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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May 06. 2024

두 호수의 도시, 속초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영랑호


https://youtu.be/IBGnfjZYPnw?si=1yp8AcOrJXki2fxv

들국화 「걷고 걷고」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1

속초 여행 이튿날 아침, 친구들 단톡방에다

어제 찍은 속초해수욕장의

'ㅅㅊ' 초성사진을 올려줬어요.

그러자 회사에 갇혀있던 녀석들이

심술궂은 초성퀴즈 정답을 보내더군요.

사채, 상추, 시체, 식초...

다들 절대 '속초'라고

읽지 않겠노라며... ㅎㅎㅎㅎ

그래서 전 "그래, 내 상태가 숙취다 숙취."

라고 답했습니다.

24. 04. 25. 강원도 속초시 속초해수욕장

저와 친구는 체크아웃 삼십 분 전에

숙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친구의 일정상 점심 앞 뒤로 저 혼자 있을 시간이

약 한 시간 반 정도씩 있었어요.


혼자 있는 게 익숙해지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게 됩니다. ㅎㅎㅎㅎ

제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게 된 이유와 같죠.

대학 들어가서 카페를 갔는데

가장 싼 게 아메리카노였어요.

(에스프레소는 양이 적어서 불합격이었고요.)

그런데 마시다보니 이젠

아메리카노 없이는 못사는 몸이 되어버린 겁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죠.


제가 혼자서 좋은 카페 가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아는 친구는

'칠성조선소'라는 카페 근처에

저를 떨궈주고 일을 갔습니다.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카페 칠성조선소

2

'칠성조선소'는

바다와 통해있는 호수인 청초호 옆

오래된 조선소를 이용해 만든 카페였어요.


서울 성수동의 빈티지 카페들도

꽤 많이 다녀봤는데

거긴 오래된 것을 매끈하게 다듬어 살려냈다면

여기는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두고

투박하게 살린 느낌이랄까요?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카페 칠성조선소

카페는 조금 안쪽 건물에 따로 있었는데

전 마침 오픈 시간에 맞춰 간 때문인지

한적하고 좋았습니다.

남은 취기 탓에 흐르는 음악에

어깨도 들썩들썩 거리면서 커피를 마셨어요.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카페 칠성조선소

친구 말을 들어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올 때마다 그리 오래 있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주말이 아니어서 여유가 있었나봅니다.


어쩔 수 없어요.

저 같은 사람 기피자 입장에선

여행은 평일이 좋습니다.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카페 칠성조선소

아메리카노는 원두를 고를 수 있었는데

저는 가장 무난해보인 '포트'로 골랐습니다.

거기에 소금빵을 추가했어요.

2층에 올라가 호수가 보이는

가장 구석자리에 자릴 잡고

소금빵과 커피로 해장을 했습니다.


커피 좋았어요.

뷰가 좋고 분위기가 좋은 커피숍은

커피가 아쉬운 경우가 꽤 있는데

여기 커피는 나름 묵직하고 고소하면서도

끝맛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좋더라고요.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카페 칠성조선소

파도가 심하게 밀려오지 않는 것이며

둥글게 막혀있는 걸 봤으면

호수인 걸 알았어야 하는데

확실히 숙취 때문이었는지

계속 밖을 보면서도 바다겠거니 하고 있었어요.


이런 카페에 앉아 있으면

두 시간은 거뜬히 지나갑니다.

특히 사람 없을 땐 더 좋아요.

주인분께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평소에는 잘 된다니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죠.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청초호 카페 칠성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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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나와서

친구가 사준 아바이순댓국을 먹고

(오징어순대도 먹고)

친구는 다시 일을 가고

전 또 카페 투어를 할 예정이었는데

걷다보니 호수가 나타나더라고요.

지도로 확인해보니 '영랑호' 였습니다.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처음 이 '방랑기써보자' 했을 때

가장 크게 영감을 준 노래가

들국화의 「걷고 걷고」 였는데

정작 이 글을 쓰면서

한 시간 이상 걷는 길 자체가 없었어요.


기껏해야 20분에서 30분 사이였죠.

검색해보니 한 바퀴에 약 한시간 20분이래서

마침 친구가 오기까지 그 정도 시간이 남아있어서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정말 고요해서 좋더라고요.

산책로 정비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꼭 바다만이 아니라

멀리 펼쳐져 있는 설악산을 보면서

평일 오후 호숫가를 거닌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치를 부리는 기분도 들고요.

어제처럼 조금만 더 하늘이 쨍했으면 어땠을까...

욕심은 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ㅎㅎㅎ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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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을 안챙겨온 걸 후회할 때 쯤

그늘이 드리운 길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잠깐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지나

오래된 리조트 옆을 지나칩니다.

자전거를 빌려타고 가는 연인들도 보이고요.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절반쯤 걸으면 갈래길이 나옵니다.

부교를 따라 반대로 건너갈지

아니면 범바위길로 더 올라갈지.

저는 시간상 부교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부교에서 바라보는 바위는

꽤나 멋있었어요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부교를 지날 때쯤엔

목이 꽤 마르고 힘도 들더군요.

다행히 호수 맞은편으로 가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줘서

계속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이 다시 나타나고

커피숍이 보이는 거에요.

하나는 꾹 참고 지나쳤는데

두 번째는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처음엔 한 바퀴 다 돌 생각이었는데

결국 다음으로 미뤄버렸어요.

때론 미뤄야 다음이 오는 걸지도 몰라요.

제가 만들었지만 적절한 핑계다 싶네요 ㅎㅎㅎㅎ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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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를 걸으면서는

작은 가게 하나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길도 깨끗하고

조용하고 좋았습니다.

차를 몰고 나타난 친구도

마음에 드는지 잠깐 앉았다가 가자 하더군요.

벤치에 앉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저씨는

해가 지기 전 서울로 길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러웠던

1박 2일의 속초여행이 끝났습니다.


속초는 바다의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

더 마음에 들었던 건 호수였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내 마음에도

누군가 다가와 겪어보면 더 마음에 드는

호수같은 무언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러기 이전에

당장 누군가를 불러들일 수 있는

바다같은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카페 '칠성조선소'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제가 시킨 아메리카노'포트'+소금빵 가격은

9,000원이었습니다.


카페 '칠성조선소'는

오전 11시에 문을 엽니다.

일부러 맞춰서 찾아간 게 아닌데

마침 그 때 문을 여시더라고요.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24. 04. 26. 강원도 속초시 영랑호

영랑호수윗길 개방시간은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열시 까지라고 합니다.


한 시간 당

약 4km정도 속도로 걷는다고 쳤을 때

호수 한 바퀴를 다 도는 데는

두 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요

중간중간 쉬어 갈 걸 생각하면 조금은 더 걸리겠죠.


친구 말로는 호숫가에 심긴 나무들이

벚나무 같다는데

어느 봄날에 이 길 걸으러

한 번 더 내려올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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