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21] <너와 나의 5분>
2001년 대구. 영천에서 전학 온 고등학생 '경환'(심현서)은 모든 게 낯설다. 엄마 '경숙'(공민정)이 동성로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연 바람에 따라온 도시에서, '경환'은 MP3로 일본 그룹 globe의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세계에 머문다. J-팝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타쿠'라고 놀림받고, 조용한 성격 탓에 급우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경환'에게 짝꿍이자 반장인 '재민'(현우석)이 먼저 다가온다. '재민' 역시 일본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듣고, 같은 방향이 아닌데도 '재민'이 타는 버스에 올라타 맨 뒷자리에서 함께 하굣길을 보낸다. '경환'이 좋아하는 'DEPARTURES'를 들으며 차창 밖 대구의 풍경을 바라보는 5분의 시간이 쌓인다. '경환'은 재민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전 학교에서 남자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괴롭힘을 당했다는 비밀이다. 하지만 '재민'은 이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선다. 곧 소문이 학교에 퍼지고 '경환'의 일상은 무너진다.
<너와 나의 5분>을 연출한 엄하늘 감독은 "2001년에 하리수 씨가 공중파에 출연했던 일, 교과서 문제로 한일 문화 개방이 잠시 멈췄던 사건,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 배척받았던 분위기"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밀레니엄 전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브라운관 TV에서 나오는 뉴스, 공CD에 담긴 애니메이션, MP3 플레이어, 제일극장과 우방랜드 같은 실제 장소들. 감독이 1990년대 후반부터 모아온 일본 음반과 DVD, 굿즈를 직접 활용해 '경환'의 방과 지하상가 음반 가게를 꾸몄다는 노력도 엿보인다.
다만 이런 디테일들이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오지는 못한다. 2001년이라는 시간은 소품과 뉴스 화면으로 표시되지만, 그 시대가 '경환'과 '재민'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압력이나 가능성을 주는지는 피상적으로 그쳐진다. 지하상가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것이 두 소년의 관계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리수의 TV 출연 장면을 삽입하는 것만으로 퀴어 정체성에 대한 당대의 시선을 전달하기에는 아쉽다.
대구라는 공간도 비슷하다. 감독 본인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실제 로케이션을 활용했지만, 서울이 아닌 대구여야만 했던 필연성이 선명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가 '경환'의 억압과 연결된다는 암시는 있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까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지역성은 배경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너와 나의 5분>에서 아쉬운 지점은 '재민'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다. '재민'이 '경환'에게 왜 다가왔는지, 고백을 거부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 자신도 '경환'에게 호감이 있었는지 모호하게 남겨둔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재민'의 내면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을 수 있다. 엄하늘 감독은 "심현서 배우가 '경환'이라는 아이가 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고, 현우석 배우가 '재민'이라는 캐릭터의 본심을 묻지 않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재민'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에 본인도 괴롭힘을 당했다는 암시만 있을 뿐, 그것이 동성애와 관련된 일인지도 불분명하다. 성적 지향 때문인지, 성격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관객은 추측만 할 뿐이다. 이런 모호함이 영화에 여운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퀴어 서사를 다룬다면 최소한 두 인물의 감정선은 어느 정도 명확해야 관객이 따라갈 수 있다. '경환'의 마음은 분명하지만 '재민'의 마음은 끝까지 불투명하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재민'의 거부가 혐오인지 두려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결말에서 '재민'이 남긴 쪽지가 화해의 제스처인지 사과인지조차 애매하게 남는다.
엄하늘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음악이다. 감독은 직접 globe 측에 메일을 보내 판권을 해결했고, 'DEPARTURES'와 'FACES PLACES'를 통째로 영화에 삽입했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J-팝을 이렇게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드물다. 감독은 "DEPARTURES가 흘러 나오는 시퀀스에선 '경환'과 '재민'이 점차 가까워지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었고, FACES PLACES 시퀀스는 '경환'이 '재민'의 마음을 짐작해보는 시점으로 불규칙하게 나열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이 흐르는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버스 뒷자리에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차창 밖을 바라보는 두 소년의 모습, 사계절이 바뀌는 풍경과 함께 'DEPARTURES'가 흐를 때의 서정성은 분명 아름답다. 마지막 눈 속을 달리는 장면에서 음악이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식도 효과적이다. 다만 음악의 힘이 워낙 강해서, globe의 멜로디가 주는 감성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된다. 그만큼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영화 자체의 서사가 그 음악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지는 생각해볼 지점이다.
<너와 나의 5분>은 2000년대 초반의 향수, 청춘 퀴어물, 일본 문화 개방기의 분위기, 대구라는 지역성까지 모두 담으려 했다. 각각이 장편 한 편을 지탱할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105분 안에 이 모든 것을 넣으려다 보니 어느 하나도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했다. 감독이 10년 넘게 품어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진심은 느껴진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가 더 중요한 법이다. 나쁜 영화는 아니다. 그저 더 좋을 수 있었던 영화다. ★★★
2025/11/07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너와 나의 5분> (404 Still Remain, 2025)
- 개봉일 : 2025. 11. 05.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7분
-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엄하늘
- 출연 : 심현서, 현우석, 공민정, 이동휘, 백이온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