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35] <더 러닝 맨>
스티븐 킹이 1982년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집필한 소설 <더 러닝 맨>의 배경은 2025년이다. 당시 스티븐 킹은 "분노에 가득 차고 에너지 넘치며 글쓰기라는 예술과 기교에 심취했던 젊은이"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가 상상한 43년 뒤의 세계는 독점 거대기업이 정부를 대체하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며, 대중은 폭력적 리얼리티 쇼에 중독된 디스토피아였다. 공교롭게도 영화는 소설 속 배경과 동일한 해에 개봉했고, 스티븐 킹의 예언은 섬뜩할 정도로 적중했다.
AI가 타인의 얼굴을 훔치고, 편집실에서 진실이 조립되며,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거짓도 서슴지 않는 미디어 세상. 이것이 우리가 사는 2025년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원작이 지닌 이 불길한 예언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거의 40년 전에 읽은 책이 지금 보니 섬뜩할 정도로 앞날을 예견한 것처럼 다가온다"라며, 그는 현실과 연기, 조작과 진실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오락에 대한 집착을 영화로 포착하고자 했다.
1987년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작이 원작의 껍데기만 빌린 B급 액션물이었다면, 이번 버전은 스티븐 킹의 세계관에 상당히 충실하다. 하지만 충실함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리드미컬한 편집과 감각적 연출로 영화를 포장했지만, 정작 내용물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년)나 <베이비 드라이버>(2017년)에서 봤던 그 날카로운 풍자와 독창성이 희석돼 있다.
영화는 '슬럼사이드'라 불리는 빈민가에 사는 '벤 리처즈'(글렌 파월)의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정의감은 강하지만 다혈질 성격 탓에 직장에서 쫓겨난 그는 아픈 딸의 약값조차 마련할 수 없는 처지다. 아내 '실라'(제이미 로슨)는 생계를 위해 술집에서 일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 세계에서 의료는 특권이고, 가난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독점 기업 '네트워크'가 정부를 대신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하층민에게 허락된 유일한 계급 상승의 사다리는 TV 게임쇼뿐이다.
'벤'은 결국 '네트워크'의 프로듀서 '댄 킬리언'(조슈 브롤린)의 꼬임에 넘어가 목숨을 건 서바이벌 쇼 '더 러닝 맨'에 참가한다. 규칙은 간명하다. 30일간 전문 헌터들의 추격을 피해 살아남으면 10억 달러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참가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과정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시청자들은 참가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제보할 수 있다. 쇼의 진행자 '바비 T'(콜맨 도밍고)는 현란한 쇼맨십으로 잔혹한 사냥을 화려한 엔터테인먼트로 포장하며 관객을 선동한다.
'벤'은 곧 깨닫는다. 이 게임은 공정하지 않다. '네트워크'는 딥페이크 기술로 그를 범죄자로 둔갑시키고, 술집에서 일하는 아내를 스트리퍼로 낙인찍는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진실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분노한 '벤'은 도망치는 것을 넘어 시스템 자체에 반격하기 시작한다. 지하 활동가 '브래들리'(다니엘 에즈라)가 폭로하는 '네트워크'의 부정부패, 혁명가 '엘튼'(마이클 세라)이 제공하는 은신처와 함정들. '벤'의 질주는 개인의 생존을 넘어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된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평범한 인물이 혁명가로 거듭나는 여정을 따라간다는 것"이 <더 러닝 맨>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 여정이 얼마나 크고 넓게 펼쳐지는가에 영화의 야심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반 1시간은 라이트 감독 특유의 재능이 빛을 발한다. 뉴욕의 낡은 호텔에서 펼쳐지는 탈출 시퀀스는 긴박하고 정교하다. 보스턴의 허름한 숙소에서 폭발하는 자동차, 그 사이를 질주하는 '벤'의 모습은 <베이비 드라이버>의 카체이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을 지나며 동력을 잃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지닌 급진적이고 암울한 결말은 메이저 스튜디오 블록버스터가 수용하기엔 너무 과격했다. 결국 영화는 타협한다. 원작의 날카로운 비판은 무뎌지고, 체제 전복의 쾌감은 어정쩡한 희망으로 대체된다. 라이트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인 장르 관습에 애정 어린 일탈을 가하는 걸 포기하고 안전한 선택을 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 안전하다. 미디어가 거짓말을 한다고? 기업이 권력을 독점한다고? 빈부격차가 심각하다고? 이 모든 것은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 이미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영화는 문제를 지적하지만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제시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자본주의 좀비들을, <뜨거운 녀석들>(2007년)에서는 소도시 파시즘을 통렬히 비꼬았다. 하지만 <더 러닝 맨>에서 그는 자신이 비판하고자 했던 바로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TV를 끄라"고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극장 스크린에서 관객에게 볼거리를 팔게 된 것.
물론, <더 러닝 맨>의 액션은 훌륭하고, 연출은 세련됐으며, 메시지는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감독 특유의 대담함, 장르를 비틀고 관객의 예상을 배신하는 2%가 빠져 있다. 2%가 없는 그의 영화는 그저 잘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괜찮지만, 위대하지는 않다. 재미있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을 것 같다. ★★★
2025/11/20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더 러닝 맨> (The Running Man, 2025)
- 개봉일 : 2025. 12. 10.
- 제작국 : 영국
- 러닝타임 : 133분
- 장르 : 액션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에드가 라이트
- 출연 : 글렌 파월, 윌리암 H. 머시, 리 페이스, 콜맨 도밍고, 조슈 브롤린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