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상 받는 60대 배우의 여정, 딸들에게 공감이 더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28] <제이 켈리>

by 양미르 에디터
4833_5061_4033.jpg 사진 = 영화 '제이 켈리' ⓒ 넷플릭스

공로상은 보통 커리어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훈장이다. 더 이상 정점을 향해 달릴 필요 없는, 혹은 달릴 수 없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인정의 증표랄까. 그런데 <제이 켈리>의 주인공은 60대 초반이다. 할리우드 남자 배우에게 이 나이는 여전히 주연을 꿰찰 수 있는, 아니 오히려 가장 원숙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전성기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가 그려내는 '위기'는 묘하게 설득력이 떨어진다. 관객은 '제이 켈리'(조지 클루니)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보다,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외면당해온 사람들의 얼굴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노아 바움백과 에밀리 모티머가 조지 클루니를 염두에 두고 쓴 이 각본을, 조지 클루니는 받아본 지 24시간 만에 수락했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지 클루니가 조지 클루니를 연기하는" 메타픽션이니까. 영화 속 헌사 영상에는 클루니의 실제 필름(<표적>(1998년), <오션스 일레븐>(2001년) 등)이 사용되고, '제이 켈리'라는 캐릭터는 클루니 본인의 페르소나와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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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근접성이 오히려 영화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제이 켈리'를 보는 건가, 조지 클루니를 보는 건가. 캐릭터의 결함을 직시해야 하는 순간, 클루니 특유의 호감 가는 미소가 모든 걸 부드럽게 완충해 버리는 건 아닌가. '제이 켈리'는 헐리우드의 정점에 선 배우다.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주연을 맡고, 멘토였던 거장 감독 '피터 슈나이더'(짐 브로드벤트)의 장례식에서는 헌사를 읽는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옛 친구 '티머시'(빌리 크루덥)와 마주친 순간, 균열이 시작된다. "네가 나의 삶을 훔쳤다"라는 '티머시'의 독설은 '제이'가 사다리를 오르며 무심히 밟고 지나온 것들을 상기시킨다. <이브의 모든 것>(1950년)의 그 유명한 대사처럼, 사다리를 오를 때 버리게 되는 것들 말이다. 멘토의 죽음과 친구의 분노에 흔들린 '제이'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어딘가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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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작은딸 '데이지'(그레이스 에드워즈)가 친구들과 유럽 배낭여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매니저 '론'(아담 샌들러)을 이끌고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다. 표면적 목적은 이탈리아의 한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파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데이지'는 기차를 타고 떠난 뒤였고, '제이'는 '데이지'를 쫓아 기차에 오른다. 식당 칸에서 겨우 재회하지만, '데이지'는 아버지가 친구의 카드 사용 내역을 추적해 자신을 찾아왔다는 걸 알아채고 분노한다. 한편, 큰딸 '제시카'(라일리 코프)는 샌디에이고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아버지와 더욱 깊은 골을 유지한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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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내내 '제이'의 머릿속엔 과거가 플래시백처럼 침투한다. 라이너스 산드그렌 촬영감독이 35mm 필름과 1.66:1 화면비로 담아낸 이 회상 장면들은 기술적으로 놀랍다. VFX 없이 세트만으로 구현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 기차 화장실 거울에서 승강장을 거쳐 교실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전환. 특히 원테이크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영화 촬영 현장 전체를 담아내며 "연기와 현실의 경계"라는 영화의 핵심 테마를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제이 켈리>는 스스로 메타픽션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연기는 아름다운 거짓말"이라는 '제이'의 독백, "배우는 언제든 리테이크할 수 있지만 인생은 다시 찍을 수 없다"라는 자각. 영화는 '제이'가 '배우로서의 자신'과 '진짜 자신' 사이에서 헤매는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문제는 이 자의식이 너무 과하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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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가장 강렬한 장면들은 정작 '제이'가 아닌 주변 인물들에게서 나온다. 빌리 크루덥이 연기한 '티머시'의 언어적 보복 장면은 단 몇 분 만에 영화 전체를 압도한다. '티머시'는 수십 년간 쌓인 배신감을 한 방에 폭발시킨다. 아담 샌들러 역시 <언컷 젬스>(2019년) 이후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론'은 '제이'의 매니저이자 친구지만, 둘 사이의 권력 불균형은 명백하다. 아담 샌들러는 대사 없는 표정만으로, 의심과 헌신, 억눌린 감정과 무조건적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다.

영화는 '제이'를 불쌍히 여기길 원한다. 성공의 정점에서 느끼는 공허함,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남자의 비극. 하지만 관객의 공감은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 소원해진 두 딸, '제시카'와 '데이지'. 영화는 그들을 '제이'의 구원 대상쯤으로 배치하지만,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진짜 피해자처럼 보인다. 아버지는 커리어를 쌓느라 그들의 성장을 놓쳤고, 이제 와서 "딸아, 아빠가 힘들어"라며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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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제이'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60대 초반이면 할리우드에선 여전히 현역이고, 공로상을 받으러 갈 수 있고, 딸들에게 손 내밀 기회도 남아 있다. 진짜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위기가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딸들은 이미 수십 년을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랐다. 그들에게 아버지와의 시간은 리테이크가 불가능한, 이미 촬영이 끝난 과거다. 영화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비대칭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제이'는 자신의 정체성 위기를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처럼 예술적으로 성찰하지만, 딸들은 그저 "아빠가 또 자기 이야기만 하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제이'의 고뇌에 공감하려 애쓰지만, 카메라가 딸들의 표정을 잡아낼 때마다 "저 아이들이야말로"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제이 켈리>는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가슴을 친다. 주인공의 자기 성찰이 아니라, 그 그림자 속에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

2025/11/10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제이 켈리> (Jay Kelly, 2025)
- 개봉일 : 2025. 11. 19.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32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노아 바움백
- 출연 : 조지 클루니, 아담 샌들러, 로라 던, 빌리 크루덥, 라일리 코프 등
- 화면비율 : 1.66: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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