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20] <프레데터: 죽음의 땅>
댄 트라첸버그 감독이 세 번째로 손댄 '프레데터 유니버스'는 과감한 실험을 택했다. 1987년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정글에서 마주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외계 포식자를, 이번엔 관객이 응원해야 할 주인공 자리에 앉혔다.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프레데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야우차' 종족의 언어까지 완성해 자막으로 제공한다. 아이디어 자체는 신선하다. 문제는 그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안전하다는 데 있다.
'야우차' 종족이 사는 행성에서 '덱'(디미트리우스 슈스터-콜로아마탕기)은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강함만이 가치인 세계에서, 왜소한 체격은 곧 사형선고다. 부족장인 아버지 '뇨르'(디미트리우스 슈스터-콜로아마탕기)는 큰아들 '퀘이'(마이크 호믹)에게 '덱'을 죽이라 명령하지만, '퀘이'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덱'은 아버지조차 두려워하는 존재, '칼리스크'를 사냥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로 결심한다.
목적지는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행성 '겐나'. '겐나'에 불시착한 '덱'은 곧바로 행성의 환대를 받는다. 움직임을 감지해 마비 독을 뿜는 식물,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풀잎, 폭탄처럼 터지는 애벌레. 죽음의 땅이라는 이름이 과장이 아니었다. '프레데터' 특유의 첨단 무기를 갖췄음에도 '덱'은 생존 자체가 버겁다. 그러던 중 하반신이 절단된 휴머노이드 '티아'(엘 패닝)를 만난다. '웨이랜드 유타니'가 만든 합성 인간인 '티아'는 수다스럽고 호기심 많은 성격으로, 과묵한 '덱'과는 정반대다.
'티아'는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의 다리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면, '칼리스크'를 찾는 길을 안내하겠다고. 혼자 사냥해야 한다는 '야우차'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 '덱'은 '티아'를 '도구'로 규정하고 등에 메고 다니기 시작한다. 여정은 예상보다 복잡해진다. '칼리스크'에게 쫓기던 중 우연히 구해준 작은 생명체가 일행에 합류하고, '티아'는 그에게 '버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덱'에게 각인된 '버드'는 '덱'의 동작을 따라 하며, 위험한 순간마다 예상치 못한 도움을 준다. 홀로 사냥하는 것이 명예라고 배웠던 '덱'은, 동료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진짜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칼리스크'와의 대결을 앞두고, 티아와 같은 모델의 또 다른 휴머노이드 '테사'(엘 패닝)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복잡하게 꼬인다.
시리즈 최초로 '프레데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무자비한 사냥꾼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미숙한 전사로 그려지면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댄 트라첸버그 감독은 "악명 높은 괴물 캐릭터를 관객들이 응원하게 만들고 싶었다"라면서, "이런 장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고결함과 품위를 지닌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라며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엘 패닝은 '티아'와 '테사'라는 정반대 성격의 1인 2역을 맡아 영화의 중심축을 단단히 잡아낸다. 엘 패닝은 "'티아'는 모든 생명체에 호기심을 느끼는 캐릭터"라며, "'테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발랄한 '티아'와 냉혹한 '테사'의 대비는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디미트리우스 슈스터-콜로아마탕기는 프레데터 분장 아래에서도 눈빛과 몸짓만으로 '덱'의 감정 변화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감독은 그에 대해 "오디션에서 즉석으로 만든 장애물 코스를 완벽하게 소화한 스턴트가 인상적이었다"라고 극찬했다.
프로덕션 측면에서도 공을 들였다. 시리즈 최초로 완성된 '야우차' 언어를 개발했는데, <아바타> 시리즈의 '나비족' 언어를 만든 폴 프롬머가 추천한 언어학자 브리튼 왓킨스가 참여했다. 그는 '프레데터' 종족의 얼굴 구조로 발음할 수 있는 언어 체계를 구축했고, 알파벳과 룬 문자까지 완성했다. 뉴질랜드 레드우드 숲에서 30일간 진행된 현지 촬영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문제는 이 모든 요소가 지나치게 예측할 수 있는 구조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버림받은 약자가 시련을 겪으며 동료를 만나고, 협력의 가치를 깨닫고, 진정한 강자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는 <라이온 킹>(1994년)부터 <모아나>(2016년)까지 디즈니가 수십 년간 반복해 온 공식이다. '티아'가 '덱'에게 "'알파'는 가장 많이 죽이는 늑대가 아니라, 무리를 가장 잘 지키는 늑대"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교훈적이지만, 영화가 어디로 향할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낸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PG-13 등급이다. 프레데터 시리즈의 정체성은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폭력에 있었다. 1987년 오리지널이 그랬고, 트라첸버그 감독의 전작인 <프레이>(2022년)가 그랬다. 그런데 <죽음의 땅>은 인간을 사냥하지 않는다. 대신 파란색과 보라색 피를 흘리는 외계 생명체들, 하얀 액체가 새어 나오는 안드로이드들과 싸운다. 기술적으로는 영리한 선택이지만, '프레데터' 특유의 날카로움은 무뎌진다. 엘 패닝의 상-하반신 분리 액션은 창의적이지만, 결국 그것도 "피 안 나는 폭력"의 일부일 뿐이다.
<프레이>가 더 강렬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1700년대 아메리카 평원에서 '코만치' 소녀와 프레데터가 벌이는 사냥은 원초적이었고, 긴장감은 끈적했다. 전사의 명예와 생존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이 선명했다. <죽음의 땅>에서 '덱'은 전사라기보다 성장기의 주인공에 가깝다. '버드'라는 귀여운 생명체를 돌보고, '티아'의 농담에 짜증을 내다가도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은 매력적이지만, '프레데터'라는 캐릭터가 지녀야 할 위압감은 희석된다.
영화는 '프레데터'와 '에이리언' 세계관을 교차시키는 시도도 보여준다. '웨이랜드 유타니'라는 거대 기업의 등장은 두 프랜차이즈가 공유하는 우주를 확장하며, 향후 시리즈 전개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장면은 후속작을 암시하는데, '여성 프레데터'의 등장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신선한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느껴지는 것은 모험보다 계산이다. '프레데터'를 주인공으로 삼되, 너무 무섭지 않게. 성장 서사를 그리되, 너무 어둡지 않게. 폭력을 보여주되, 피는 붉지 않게.
모든 선택이 합리적이지만, 그 합리성이 영화의 날을 무디게 만든다. <애프터 어스>(2013년)에서 윌 스미스의 아들이 위험한 행성을 헤매며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했던 것처럼, '덱' 역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다만 <애프터 어스>가 지루하고 공허했다면, <죽음의 땅>은 최소한 볼거리와 재미는 보장한다는 점에서 '건실하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댄 트라첸버그는 분명 '프레데터'를 사랑하는 감독이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프레데터 유니버스'가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번 작품은 모험보다 안전을, 날카로움보다 부드러움을 택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프레데터'가 친구를 사귀고 성장하는 이야기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너무 뻔하게 풀어내면, 결국 '괜찮지만 특별하지 않은' 영화가 되고 말 것이다. ★★★
2025/10/30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프레데터: 죽음의 땅> (Predator: Badlands, 2025)
- 개봉일 : 2025. 11. 05.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07분
- 장르 : SF, 액션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댄 트라첸버그
- 출연 : 엘 패닝, 디미트리우스 슈스터-콜로아마탕기, 마이크 호믹, 로히날 나야란, 루벤 드 용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