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취식하는 노인을 응원하게 될 흥미로운 영화

[별세개반이상만 #61] <사람과 고기>

by 양미르 에디터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사람과 고기>의 영어 제목은 'People and Meat'.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Meet'라는 단어가 떠올랐죠. 고기(Meat)를 먹으러 다니는 이야기가 결국 사람과의 만남(Meet)에 관한 영화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 작품이 왜 만들어졌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형준'(박근형)은 2층 양옥집에 혼자 사는데요. 집은 있지만 수입은 없죠. 해외로 나간 두 아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데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은 그는 매일 리어카를 끌고 나가 폐지를 줍습니다. 어느 날 '형준'은 같은 폐지를 두고 '우식'(장용)과 몸싸움을 벌이는데요. 산동네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우식' 역시 하루하루 폐지를 주워 연명하는 독거노인이죠. 싸움을 벌이던 둘 앞에서 '화진'(예수정)이 호통을 치는데요. 길거리에서 좌판을 펼쳐 채소를 파는 '화진' 역시 손주를 혼자 키우며 어렵게 살아갑니다.

4739_4732_5936.jpg 사진 = 영화 '사람과 고기' ⓒ (주)트리플픽쳐스

이들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형준'의 집에서 함께 나눠 먹은 소고기뭇국 한 그릇은 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죠. 오랜만에 고기의 맛을 느낀 '우식'이 '진짜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는데요. 그렇게 시작된 고깃집 순례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며 이들의 눈빛이 살아나죠. 문제는 계산입니다. 배가 부른 후에야 현실로 돌아온 그들은 황급히 식당을 빠져나오죠. 무전취식은 범죄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죠. 이후 세 사람은 서울 전역을 누비며 고기를 먹고 도망치는 일을 반복합니다. 요령도 생기고 규칙도 만들죠.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양종현 감독은 기획 의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먹기 서러운 음식으로 삼겹살만 한 게 있을까?" 한국의 고기 문화는 유독 '함께'를 전제로 하죠.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혼밥 문화가 자리 잡았어도 고깃집만큼은 여전히 혼자 가기 어색한 공간입니다. 불판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기울이는 행위는 관계의 확인이자 연대의 의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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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준', '우식', '화진'에게 고기는 생존의 문제였는데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당연히 사치품이죠.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고기는 '살아있음'의 증거였죠. '화진'이 손주에게 원망을 듣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대사가 있습니다. "다 늙어서, 세상이 원하는 대로 조용히 찌그러져 있다가 조용히 죽으라고." 사회는 노인들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민폐 끼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욕망이 있고, 배고픔이 있고,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하죠.

고기를 먹고 도망치는 장면들은 범죄 코미디의 긴장감을 선사하면서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관객은 어느새 그들의 '무사 귀환'을 응원하게 되죠. 법적으로는 분명 잘못된 행위이지만, 영화는 도덕적 단죄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깃집 사장(김성오)과 경찰의 반응을 통해 미묘한 연민과 이해를 보여주죠. 양종현 감독이 말한 "영화가 비굴하게도, 거만하게도 다가가지 않길 바란다"라는 태도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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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고기가 아니라 만남인데요. '형준'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매일 듣죠. 처음엔 단순한 취미로 보였지만, 영화 말미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건네는 대사에서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Do you like monkey? I don't like monkey." 그는 동정의 대상이 되길 거부하죠.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요. 여전히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인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우식'은 세 명 중 가장 먼저 '함께'의 가치를 깨달은 인물이죠. 고양이에게 자기 밥을 양보할 만큼 외로움을 달래왔지만, '형준'과 '화진'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사람과의 연결을 경험합니다. "형님이랑 여사님이랑 고기 먹으러 다닐 때가 젤 좋았어"라는 그의 대사는 결국 고기가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는 고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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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은 세 사람 중 가장 현실적인데요. 손주를 위해 참고 버텨온 인생이었기에 처음엔 이들의 무모한 계획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점차 '화진'도 변하죠. "살맛도 나고 죽을 뻔도 했지"라는 대사처럼, 위험했지만 그만큼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되죠. 모험은 젊은이들의 특권처럼 여겨지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묻습니다. 왜 노인은 모험을 꿈꾸면 안 되는가? 왜 늙었다는 이유로 조용히 있어야 하는가?

우리 모두 언젠가 늙고, 혼자가 되고, 고기 한 점이 사치가 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복지 제도? 경제적 안정?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건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함께 밥 먹을 사람,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 고기를 먹는 행위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만남을 통해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 사무치는 깨달음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죠. ★★★☆

2025/10/15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사람과 고기> (People and Meat, 2025)
- 개봉일 : 2025. 10. 07.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6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양종현
- 출연 : 박근형, 장용, 예수정, 김성오, 이승준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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