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39] <척의 일생>
※ 영화 '척의 일생'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이 스티븐 킹의 2020년 단편소설을 각색한 <척의 일생>은 야심 찬 실험이다. 역순으로 펼쳐지는 세 개의 막은 각각 독립된 단편영화처럼 작동하면서도, 하나의 생이 품고 있는 우주를 향해 수렴한다. 영화는 세계의 종말에서 시작한다. 캘리포니아 해안이 태평양으로 무너져 내리고, 인터넷은 수개월째 불안정하다가 결국 완전히 끊긴다. 화산 폭발, 해일, 싱크홀이 연이어 발생하지만 사람들은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그저 차를 버리고 집까지 걸어가고, 학부모는 교사 '마티'(치웨텔 에지오포)에게 "'폰허브'마저 다운됐다"라며 한탄한다.
세계가 무너지는 속도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의 모습은 기묘하게도 2020년 이후 우리의 감각과 닮았다. 그런데 이 종말의 한가운데, 정체불명의 광고가 도시 곳곳을 점령한다. 빌보드, TV 광고, 라디오에서 반복되는 메시지는 하나다.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평범한 회계사처럼 보이는 '찰스 척 크란츠'(톰 히들스턴)의 얼굴이 어디서나 미소 짓고 있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마티'는 전 부인이자 간호사인 '펠리샤'(카렌 길런)와 함께 이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며 세계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이 첫 번째 막(실제로는 3막)을 통해 관객을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종말을 다루면서도 스펙터클을 배제하고, 대신 일상의 균열이 주는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치웨텔 에지오포와 카렌 길런의 절제된 연기는 이 고요한 파국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2막은 시간을 9개월 전으로 되돌린다. 출장 중인 '척'이 거리의 드러머(테일러 고든) 앞을 지나치다 멈춰 선다. 리듬이 그를 붙든다.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그는 춤을 춘다. 5분이 넘는 이 즉흥 댄스 시퀀스는 영화의 심장이다. 최근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재니스'(애너리즈 바쏘)가 합류하면서 이 거리의 공연은 작은 기적이 된다. 이 아름다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한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주제가 춤이라는 은유로 직진한다.
1막은 어린 '척'(벤자민 파작,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이야기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척'은 할머니 '세라'(미아 사라)와 할아버지 '앨비'(마크 해밀)의 손에서 자란다. 춤을 사랑하는 할머니는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척'에게 <사랑은 비를 타고>(1952년), <카바레>(1972년) 같은 뮤지컬 영화를 보여준다. 숫자를 신봉하는 할아버지는 회계사의 길을 권하면서도, 다락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락방에 올라가면 네가 원하던 것보다 많은 것을 보게 된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영화 전체의 비밀을 암시한다. 17세가 된 '척'이 결국 그 방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자신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1막에서 목격한 종말은 사실 '척' 개인의 내면 우주가 붕괴하는 과정이었다.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척'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고, 그가 죽으면 그들도 사라진다.
역순 서사는 대담한 선택이다. 3막에서 제시된 종말의 미스터리는 강렬하고, 그 답이 "한 남자의 임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의도적으로 스케일을 전환한다. 우주적 재난이 개인의 내면 풍경으로 수렴되는 이 구조는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세계의 종말을 목도한 후 소년의 학교 댄스파티를 보는 것은 반전이 아니라 재발견이다. 거대한 것이 작아지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이 얼마나 거대한지 깨닫게 되는 과정.
플래너건 감독은 이 구조가 "삶은 앞으로 살아가지만 뒤돌아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라는 키르케고르의 통찰을 영화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개의 막은 각각 다른 톤과 장르로 작동한다. 3막은 SF 묵시록, 2막은 뮤지컬 로맨스, 1막은 유령 이야기가 곁들여진 성장 드라마. 이 이질적인 조각들이 "멀티튜드"라는 개념 아래 하나로 모일 때, 영화는 한 인간의 복잡성을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관객이 '척'을 완전히 알게 되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가? 영화가 끝나고 나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심지어 우리 자신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춤을 춘다. 음악이 들리기 때문에, 리듬이 우리를 붙들기 때문에. <척의 일생>은 그 춤의 이유를 묻는 영화이고, 동시에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영화다. 모순적이지만, 삶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마이크 플래너건과 스티븐 킹이 만든 이 불완전한 우주는, 바로 그 모순 속에서 빛난다. ★★★
2025/12/24 CGV 왕십리
※ 영화 리뷰
- 제목 : <척의 일생> (The Life of Chuck, 2024)
- 개봉일 : 2025. 12. 24.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10분
- 장르 : 드라마, 판타지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마이크 플래너건
- 출연 : 톰 히들스턴, 카렌 길런, 치웨텔 에지오포, 제이콥 트렘블레이, 칼 럼블리 등
- 화면비율 : 1.85:1(1막), 2.00:1(2막), 2.39:1(3막)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