무도 들고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은 그 사회적 신뢰를 위해서 인도주의적 가치가 정치적 가치보다 우선시 되어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느낀다.

또한, 의료진이라고 누군가를 처벌할 '권리'는 없다. 결국 의료진이 환자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토대로 치료를 받을 환자를 골라낸다는 것은 법 위에 서서 그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법이라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지만 사회가 제대로 흘러가기 위해 만든 약속이므로 범죄자라도, 세상 나쁜 놈이라도, 법에 기대에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니콜라스 개리건은 물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여자 때문에 그랬지...) 하지만 다른 욕망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그가 정치에 강하게 끼어들게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개리건이 불안함을 느꼈을 때 빠져나올 길은 없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이 잘못인가, 그것은 늘 논란이 되는 주제이지만, 무지로 인해서 내 무덤을 내가 팠다면 그것을 책임질 자는 본인밖에 없다. 늘 그래서 나도 글 쓰는 게 고민이 된다. 어쨌든 내 가치관은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데 글은 기록에 늘 남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표현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글을 오해하는 사람은 있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해석에 은연중에 잘못되게 흘러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자는 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현 의료계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이것조차도 나의 정치적 발언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몇 년 뒤 졸업을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니콜라스 개리건처럼 아무것도 안 알아보고 무작정 뛰어들고, 주변 사람의 조언을 무시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꼼꼼히 생각해보고, 공부하고, 더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렇게 경계하면서 살면 대충 중립을 지키면서, 내 가치관도 지키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cf) 요즘 사람들은 '난 정치적 중립이야'라고 표현하면서 실제로는 정치에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적 중립'과 '정치적 무관심'은 다른 말이다. 나는 '정치적 무관심'은 '이러나저러나~'라는 태도로 국정이 흘러가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정치에 관심이 있고 국정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며, 마음으로는 어느 쪽을 지지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행동으로서 표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표면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치적 무관심일 수 있지만, 글쎄, 내 성격상 난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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