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판 '노팅 힐'을 원했던 야심만 남아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27] <나혼자 프린스>

by 양미르 에디터
4829_5040_441.jpg 사진 = 영화 '나혼자 프린스' ⓒ CJ CGV(주), (주)제리굿컴퍼니

김성훈 감독은 <노팅 힐>(1999년)을 떠올렸을 것이다. 서점 주인과 할리우드 스타의 로맨스가 작동했던 건 신분 격차가 아니라, 그 격차 너머로 보이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 때문이었다. 스타성을 벗어던진 '안나'(줄리아 로버츠)와 평범함 그 자체인 '윌리엄'(휴 그랜트) 사이의 화학작용은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선 누구나 동등해진다는 걸 증명했다. <나혼자 프린스>는 이 공식을 베트남으로 가져왔다. 스타와 평범한 사람, 화려함과 소박함, 한국어와 베트남어. 모든 대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야심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다.


아시아 전역에서 '프린스'로 불리는 톱스타 '강준우'(이광수)는 겉으로는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5년간 유지했던 전속 모델 계약이 끝났고, 라이징 스타 '차도훈'(강하늘)이 치고 올라오며 왕좌를 위협한다. 만석을 채우던 팬미팅이 이제 5천 석으로 줄었다는 소식에 '강준우'는 밤잠을 설친다. 절친이자 매니저인 '정한철'(음문석)은 그의 불안을 알면서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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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준우'는 "내 소중함을 느껴보라"라며 홧김에 귀국 비행기에 오르지 않고 현지에 남기로 결심한다. 화장실에 간 사이 '정한철'이 여권과 티켓을 챙겨 떠나버린 건 그에겐 오히려 좋은 핑계였다. 무일푼 신세가 된 '강준우'의 베트남 생존기는 쌀국숫집 알바생 '타오'(황하)와의 우연한 충돌로 시작된다. '강준우'가 부딪혀 떨어뜨린 휴대폰은 액정이 박살 났고, 스마트페이도 쓸 수 없게 됐다. '강준우'는 '타오'에게 책임을 지라고 우기고, 책임감 강한 '타오'는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호찌민 거리를 오토바이로 달리며 둘은 서로를 알아간다. 바리스타가 꿈인 '타오'는 여러 알바를 전전하며 대회 준비를 한다. 어려운 형편에도 꿈을 놓지 않는 '타오'의 모습은 '강준우'에게 낯설다. 스타의 삶에 익숙한 그에게 '타오'의 일상은 불편하면서도 신선하다. 함께 먹는 쌀국수와 반미, '타오'의 시골 본가에서 밤하늘을 보며 나누는 대화, 달랏의 한적한 풍경 속에서 '강준우'는 자신이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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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은 기획 단계부터 이광수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아시아 프린스 '강준우'라는 캐릭터 이미지와 코믹하게 잘 들어맞는 배우"라는 그의 말처럼, '강준우'는 처음부터 이광수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실제로 이광수는 베트남에서 '아시아 프린스'로 불린다. 공항에 도착해 팬들에게 둘러싸이는 장면, 광고 촬영 현장,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까지 모두 자연스럽다.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까지가 다큐멘터리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이광수 본인도 "실제 나의 모습을 '준우'에 입히면 보시는 분들이 웃음에 관대해지실 것 같더라. 예능의 얼굴을 넣어서 더 친숙하게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전략은 코미디 측면에서 분명 효과적이다. <런닝맨>에서 봤던 억울한 표정, 짜증 섞인 투정, 몸을 사리지 않는 개그는 여전히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 친숙함이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강준우'가 '타오'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관객의 머릿속엔 자꾸만 '배우 이광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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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한사장'(조우진)이 '강준우'의 방송 활동을 검색하는 장면에 실제 <핑계고> 화면이 등장하는 순간, 허구와 현실의 경계는 완전히 무너진다. 감독이 의도한 메타적 재미였을 수도 있지만, 로맨스 장르에서 이런 혼란은 치명적이다. 관객은 '강준우'의 사랑이 아니라 '이광수'가 베트남 배우와 로맨스를 찍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캐릭터에 몰입해야 할 순간에 배우 본인이 자꾸 튀어나오면서 감정이입의 선이 끊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영화가 걸어가는 길이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부유하고 유명한 남자와 가난하지만 성실한 여자. 처음엔 반목하다가 점차 이해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 여자가 남자에게 '진짜 삶'을 가르쳐주고, 남자는 그 대가로 여자의 꿈을 응원한다. 1990년대 신분 상승형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2025년 베트남 버전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강준우'가 '타오'를 통해 발견하는 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게 아름답다"라는 뻔한 교훈이고, '타오'가 '강준우'를 통해 얻는 것도 "꿈을 포기하지 말자"라는 흔한 격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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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에게 어떤 본질적 변화를 불러오는지, 그 변화가 왜 의미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는 부족하다. <노팅힐>이 작동했던 건 '윌리엄'과 '안나' 사이의 로맨스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서점 주인과 할리우드 최고 스타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컸고, 그래서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설득력을 얻기 위해 섬세하게 설계되어야 했다. 영화는 그 간극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스타의 삶이 가진 공허함, 평범한 삶이 가진 충만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하는 진짜 연결의 순간들. <나혼자 프린스>는 이 구조를 빌려오되 그 안을 채울 깊이는 마련하지 못했다. '강준우'와 '타오'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만 스쳐 지나간다. 두 사람이 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지, 그 필연성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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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조건도 로맨스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192cm 이광수와 165cm 황하의 27cm 키 차이는 평소 장면에서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쌓아온 로맨스의 정점이 되어야 할 장면은 오히려 몰입이 깨진다. 연출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언어 소통 설정도 일관성이 없다. 초반엔 '강준우'와 '타오'가 어설픈 영어로 겨우겨우 의사소통하는 게 코믹하고 귀엽다. 김성훈 감독은 "서로의 콘텐츠가 뒤섞이며 각 나라의 색깔도 옅어졌다. 이런 교류가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그 교류는 어느 순간부터 설명 없이 이뤄진다. '강준우'가 한국어로 말해도 '타오'가 베트남어로 말해도 서로 즉각 알아듣는 장면이 이어진다. 표정 변화나 몸짓 같은 구체적인 연출 없이 그냥 통한다. 감독이 "마음으로 소통한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 '마음의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좀 더 섬세하게 그렸어야 한다. ★★☆

2025/11/10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나혼자 프린스> (Love Barista, 2025)
- 개봉일 : 2025. 11. 19.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6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김성훈
- 출연 : 이광수, 황하, 음문석, 듀이 칸, 꾸 띠 짜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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