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 길 중 하나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19]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by 양미르 에디터
4797_4915_1328.jpg 사진 =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 싸이더스

베트남 호치민의 좁은 골목. 거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환'(뚜언 쩐)은 매일 아침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레티한'(홍 다오)을 돌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양치질을 도와주고, 옷을 입혀주고, 때로는 밤새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 동네를 헤맨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지만, 젊은 시절을 보낸 한국에 대한 기억만은 또렷하다. "롯데월드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한국에 두고 온 아들을 그리워한다.


'환'의 일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길거리에서 머리를 깎아주며 번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어머니의 약값과 생활비를 대고, 밤에는 어머니가 집을 나가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거듭 확인한다. 친구들은 그를 걱정하지만 '환'은 웃으며 버틴다. "엄마가 나를 낳아줬으니까." 하지만 그의 몸도 한계에 다다른다. '환'도 가끔 발작을 일으킨 것. 그래서 '환'은 어머니를 한국에 있는 형에게 데려다주기로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이지만, 그게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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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은 주소 하나만 달랑 쥐고 형을 찾아 나서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환'이 상상했던 가족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한국, 어머니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남편 '정민'(정일우)과의 추억이 서린 곳.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했고, '환'은 갈등한다. 과연 어머니를 여기 두고 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애초에 '버린다'는 선택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모홍진 감독의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에서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한국과 베트남 합작이라는 지점은 솔직히 말하면 기대보다는 의구심이 앞섰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력에 현지 배우를 끼워 넣은 형태, 혹은 그 반대. 어느 쪽이든 진정한 협업이라기보다는 시장 논리에 따른 계산된 결합에 가까워 보였다.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에서 흥행한 이유를, 그리고 한국 관객에게도 왜 보여줄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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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거칠고 투박한 부분이 곳곳에 남아있다.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이 영화를 의미 있게 만든다. 모홍진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기교나 세련됨을 걷어내고 본질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감독은 베트남에 장기간 체류하며 시장과 공원을 돌아다녔고, 그곳 사람들의 정서를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그게 바로 가족이라는 마음의 언어라는 것을.

뚜언 쩐이 연기하는 '환'은 전형적인 영화 속 효자가 아니다. 그는 짜증도 내고 지쳐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배설물을 치우며 투덜대고, 밤새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친구들 앞에서 무너진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뚜언 쩐의 연기가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의 말처럼 "책에서 배울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랄까? 그는 '환'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살아낸다. 거리에서 머리를 깎아주며 웃는 얼굴, 그 웃음 뒤에 감춰진 피로와 절망. 카메라는 그 미묘한 감정의 결들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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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다오 역시 놀랍다. 베트남의 국민 배우로 불리는 홍 다오는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맡으며 "기쁨, 분노, 사랑, 증오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은 정말 드물다"라고 말했다. 홍 다오가 연기하는 '레티한'은 때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때로는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로, 또 때로는 사랑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여인으로 변신한다.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이 한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흔들어놓는지, 그 와중에도 사랑만은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정일우의 출연 비하인드도 흥미롭다. 그는 2000년대 후반 방영된 <거침없이 하이킥> 시리즈로 베트남에서 이미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한국과 베트남 제작사 모두가 만장일치로 그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일우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이 영화에 참여했다. "좋은 작품이었고, 참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참여하는 마음 자체가 배우로서 새로운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그의 말에서 배우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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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국 콘텐츠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기생충>(2019년)과 <오징어 게임> 시리즈 등 성공한 작품의 배경에는 높은 제작비와 완성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까? 아시아 시장, 특히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할리우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정서를 존중하고 그것을 영화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한국과 베트남이 대등한 입장에서 협업했다는 점이다. 모홍진 감독의 표현대로 "한국의 필요에 의해 흡수된 베트남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아니고, 투자부터 인력 그리고 두 나라가 쏟은 열정도 거의 반반"이다. 키 스태프부터 후반 작업 업체까지 모든 과정에서 양국이 동등하게 참여했다. 그 결과 베트남 관객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한국 관객은 낯설지만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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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방식이 항상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제작 과정은 더 복잡하고, 의견 조율은 더 어렵고, 결과물은 더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이 창작의 본질 아닐까. 계산된 성공보다 예측 불가능한 진정성. 완벽한 문법보다 서툴지만, 진심 어린 대화 말이다. 한국 영화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더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며 할리우드와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만의 색깔과 아시아적 정서를 살리며 다른 길을 개척할 것인가.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후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

2025/10/29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Leaving Mom, 2025)
- 개봉일 : 2025. 11. 05.
- 제작국 : 한국, 베트남
- 러닝타임 : 118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모홍진
- 출연 : 뚜언 쩐, 홍 다오, 정일우, 줄리엣 바오 응옥 돌링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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