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더 투박한 청소년의 생부 찾기 여정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09] <수학영재 형주>

by 양미르 에디터
4743_4746_842.jpg 사진 = 영화 '수학영재 형주' ⓒ (주)인디스토리

열여섯 살 '형주'(정다민)는 수학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대구 밤거리를 질주하는 그의 머릿속엔 늘 숫자와 공식이 가득하다. 유전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후, '형주'는 자신에게도 50%의 확률로 같은 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계산 결과에 직면한다. 신장 이식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아버지 '민규'(곽민규)와 친자 검사를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0.1% 미만. '형주'는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과 친구의 해킹 실력을 동원해 세 명의 아버지 후보를 추려내고, 단짝 '지수'(김세원)와 함께 경주, 포항, 부산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떠난다.


<수학영재 형주>의 줄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뻔하다. 사춘기 소년이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성장 서사. 하지만 <수학영재 형주>는 이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의외로 거칠고 날것 그대로 내보인다. 마치 정다민 배우가 오디션에 프로필 대신 셀카를 보냈다는 일화처럼, 이 영화는 세련되게 다듬어지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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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흥미로운 고백을 했다. "80년대 영화라면?"이라고 생각하며 연출했다고. OTT 시대의 도파민 폭격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느리고 서툰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성공한 것은 아닐까? 영화는 정교하게 계산된 플롯 대신 어수선한 일상의 리듬을 따라간다. 수학 메타포는 중구난방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감정의 곡선은 예측 불가능하게 흔들린다.

정다민의 연기는 이 투박함의 정점이다. 그는 촬영 당시 메소드 연기에 너무 깊이 빠져 곽민규를 실제 '민규 씨'로 대했고, 후시 녹음 때는 "이건 진짜가 아니잖아요"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이런 서툴고 고집스러운 접근이 역설적으로 형주라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형주'의 뚝딱거리는 걸음걸이, 어색한 침묵, 계산되지 않은 눈빛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열여섯 소년의 방황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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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감독이 말한 "옆 동네에 친구랑 놀러 가는 느낌"의 로드무비라는 설정도 이 영화의 투박한 매력을 잘 보여준다. 할리우드 로드무비처럼 광활한 사막을 횡단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 영화처럼 섬세한 감성으로 포장된 것도 아니다. '형주'는 그저 대구에서 출발해 경주, 포항, 부산을 돌아다닌다. 부모님께 "경주 갔다 올게요"라고 하면 별로 걱정도 안 되는 그런 거리. 이 소박한 스케일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세 명의 아버지 후보들과의 만남도 극적이지 않다. DNA 채취를 위해 머리카락을 달라고 하는 '형주'를 그들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가수 김일두가 직접 출연해 '문제없어요'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저 작은 카페에서 기타를 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일 뿐이다. 화려한 무대도, 감동적인 연출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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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은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분석적인 생각과 기술을 찾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여행을 한번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이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설계하는 대신,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것. '형주'가 신장을 달라고 하자 자기 신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떼 가라"라고 하는 '지수'의 애드립은 이런 즉흥성의 산물이다.

곽민규가 연기한 '민규 씨'는 이 투박한 세계관의 중심이다. 대구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감독의 억양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그의 연기는 세련되지 않았지만 진실하다.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확인하러 다니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지켜보는 아버지. '형주'와 국밥을 먹으며 장난스럽게 겁을 주는 장면에서 곽민규는 "감독님이 평소 나한테 장난치는 모습이 떠올랐다"라고 했다.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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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는 영화 초반에 독백한다. "수학으로 온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지만, 내 인생엔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장이 영화 전체를 요약한다. '형주'가 찾아 헤맨 것은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 삶의 오차범위를 인정하는 법이었다. 0.1% 미만의 확률로 연결된 '민규 씨'가 진짜 아버지일 수 있다는 것, 세상은 수학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수학영재 형주>의 투박함은 의도와 우연, 계산과 즉흥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최창환 감독은 원래 "노동영화 감독"으로 불렸다가 제주로 터전을 옮긴 후 로컬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세상>(2019년), <파도를 걷는 소년>(2020년)을 거쳐 <수학영재 형주>에 이르는 그의 영화들은 점점 더 느슨해지고 있다. 이것을 퇴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용기로 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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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학영재 형주>는 세련된 영화가 되기를 포기한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이 모든 관객에게 통할 리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형주'가 믿었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처럼, 이 영화도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이 투박한 영화가 가진 유일한 미덕이자, 동시에 가장 큰 매력이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수학영재 형주> (Journeys in Math and Genetics, 2025)
- 개봉일 : 2025. 10. 15.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8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최창환
- 출연 : 정다민, 김세원, 곽민규, 이기문, 서석규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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