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73] <사운드 오브 폴링>
독일 알트마르크의 한 농장. 이곳에서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00년에 걸쳐 네 명의 소녀가 각자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1910년대 '알마'(한나 헥트)는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로 촬영된 죽은 아이의 사진을 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처음 인식하죠. 제1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소녀는 오빠 '프리츠'(필립 슈나크)의 절단된 다리를, 하녀들이 겪는 강제 불임 시술을, 그리고 가까운 이들의 연이은 죽음을 목격합니다. 모든 것을 "일터 사고"라는 말로 덮으려 하지만, 어린 마음속 균열은 메워지지 않죠.
1940년대 '에리카'(레아 드린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절단 장애가 있는 '프리츠' 삼촌(마틴 로터)의 목발을 몰래 빌려 복도를 절뚝이며 걷는데요. 그의 몸을 훔쳐보고, 그의 고통을 흉내 내죠. 1980년대 동독 시절 '앙겔리카'(레나 우르첸도프스키)는 삼촌 '우베'(콘스탄틴 린트호르스트)의 근친상간적 시선 아래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법을 배웁니다. 끝으로 2010년대 '렌카'(래니 가이젤러)는 베를린에서 이사 온 중산층 가정의 딸로, 엄마를 잃은 친구 '카야'(니넬 게이거)와 여름을 보내죠. 시대는 달라졌지만, 네 소녀가 마주한 본질은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마샤 슐린스키 감독이 공동 각본가 루이제 페터와 함께 알트마르크의 한 농장에서 여름을 보낸 것은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의 출발점이었는데요. 50년간 버려져 있던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죠. 농부가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은 자리, 제자리에 놓인 모든 물건들. 그리고 농장 마당에 서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세 여자의 오래된 사진. 슐린스키 감독은 이 사진 속 여성들의 시선에서 묘한 감각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마치 우리가 현재의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이 여성들이 과거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의 역전된 흐름이 여기서 시작됐죠. 촬영감독 파비안 감퍼와 함께 마샤 슐린스키 감독이 고민한 것은 "이게 진짜 기억일까, 아니면 꿈일까?"라는 감각이었는데요. 더 이상 기억에 닿을 수 없지만, 그 감정만은 진짜라는 것을 아는 상태. 카메라는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떠다니는 유령처럼 움직이죠.
배우들과 춤을 추듯 공간을 가로지르는 카메라는 때로 특정 인물의 시점이지만, 때로는 그 옆에 웅크린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시선인데요. 관객은 이 모호한 시점 속에서 네 소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세상이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사운드 오브 폴링>에서 사진은 여러 층위의 의미를 지니는데요. 1910년대 '알마'에게 사진은 죽은 아이를 곱게 차려 입혀 인형과 함께 찍은 추모의 형식이죠.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유행했던 사후 사진 촬영 관습에서, 죽은 아이는 선명하게 찍히지만, 산 사람은 흐릿하게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런 이미지는 '알마'의 세계관을 뒤흔들죠. 영화는 이런 역사적 관습을 재현하면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흐리는지 보여줍니다.
<사운드 오브 폴링>은 불길하게 깔리는 저음의 웅웅거림이 수시로 들리는데요. 무게가 중력을 만나 가속되는 듯한, 한 시간대에서 다른 시간대로 추락하는 것 같죠. 슐린스키 감독은 각본을 쓰는 동안 내내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트라우마가 발생하면 머릿속이 산산이 조각난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데, 돌아오는 소리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이죠.
한편, 네 소녀가 느끼는 고통은 닮았는데요. 말할 수 없는 상처, 억눌린 욕망, 타인의 불쾌한 시선. '에리카'가 삼촌의 목발을 빌려 절뚝이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입어보려는 시도였고, '앙겔리카'가 아버지의 땅다지기 기계 앞에 누워 자신이 흙 속으로 으깨지는 상상을 하는 것은 자기 소멸에 대한 갈망이죠. '렌카'는 '카야'와의 우정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를 느끼는데요. 이들은 모두 "거기 없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가 겪었던, 하지만 결코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메아리를 말이죠.
물론, 이런 레이어가 쌓이면서 영화는 점점 더 불투명해집니다. 비선형 서사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 혼란이 "기억처럼 작동한다"라는 감독의 설명은 이해가 되지만 체험은 다르죠. 때로 이 영화는 신진 독일 작가주의 감독이 만들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 무겁고 진지한 영화의 공식에 갇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분위기에 몸을 맡기는 편이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 될 것 같은데요. 물론 그 순간까지 도달하기 위해 관객에게 요구되는 인내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사운드 오브 폴링> (Sound of Falling, 2025)
- 개봉일 : 2025. 12. 17.
- 제작국 : 독일
- 러닝타임 : 155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마샤 슐린스키
- 출연 : 한나 헥트, 레아 드린다, 레나 우르첸도프스키, 래니 가이젤러, 주자네 뷔스트 등
- 화면비율 : 1.37: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