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62] <빅 볼드 뷰티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렌터카를 빌린 '데이빗'(콜린 파렐)은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죠. 이상한 렌터카 업체는 1994년형 새턴 두 대만을 보유하고 있고, 그들은 '데이빗'에게 구식 'GPS(내비게이션)'를 강권합니다. 결혼식장에서 '데이빗'은 '사라'(마고 로비)를 만나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사라'는 첫 대화에서부터 자신이 모든 남자를 망쳐왔다고 고백하는데요. "나는 당신을 다치게 할 거예요"라는 '사라'의 경고는 예언이자 자기방어입니다.
다음 날, 데이빗의 'GPS'(조디 터너 스미스 목소리)는 묻죠. "거대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행 하실래요?" '데이빗'이 그렇다고 답하자, 'GPS'는 그를 고속도로 휴게소의 버거킹으로 안내합니다. 거기엔 '사라'가 있죠. 둘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길 곳곳에 홀로 서 있는 문들이 나타나는데요. 들판 한가운데, 온실 안, 낡은 광고판에 박힌 문. 그 문을 열면 각자의 과거로 통하는 통로가 열리죠.
<빅 볼드 뷰티풀>을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와 마주하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로맨틱한 관계만 아니라 부모님, 어린 시절 나 자신의 관계도 포함된다"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감독은 애초에 이 영화를 단순한 로맨스로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데이빗'과 '사라'의 사랑 이야기는 여러 관계 중 하나일 뿐인데요.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영화는 두 사람의 주요 과거를 '문'을 통해 배치합니다.
'데이빗'은 약혼녀(사라 가돈)와 헤어질 때 "난 네가 정말 좋았어. 하지만 막상 함께 있으니 상상했던 것과 달랐어"라고 말하는데요. 이건 잘못이 아니고, 오히려 정직한 태도죠. 하지만 '데이빗'은 이 선택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도피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죠. 영화가 보여주는 건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인데요. '사라'는 "나는 모든 남자를 배신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죠. '사라'가 배신한 건 그 남자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데요. 어머니(릴리 레이브)가 돌아가시는 순간 곁에 없었던 것. 그 죄책감이 '사라'를 옭아맵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믿음이 '사라'를 관계에서 도망치게 했죠. 먼저 떠나면 버림받지 않는다는 방어기제인 셈인데요.
<빅 볼드 뷰티풀>의 핵심 장치인 '문'은 천재적입니다. 렌터카 업체의 직원들은 '데이빗'에게 "때로는 진실에 다다르기 위한 연기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하죠.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열쇠인데요.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을 '연기'함으로써, 재구성함으로써, 우리는 당시에 보지 못했던 진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대부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다"였죠.
'데이빗'은 아버지(해미쉬 링클레이터)가 자신이 태어난 날 병원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특별한 아이가 될 거야"라고 아버지는 말했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죠. 이 장면이 '데이빗'에게 주는 선물은 명확합니다. 아버지의 "넌 특별해"는 사실 판단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었죠. 그리고 '데이빗'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죠. 있는 그대로의 '데이빗'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사라'가 어머니와 재회하는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어머니는 '사라'에게 "먼저 만족하기로 선택하고, 거기서 오는 행복의 순간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죠. 어머니는 알고 있습니다. '사라'가 자신의 임종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어머니는 '사라'를 용서합니다. 애초에 용서할 것도 없죠. '사라'는 19살이었고,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는 것도 모자라 그 순간 곁에 없었다는 죄책감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데이빗'과 '사라'는 서로 사랑하게 되죠. '커플이 되는 것'을 성장의 증표로 제시한다는 비판도 있을 텐데요. '데이빗'과 '사라'가 커플이 된 것은 그들이 '치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자신을 용서했고, 그 결과로 우연히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요. 이 용서는 상대방과 무관하게 일어납니다. '데이빗'은 '사라'가 없어도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라'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을까요? 그건 그들이 서로의 여정을 지켜봤기 때문이겠죠. 그들은 서로의 가장 취약한 순간, 가장 아픈 기억, 가장 깊은 후회를 함께 경험합니다. '데이빗'은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라'도 독신으로 지내며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을 테죠.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그들은 서로를 만났고, 그 만남이 각자의 치유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목표가 아니라 보너스였고, 필수가 아니라 선물이었죠.
<빅 볼드 뷰티풀>은 정말로 거대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행입니다. 비록 그 용감함이 조용하고, 그 크기가 은밀하며, 그 아름다움이 겸손하지만 말이죠. 물론 그 점 때문에, 이 영화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
2025/10/20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 영화 리뷰
- 제목 : <빅 볼드 뷰티풀> (A Big Bold Beautiful Journey, 2025)
- 개봉일 : 2025. 10. 22.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09분
- 장르 : 드라마, 판타지, 멜로/로맨스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코고나다
- 출연 : 콜린 파렐, 마고 로비, 케빈 클라인, 피비 월러-브리지, 해미쉬 링클레이터 등
- 화면비율 : 2.00: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