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69] <나의 이름은 마리아>
영화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때로 영화는 기록되어서는 안 될 순간까지 포착하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이 그랬는데요. 19세 신인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는 대본에 없던 장면 앞에서 경악했고, 카메라는 그 '진짜 공포'를 담았습니다. 감독과 말론 브란도는 사전 동의 없이 즉흥적으로 장면을 바꿨고, 마리아의 눈물은 연기가 아니었죠.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야만의 시대에서, 한 배우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지를 담은 잔인한 기록입니다.
제시카 팔뤼 감독은 마리아 슈나이더의 사촌 바네사가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흥미롭게도 팔뤼 감독 자신도 19세에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2003년)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했죠.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굴욕을 겪는 장면들을 목격했다"라는 감독의 고백은, 이 영화가 과거의 증언이자 동시에 현재의 고발임을 말해줍니다. 감독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원본 대본을 확보했고, 당시 스태프들을 인터뷰하며 철저하게 사실을 검증했죠.
이야기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리아'(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는 유명 배우 '다니엘 겔린'(이반 아탈)의 혼외자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홀어머니 손에 자랐죠. 16세 소녀가 처음으로 영화 세트장에 들어가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보는 장면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눈에서 동경을 읽는데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 하지만 어머니는 격렬하게 반대하죠. 삼촌 '미셸'(조나단 쿠지니에)의 집에 얹혀살게 된 '마리아'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조연 배우 생활을 시작합니다.
3년의 무명 시절을 지나, 19세가 된 '마리아' 앞에 전도유망한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주세페 마지오)가 나타나죠. <순응자>(1970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마리아'를 보자마자 "네게는 상처받은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작 주연으로 캐스팅했는데, 상대역은 '말론 브란도'(맷 딜런)였죠. 미성년자인 '마리아'는 어머니의 서명을 받아야 했고, 대본에는 노출 장면이 많았지만, 감독은 "예술적으로 찍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요.
촬영이 시작되고, '마리아'는 하루 14시간 강행군을 견뎌냅니다. '말론 브란도'는 친절했고, '베르톨루치'는 열정적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카메라 앞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데요. '브란도'는 사전 고지 없이 '마리아'의 바지를 벗기고, 버터를 사용한 성폭행 장면을 연기합니다. '마리아'의 비명과 눈물은 대본에 없던 것이었죠. 촬영이 끝난 후 베르톨루치 감독은 "캐릭터 '잔느'가 겪는 일이지, 네가 겪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고, 브란도는 "그냥 영화일 뿐이야"라고 속삭였죠.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개봉되자 세계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두고 찬반으로 갈렸는데요. 베르톨루치는 천재 감독으로, 브란도는 명배우로 커리어에 한 줄을 더했죠. 하지만 '마리아'는 '섹스 심볼'로 소비되었고, 언론은 '마리아'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는데요. "포르노가 아니냐"라는 비난 속에서 '마리아'는 약물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연인 '누르'(셀레스트 브룬켈)를 만나 재활에 성공하지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그림자는 평생 '마리아'를 따라다녔죠.
팔뤼 감독은 문제의 장면을 재연하면서, '마리아'의 눈물 클로즈업과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얼굴을 교차 편집하죠. 감독은 이 장면을 '관음증적 시선'으로 재생산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요. 실제로 감독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와 협업했고, 배우들과 수개월간 리허설을 진행했죠.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가 당하지 못했던 보호를 이 영화의 촬영장에서는 실천한 것입니다.
여기에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의 연기는 특별한데요. 바르톨로메이는 12세였던 2011년, <비올레타>에서 '한나'(이자벨 위페르)의 딸 '비올레타'로 데뷔했는데요. 사진작가 어머니 '한나'는 딸 '비올레타'를 자신의 뮤즈로 삼지만, 점차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한 '피사체'로만 소비하죠. '비올레타'는 누드 모델 촬영까지 강요당하는데요. 에바 이오네스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12세 바르톨로메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했던" 소녀가 어떻게 예술이라는 이름의 착취를 견뎌내는지 연기했습니다.
10년 후인 2021년, 바르톨로메이는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으로 있었던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수상작 <레벤느망>으로 주목받죠. 1964년 프랑스,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의 대학생 '안'을 연기한 바르톨로메이는 1.37:1 화면비 속에서 주인공의 시점을 관객에게 강제했죠. 의도치 않은 임신 앞에서 '안'은 "언젠간 아이를 갖고 싶지만, 지금 인생과 바꾸긴 싫다"라고 말하는데요. 바르톨로메이는 여성의 신체 자율권이 박탈된 시대를, 몸으로 증언했습니다.
"여배우로서 변화에 기여해야 하고, 다른 여성들이 이끈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라는 바르톨로메이의 말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계속된 것이죠. 물론,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평이하고, 불완전한 전기영화라는 평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존재해야 했는데요. 야만의 시대가 남긴 상흔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최소한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
2025/08/24 CGV 연남
- 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상영작
※ 영화 리뷰
- 제목 : <나의 이름은 마리아> (Being Maria, 2024)
- 개봉일 : 2025. 11. 26.
- 제작국 : 프랑스
- 러닝타임 : 103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제시카 팔뤼
- 출연 :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맷 딜런, 주세페 마지오, 이반 아탈, 마리 질랭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