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는 한탕이 가능했을 시나리오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34] <정보원>

by 양미르 에디터
4875_5190_3350.jpg 사진 = 영화 '정보원' ⓒ 영화특별시SMC

<정보원>은 왕년의 에이스였으나 강등당한 후 모든 열정을 잃은 형사 '오남혁'(허성태)이 마지막 한몫을 노리며 시작된다. 그는 밀수 조직에 심어둔 정보원 '조태봉'(조복래)을 이용해 인생 역전을 꿈꾼다. 하지만 '조태봉' 역시 '오남혁' 못지않게 계산이 빠른 인물이다. 겉으로는 순진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밀수 조직의 금괴를 몰래 빼돌려 자기 몫을 챙길 궁리만 한다.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두 사람의 관계는 애초에 파국을 예고한다.


'조태봉'이 숨겨둔 돈을 챙겨 잠적하려던 바로 그 순간, 밀수 조직은 그를 배신자로 의심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세운다. 뒤늦게 도착한 '오남혁'마저 엉뚱하게 납치당하면서 두 사람은 훨씬 더 큰 범죄 카르텔에 휘말린다. 건설사 회장 '황상길'(차순배)을 중심으로 한 조직은 단순한 밀수를 넘어 정치권과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남혁'과 '조태봉'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는다. 하지만 이들의 '공조'는 말이 공조지 실상은 서로를 이용하려는 속셈뿐이다. '오남혁'의 짝사랑 상대인 후배 형사 '이소영'(서민주)마저 이 혼란에 끼어들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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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태와 조복래는 이 영화에서 정말 열심히 뛴다. 아니, 뛰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던진다. 허성태는 <범죄도시>(2017년)의 '독사', <오징어 게임>(2021년)의 '장덕수'로 각인된 악역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망가지는 데 주저함이 없다. 겨울 야산에서 속옷 차림으로 3박 4일을 뛰었다는 촬영 비하인드는 그의 각오를 보여준다. 조복래 역시 능청스러운 연기를 쏟아냈다.

김석 감독은 배우들에게 "억지로 웃기려 들지 말고, 상황에 맞춰 최대한 진지하게 연기해 달라"라고 주문했다고. 코미디를 코미디답게 만들지 않으려는, 역설적인 연출 방식이다. 실제로 영화의 촬영과 조명은 밝고 가벼운 코미디 톤이 아니라 진지한 범죄물의 톤을 따른다. 의상 역시 각 캐릭터의 욕망을 색채로 표현했다. '오남혁'은 머스타드 색 포인트로 친근하게 시작해 점차 톤을 낮춰갔고, '조태봉'은 블랙 앤 화이트로 양면성을 드러내다가 무채색으로 변화를 표현했다. '황상길'은 빌런답게 화려한 색채를 기본으로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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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가 그들을 받쳐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년 전 유통기한이 지난 이야기 구조를 배우의 힘만으로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형사와 정보원의 티키타카는 <범죄도시> 시리즈나 <베테랑>(2015년) 같은 작품들이 이미 더 세련되게 보여줬고, 주성치식 슬랩스틱 역시 원조를 넘어서기는커녕 모방의 흔적이 너무 노골적이다.

여기에 서민주가 연기한 '이소영' 캐릭터는 "열정만 앞서는 허당 형사"로 설정됐지만, 실제로 영화 속에서 '소영'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서민주는 실제 경찰서 마약 수사팀에서 한 달간 근무 현장을 지켜보며 캐릭터를 준비했다고 하지만, 시나리오가 배우에게 부여한 건 '오남혁'의 짝사랑 상대이자 사건에 휘말리는 조력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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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원>이 24회 뉴욕 아시안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런던한국영화제와 아시아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한국적 B급 코미디'의 감성이 정작 한국 관객에게는 낡은 공식으로 읽힌다는 게 아이러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영화를 2000년대 내내 봐왔다. 밀수 조직, 건설사 회장, 부패한 경찰 조직, 그 사이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형사와 정보원. 이 모든 요소가 낯설지 않다.

2005년이었다면 이 영화의 코드는 통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2005년), <비열한 거리>(2006년), <타짜>(2006년) 같은 작품들이 범죄물에 코미디를 섞어 흥행했던 시절, <정보원>의 공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25년 지금, 똑같은 레시피로는 관객을 사로잡기 어렵다. ★☆

2025/12/05 CGV 왕십리


※ 영화 리뷰
- 제목 : <정보원> (The Informant, 2025)
- 개봉일 : 2025. 12. 03.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3분
- 장르 : 코미디, 범죄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김석
- 출연 : 허성태, 조복래, 서민주, 차순배, 장혁진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있음 (미드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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